쇼츠·릴스에 멍청해지는 동안, 플랫폼은 돈을 번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인간이 지배받는 것이다

byDataSopher

남의 분노가 누군가의 월세를 낸다.

인터넷에서 가장 기이한 장면은 사람들이 화를 15초로 잘라 상품으로 내놓는 광경이다.


영상은 시작한다.

“이거 모르면 당신만 손해.”

누군가의 실수를 확대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반쯤 잘라 붙인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분노하든 비웃든, 일단 멈춰 서게 만들 것.

조회수는 누군가의 생계가 된다.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사고를 얼마나 싸게 취급하느냐다.


예전의 장사꾼은 물건을 팔았다.

오늘의 장사꾼은 반응을 판다.

물건은 샀다가 내려놓을 수 있지만, 습관이 된 반응은 나도 모르게 나를 바꾼다.


조회수가 성공이라면 만드는 사람은 조회수를 늘리는 데 유리한 사람이 된다.

시청 지속시간이 성공이라면 보는 사람은 오래 머무르도록 설계된 곳에 갇힌다.

침착함은 비용이고, 복잡한 설명은 이탈 위험이며,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말은 불리한 상품이다.


창작자의 언어도 변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보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가 팔기 쉽다.

‘일부 사례’가 ‘요즘 사람들은 다 그렇다’로 바뀐다.


맥락은 사라지고 표정 하나가 인격의 판결문이 된다.

만드는 사람은 빨리 단정하는 기술을, 보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 습관을 배운다.


우리가 함께 멍청해지는 과정이다.

IQ가 낮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복잡한 현실을 한 문장으로 끝내도 된다고 믿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2025년 《Psychological Bulletin》에 실린 71개 연구, 9만 8299명에 대한 종합 분석에서 숏폼 이용은 주의력과 억제 통제의 저하와 관련이 있었다.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의 확증은 아니다.


숏폼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는 단정도, 해롭다는 증거가 완전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변명도 둘 다 경계해야 한다.


산업은 더 빠르게 달린다.

유튜브는 쇼츠의 하루 평균 조회수가 2000억 회라고 밝혔다.

2026년 10월 메타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일부 사용자에게 페이스북 실행 직후 릴스를 보여주는 화면을 시험 중이라고 확인했다.


친구의 안부를 보러 들어간 공간에서 먼저 모르는 사람의 얼굴과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연결의 도구가 반사작용의 유통망으로 변한다.


짧은 영상 자체는 악이 아니다.

어려운 지식의 문턱을 낮추고 무명의 창작자에게도 기회를 연다.

문제는 무엇을 지속적으로 보상하느냐다.


차분한 설명과 타인을 조롱하는 영상이 경쟁할 때 어떤 것을 앞세우도록 설계했는가.


기업은 사용자가 원해서 보여줬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을 기록하는 일과 욕망을 키우는 일은 다르다.

2025년 《PNAS Nexus》 연구에서 반응 중심 추천은 시간순 배열보다 분노와 적대적 정치 콘텐츠를 더 부각했다.


정치 게시물에서 알고리즘의 선택은 사용자가 보고 싶다고 밝힌 선호와도 어긋났다. 클릭은 동의가 아니며, 오래 봤다고 만족한 것도 아니다.


유럽연합은 2026년 틱톡에 이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중독 유발 설계가 디지털서비스법을 위반한다는 예비 판단을 내렸다.

최종 결정은 아니지만, 무한 스크롤과 자동재생은 바카라임의 문제다.


두려운 미래는 AI가 인간에게 명령하는 세계가 아니다.

명령할 필요조차 없는 세계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사람들. 그런 인간에게는 거창한 지배자가 필요 없다. 추천 순서만 바꾸면 된다.


그러니 개인에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라고만 말할 수 없다.

플랫폼은 무한 스크롤을 쉽게 끌 수 있게 하고, 비개인화 추천을 실질적 선택지로 제공하며, 미성년자를 붙잡는 설계를 외부 검증받아야 한다.


수익을 누리는 기업이 슬롯적 비용에도 바카라임져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싸움 밖에 있지 않다.

더 많이 읽히고 싶은 욕망은 독자의 분노를 빌리라고 속삭인다.

그때 물어야 한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할까, 누군가를 더 쉽게 미워할까.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긴 영상이 아니다.

자극 없이도 생각을 계속할 수 있는, 불편하고 귀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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