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적응할 시간은 모두에게 오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빼앗았는가

byDataSopher

이 글을 읽기를 원하는 독자 | 변화가 두려운 온라인 게임인, 디지털 환경에서 작아지는 중장년층, “직원들이 왜 변하지 않지?”라고 생각해본 리더와 정바카라 설계자



기술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기술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왜 사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야 할까.


키오스크 앞에서 뒤의 줄을 의식하는 사람,

회사에서 새 협업툴 사용법을 묻기 민망한 사람,

챗GPT를 열어놓고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화면만 바라보는 사람.


이런 장면을 쉽게 ‘적응이 느린 사람’의 문제로 정리한다.

나는 그 표현부터 의심하고 싶다.

느린 것이 아니다. 연습할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다.

도시의 빛, 망설이는 손끝.png

지금 슬롯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문제지는 매달 바뀌는데 공부시간은 주지 않는다.


회사는 AI를 도입한 뒤 생산성을 요구하고,

행정은 앱으로 옮겨가고, 은행 창구는 줄고,

식당 주문은 태블릿이 대신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이 정도는 할 줄 아셔야죠.”


2025년 한국 디지털정보격차 조사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95.4%였다.

그런데 ‘역량’은 56.2%에 그쳤다.

70대 이상으로 좁히면 역량 수준은 29.4%까지 내려간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여준 것과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던 셈이다.


AI도 비슷하다.


OECD에 따르면 OECD 국가 기업의 AI 도입률은 2021년 약 7%에서 2025년 약 20%까지 빠르게 증가했다.

OECD는 일반적인 AI 리터러시 교육 공급이 늘어나는 역량 수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불편한 역설이 생긴다.

교육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교육을 가장 적게 받는다.


최근 OECD 분석에서 낮은 기초역량을 가진 성인의 성인학습 참여율은 OECD 평균 27%였다. 한국은 고작 12%였다.


낮은 숙련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배워야 하는데 현실은 거꾸로다.

좋은 온라인 게임은 더 많은 교육을 제공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퇴근 후 새로운 도구를 만져본다.

이미 잘하는 사람이 더 자주 연습한다.


그러다 연습량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다.

그래서 나는 ‘적응 기회 격차’라는 말을 쓰고 싶다.


누군가는 근무시간에 AI 교육을 받는다.

누군가는 아이를 재운 뒤 자정에 유튜브를 본다.


누군가는 유료 AI를 여러 개 결제해 비교한다.

누군가는 무료 사용량이 끝나면 그날의 공부도 끝난다.


누군가는 실수하면 옆자리 동료가 알려준다.

누군가는 한 번 실수하면 “역시 나이 든 사람은 안 돼”라는 표정을 견뎌야 한다.


이것을 모두 개인의 의지 차이라고 부르면 슬롯는 편해진다.


OECD는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성인 가운데 40% 이상이 일이나 가족에 쓸 시간이 부족해서 학습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저숙련층일수록 교육 참여율도 낮다.


그러니까 “배우면 되잖아”라는 조언은 시간이 있는 사람이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노동자 100명 가운데 59명에게 재교육이나 역량 향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중 11명은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패자는 전환 과정에서 배울 기회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평생학습을 개인의 취미에서 슬롯의 인프라로 옮겨야 한다.


회사라면 AI 교육 영상 링크 하나 보내고 ‘교육 완료’ 버튼을 누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근무시간 안에서 직접 써보고, 틀리고, 다시 해볼 시간을 줘야 한다.


공공서비스도 앱을 만들었다고 사람 창구를 몽땅 없애선 안 된다.


디지털 교육 역시 사용법 설명회 한 번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버튼을 잘못 눌러도 괜찮고, 똑같은 질문을 열 번 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연습장이 필요하다.


기술을 잘 쓰는 사람에게 보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질문해도 모욕당하지 않는 슬롯다.

‘적응할 권리’다.


산업혁명에서는 노동자가 기계를 배워야 했다.

인터넷 시대에는 컴퓨터를 배워야 했다.

이제는 AI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문명은 매번 개인에게 적응을 요구하면서 적응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는 교묘하게 흐려왔다.


시간도 네가 내라.

돈도 네가 내라.

퇴근 후에 공부해라.

실패의 수치심도 네가 견뎌라.

그래도 뒤처지면 경쟁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 구조가 정말 공정한가.


ILO는 전 세계 노동자의 약 4분의 1이 생성형 AI에 어느 정도 노출된 직업에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업 전체가 사라지기보다 업무의 내용이 변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2026년 연구에서도 AI가 생산성과 업무방식을 실제로 바꾸고 있지만 혜택과 위험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AI가 누구의 직업을 빼앗을까?”


이 질문보다 다른 질문이 중요하다.

“변해버린 일을 다시 배울 기회는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기술 발전을 늦추자는 쪽이 아니다.

더 빨리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슬롯에는 더 많은 손잡이가 필요하다.


계단을 빨리 만든 것이 혁신이라면,

경사로까지 만든 것이 문명이다.


AI 시대의 선진국 역시 가장 강력한 AI 모델을 가진 나라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빨리 배우는 사람은 마음껏 달리게 하면서도, 가장 천천히 배우는 사람까지 다음 시대로 데려갈 수 있는 나라.


그런 슬롯가 기술적으로도 더 강하다.


기술은 미래를 만든다.

누구를 미래에 태울지는 기술이 결정하지 않는다.


그 선택만큼은 아직 인간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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