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만들던 사람이 글로벌 AI 지형을 읽는 사람이 되기까지
13년 동안 콘텐츠를 만들어 파는 회사를 굴렸다. 베이징에서 시작해 서울로 옮겨오는 동안 만든 것을 세어보면 영상과 카드뉴스와 캠페인이 몇 만 건은 될 텐데, 그 대부분은 발주처의 이름으로 나갔고 내 이름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대행이라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이고, 나는 그 일이 싫지 않았다.
그 일을 접으려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도 해야 하고, 아마 그 뒤로도 한동안은 할 것이다. 다만 올해 들어 회사가 다음에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묻게 됐고, 그 답이 콘텐츠를 만드는 일과는 조금 다른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회사가 어려워서 하는 고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이 있을 때 방향을 찾아두어야 한다는 쪽이 더 컸다.
계기는 조금 민망한 데 있었다. 직원이 며칠씩 걸려 가져오는 결과물이, 내가 AI와 앉아서 10분 만에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낫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직원이 못해서가 아니라 도구가 달라져서 그런 것인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발주처도 곧 같은 도구를 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파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던 셈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한때 기술이었다. 카메라를 다루고 편집을 하고 카피를 쓰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우리 같은 회사였다. 그런데 그 기술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되면 남는 것은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판단과, 만든 것이 어떻게 읽히는지 아는 능력이다. 나는 후자에 더 오래 관심이 있었다. 베이징사범대학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부터 그랬고, 국제관계로 옮겨가서도, 지금 문화산업으로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질문은 사실 하나였다. 같은 말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다르게 읽히는가. 영역은 세 번 바뀌었지만 결국 같은 맥락 위에 있었던 셈이다.
그 질문을 AI에게 옮겨 던진 것이 올해 4월 『아세아연구』에 실은 논문이었다. ChatGPT와 딥시크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비교했는데, 딥시크가 자국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은 예상한 대로였지만, 중립으로 보이던 ChatGPT도 맥락까지 읽으면 자기 쪽 가치를 조용히 전제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중립이 아니었고, 다만 한쪽은 직설적이고 한쪽은 우회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광저우 APEC 행사와 인차이나포럼에서 한중이 AI를 두고 어디에서 손을 잡을 수 있는지를 발표할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결국 그 질문들도 AI가 무엇을 어떻게 읽어내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첫 글에서 딥시크 기사 제목을 세어본 이야기를 했다. 그 조사는 논문을 위해 한 것이었지만,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 방법이 회사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신문 제목을 세던 눈으로 AI의 답을 세면 된다. 세계 각지의 AI에게 한국 브랜드를 물어보고, 돌아오는 답에서 그 브랜드가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표시한 다음,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홍보와 마케팅의 방향을 잡는 일이다. 사람들이 검색 대신 AI에게 묻기 시작한 지금, 그 답 안에서 자기가 어떻게 말해지는지를 알고 싶은 곳은 생각보다 많다.
이 일이 우리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3년 동안 글로벌 홍보마케팅을 해온 회사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학교와 현업에서 AI에 관한 연구를 놓지 않고 해왔다는 점이다. 이 둘을 같이 가진 곳이 흔하지 않고,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AI가 K브랜드를 어떻게 읽어내는지를 함께 볼 수 있는 회사는 더 드물다. 지금은 그것이 우리의 자산인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좋다. 결과물이 눈에 보이고, 발주처가 좋아하면 바로 알 수 있고, 잘 만든 영상 하나는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조사는 그런 것이 없다. 몇 달을 들여 표 몇 장이 나오고, 그 표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 그 가치를 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표 몇 장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이 선택이 맞았는지는 몇 년 뒤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만드는 사람에서 읽는 사람으로 옮겨가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앞으로 이 온라인카지노에서 하나씩 적어갈 생각이다. 다음 글은 그보다 훨씬 전, 열 살에 중국어를 고른 날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