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망치는 건 일한 척하는 사람이다

byDataSopher

회사에서 가장 비싼 사람은 연봉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일을 늘리는 사람이다.


“개발하는 사람만 남기면 회사가 훨씬 잘 돌아가지 않을까?”


개발자는 코드를 남긴다. 디자이너는 화면을 남긴다. 영업은 계약을 가져온다.

그런데 회사가 커질수록 기묘한 사람들이 생긴다.

회의를 잡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정리한 내용을 다시 보고하고, 보고를 위한 자료를 요청하고, 자료의 형식을 수정시키고, 다른 팀에 전달하고, 다시 회의를 잡는다.


하루는 꽉 찼는데 회사에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현실을 만드는 사람보다 현실을 설명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2026년 9월 Cloudflare CEO 매슈 프린스가 한 인터뷰가 흥미롭다.

그는 회사를 대략 ‘만드는 사람(builders)’, ‘파는 사람(sellers)’, ‘측정하는 사람(measurers)’으로 바라봤다.


Cloudflare가 2026년 천 명이 넘는 인력을 줄이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세 번째 영역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 충격적인 사례도 있었다. 실적 발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약 20명이 2주 가까이 하던 일부 업무가 AI를 이용하면서 몇 분 수준으로 단축됐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회계도 필요 없다, 인사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직업명이 아니다.


조직 안에서 어떤 마찰을 없애고,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결과에 바카라임지는가다.


법무가 위험한 계약을 막는다면 생산이다.

재무가 현금흐름의 위험을 먼저 발견한다면 생산이다.

PM이 고객 문제를 발견해 개발자가 엉뚱한 것을 만드는 일을 막았다면 엄청난 생산이다.


개발자라고 자동으로 생산적인 것도 아니다.

아무도 쓰지 않는 기능을 완벽하게 만드는 개발자, 기술적 우월감으로 고객을 무시하는 개발자, 코드는 쓰지만 바카라임은 지지 않는 개발자 역시 회사에 비싼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진짜 구분선은 개발자와 비개발자가 아니다.

Builder와 Bureaucrat다.


무언가를 앞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 주위에 절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Jack Dorsey와 Sequoia Capital의 Roelof Botha는 2026년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에서 기업의 계층구조를 일종의 ‘정보 전달 장치’로 해석했다.


과거에는 정보가 사람을 거쳐 위로 올라가고 결정이 다시 아래로 내려와야 했기 때문에 중간 관리층이 필요했다. 그러나 AI가 이 전달·요약·검색·조정 기능의 상당 부분을 맡기 시작하면 조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중간관리자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관리자’가 불필요해진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관리자, 어려운 결정을 대신 바카라임지는 관리자, 갈등을 해결하는 관리자, 고객과 현장을 이해하는 관리자는 AI 시대에도 귀하다.


없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기능이다.


“김 대리 자료 어디까지 됐어요?”

“이거 임원용 한 장으로 바꿔주세요.”

“대표님이 궁금해하실 것 같으니 표 하나 추가합시다.”

“제가 위에 잘 이야기해볼게요.”


말만으로 한 달 월급을 받을 수 있었던 시대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Google의 DORA 연구도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로 보지 않는다.

2025년 조사에서 기술 종사자의 약 90%가 업무에 AI를 사용했고 80% 이상이 생산성 향상을 체감했지만 연구의 핵심 결론은 따로 있었다.


AI는 좋은 조직을 더 좋게 만들고 엉망인 조직을 더 빠르게 엉망으로 만든다.

워크플로가 나쁘고 바카라임이 없으며 내부 정치가 심한 회사에 AI를 넣으면 ‘쓸데없는 산출물’이 폭증한다.


그래서 회사 정치가 더 무섭다.


조직 정치에 관한 오래된 메타분석에서도 정치가 강하다고 인식할수록 직무 만족과 조직 몰입은 낮아지고, 스트레스와 이직 의도는 높아지며, 과업 성과와도 부정적인 관계가 나타났다.


회사 정치의 본질은 아부가 아니다.

기여와 보상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일을 잘한 사람이 아니라 잘 보인 사람이 승진한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보다 문제를 보고한 사람이 인정받는다.

고객을 만난 사람보다 임원을 만난 사람이 힘을 가진다.


직원은 바보가 아니다.

환경에 적응한다.

일을 잘하기보다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는 법을 배운다.


연예인, 정치인, 인플루언서를 보며 느끼는 피로와도 닮았다.

문제는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진심까지 성과지표가 되는 산업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면 조회수가 측정되고, 소신을 말하면 지지율이 움직이고, 일상을 공개하면 광고 단가가 붙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이라는 문장이 너무 많이 사용되면서 그다음 문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2026년 출간된 『The Routledge Companion to Social Media Influencers』가 정리한 연구들도 인플루언서 세계의 ‘진정성’을 단순한 순수함이 아니라 상당 부분 관리되고 연출되는 진정성으로 설명한다.


친근함, 일상의 노출, 어설퍼 보이는 영상조차 전문적으로 설계될 수 있다. 지나친 상업화와 반복적인 브랜드 노출은 진정성 인식을 떨어뜨릴 수 있다.


회사도 똑같아지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더십보다 리더십 콘텐츠가 많고, 혁신보다 혁신 발표자료가 많으며, 고객보다 사내 정치에 능한 사람이 조직의 중심으로 올라온다.


AI가 들어왔다.

“그래서 이 업무가 실제로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회사가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쓸모 있다, 없다’로 나누고 싶지는 않다.


사람의 존엄과 직무의 가치는 다른 문제다.

회사는 사람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일을 폐기해야 한다.


보고를 없애고 판단을 남겨야 한다.

전달을 없애고 바카라임을 남겨야 한다.

정치를 줄이고 고객을 가까이 둬야 한다.

직급을 묻기 전에 무엇을 만들었는지 물어야 한다.


조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던져야 한다.

“당신이 이번 달에 사라진다면 고객이 무엇을 불편해할까요?”


답을 찾지 못했다고 당장 해고할 이유는 없다.

사람의 일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비개발자가 아니다.

개발자도 아니다.

현실을 바꾸는 일보다 현실을 설명하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든 것도 결국 회사라는 것이다.

사람을 자르기 전에 조직도를 의심해야 한다.


‘원래 이렇게 해왔습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한다.


회사를 망치는 사람을 찾고 싶다면 사람 얼굴부터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반복하고 있는 쓸모없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한다.

AI 시대가 회사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생산성조차 아니다.


‘일’이라고 부르며 먹여 살려온 것들 중 무엇이 사실은 일이 아니었는지를 들켜버리는 것.
그 폭로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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