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다음 것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길들여졌다
엘리베이터 20초를 견디지 못한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까지 3분이 남으면 휴대폰을 꺼낸다. 화장실에도 들고 간다. 신호등이 빨간불이면 화면을 본다. 영화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영화 평가를 검색한다.
인류는 그렇게 오래 살아왔는데 겨우 30초의 무료함도 견디지 못한다.
나 역시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바카라을 읽다가 한 문단이 어렵게 느껴지면 휴대폰을 만졌다. 필요한 정보를 찾으려고 켰다가 뉴스보고 댓글읽고 영상 하나를 보다가 상관없는 곳까지 흘러갔다.
나는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휴대폰이 내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도파민 디톡스가 필요하다.”
여기서부터 삐끗한다.
도파민은 몸속에 쌓인 독소가 아니다. 며칠 유튜브를 끊는다고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질도 아니다. 도파민은 동기, 행동 선택, 학습과 보상 예측 등에 관여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다.
2024년 Nature Neuroscience에 실린 도파민 연구 리뷰에서도 도파민을 ‘쾌락 물질’로 설명하지 않는다. 중요한 개념이 보상예측오차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뇌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일이 일어났는가?”를 학습한다.
스마트폰이 무서워진다.
다음 영상이 재미있을지 모른다.
메시지가 왔을지도 모른다.
좋아요를 눌렀을 수도 있다.
핵심은 보상보다 ‘모른다’는 데 있다.
숏폼을 하나 더 넘기는 손가락은 영상을 찾는 손가락이 아니다.
가능성을 당기는 레버에 가깝다.
좋은 영상이 나올 수도 있고 쓰레기 같은 영상이 나올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다시 한 번 화면을 당기게 만든다.
슬롯머신과 닮아 있다.
지금 시대의 문제를 ‘도파민 과잉’이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하다.
그 표현은 바카라임을 개인의 뇌로 돌린다.
“네가 자제력이 약해서 그래.”
“폰을 끊어.”
“도파민을 참아.”
개인의 절제력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와 데이터 과학자들이 설계한 시스템이 있다.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에서 멈췄는지 본다.
무엇을 오래 봤는지 측정한다.
무엇을 넘겼는지 기록한다.
한쪽에는 인간의 의지가 있고 다른 쪽에는 수십억 명의 행동 데이터가 있다. 이걸 단순한 의지력 대결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소셜미디어를 완전히 끊는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2025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4674명 규모의 연구들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소셜미디어를 일정 기간 완전히 중단해도 긍정 정서, 부정 정서, 삶의 만족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2024년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디지털 디톡스가 주관적·심리적 웰빙을 소폭 개선하는 효과가 관찰됐다.
연구 결과가 엇갈린다.
이 불일치가 중요하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쓰느냐, 안 쓰느냐’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망치로 요리도 할 수 있고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듯 기술 사용시간만으로 삶을 판단하기 어렵다.
두 시간 동안 논문을 읽은 사람과 두 시간 동안 숏폼을 넘긴 사람의 스크린타임은 똑같이 120분이다. 하지만 120분의 밀도는 전혀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의력이 얼마나 자주 찢어졌는가다.
2025년 Computers in Human Behavior에 실린 메타분석은 27개 실험을 종합해 학습 중 휴대전화로 인한 주의 분산이 즉각적인 기억에 중간 정도 규모의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끊김이다.
생각이 깊어지려는 순간 알림이 온다.
글이 어려워지는 순간 검색한다.
무료함이 시작되는 순간 숏폼을 연다.
지루함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대신 생각이 깊어질 시간을 함께 없애버렸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도파민 디톡스’가 아니다.
‘마찰 복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재미있는 것과 나 사이에 아주 작은 불편을 다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숏폼 앱을 첫 화면에서 치운다.
알림을 끈다.
밥을 먹는 20분 동안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거창하지 않다.
작은 마찰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기술에서 마찰을 제거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원클릭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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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스크롤.
개인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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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의 역사는 인간과 욕망 사이의 거리를 줄여온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리가 너무 짧아졌다.
생각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비싼 능력은 정보를 빨리 얻는 능력이 아니다.
AI가 답을 만들어주고 알고리즘이 볼 것을 골라주는 시대에는 ‘당장 반응하지 않는 능력’이 희소해질 것이다.
심심함을 견디는 사람.
한 문장을 오래 붙드는 사람.
알림이 와도 하던 생각을 끝내는 사람.
재미없는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더 강해질 것이다.
도파민을 없앨 필요는 없다.
즐거움을 죄바카라감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유튜브를 봐도 되고 게임을 해도 되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된다.
한 가지 질문은 필요하다.
“내가 선택했는가, 이것이 선택하게 만들었는가.”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디톡스는 도파민 디톡스가 아니다.
‘다음 것’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습관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몇 분을 다시 견뎌보는 것.
인간의 생각은 무료한 틈에서 다시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