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에 관한 무성한 소문들

bybeyond juri


조로에 관한 소문들이 광장을 떠돌고 있다. 어젯밤 사령관의 세금 마차가 털렸다, 마차 문짝에 Z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그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때 돈 디에고가 소문의 길을 가르며 느릿느릿 광장을 가로지른다. 저 집 아들은 칼 한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을 거라고, 사람들이 수군댄다. 디에고도 이런 수군거림이 그리 달갑지 않다. 그래도 못 들은 척 여유 있게 부채질을 한다.


광장에서 조로는 두 개의 방식으로 호출된다. 하나는 환호로, 하나는 조롱으로.


무기명 Z, 한 글자로 줄어든 이름


돈 디에고 데 라 베가라는 이름에는 신분, 가문, 재산, 교육, 슬롯적 위치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돈 디에고 데 라 베가라는 이름은 개인을 설명함과 동시에 슬롯적 지위를 증명한다.


조로는 이 선명한 자기증명을 Z라는 한 글자로 줄인다. 자신의 실체를 추적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삭제한 것이다. 따라서 조로에게 이름은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었다. 무엇보다 조로는 이름을 감추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본명을 마을에서 가장 초라한 이름으로 전락시켰다. 돈 디에고 데 라 베가라는 길고 번듯한 귀족의 이름은 겁쟁이 한량의 이름이 되고, 정작 그의 영웅적 행동에는 무기명 Z라는 한 글자만 남는다. 칭찬은 Z라는 한 글자가 받고, 조롱은 진짜 이름이 받는다.


이름을 걸 수 없는 노동


이름은 일과 사람을 잇는 선이다. 누가 이 일을 했는지, 이 성과는 누구의 것인지를 알려 주는 주소다. 조로의 일에는 이 선이 끊겨 있다. 결과는 Z가 가져가고, 비용은 디에고가 치른다. 무능하다는 평판, 겁쟁이라는 수군거림, 아버지의 실망까지 모두 그가 혼자 감내해야 한다.


사령관이 지배하는 광장에서 유능함은 곧 표적이 된다. 진짜 실력을 드러내는 순간 가장 먼저 권력의 칼날이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약해 보이는 얼굴로 낮을 견디고, 무기명의 Z로 밤을 산다. 자신의 검과 능력을 낮의 무대 위에 올리지 않기로 한 고독한 선택. 조로가 Z라는 무기명 속에 정체를 숨기듯, 우리 역시 매일 저마다의 무언가를 숨기고 출근길에 오른다.


사원증 아래의 이름


사원증을 목에 거는 순간, 이름은 지워지고 직함으로만 존재한다. 조직 안에서 개개인은 이름 대신 대리나 과장, 혹은 담당이라는 기능으로 존재한다. 밤새 고민해 쓴 기획안은 팀의 성과로 들어가고, 실수하는 경우에만 고유명사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매일 출근길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진해서 지운다.


상사의 농담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내 소신보다 회사의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사람들. 세상은 이를 자기관리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준다.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말하는 사람은 피곤한 존재로 낙인 찍히고, 적당히 둥근 사람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조직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이 아니라, 목소리를 삼키는 법을 학습시킨다.


문제는 이 가면이 단순한 방어기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가면 자체가 본래 얼굴의 자리를 잠식한다. 참는 습관이 반복되면, 본래 고민했던 문장을 잊는다. 퇴근 후의 일상과 주말의 휴식조차 상사의 목소리에 순응한다. 낮의 직함은 끝내 밤의 정체성마저 삼켜 버린다.


돌아갈 이름


여기서 조로와 우리는 다른 길을 간다.


조로는 낮 시간 부채질하는 한량으로 사는 와중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다. 광장이 온통 디에고를 손가락질할 때조차 이 비아냥이 가면을 향해 있음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가면은 감춤의 도구일 뿐, 자아를 집어 삼키는 망각의 문이 아니다. 밤이 오면 그는 정확히 자기 이름으로 돌아간다.


반면 우리는 가면을 너무 오래 쓰다 보면 이를 자신의 얼굴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조직에서 말은 역할이 자신이 되고, 타인의 기대가 기준이 된다. 결국 돌아갈 자아의 좌표를 잃어 버린다. 조로가 진짜 얼굴을 숨긴 까닭은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신념을 지켜 내려는 전략이었으며, 세상이 그의 진면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조로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한계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나는 지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해서 얼굴을 숨긴 것인가. 아니면 이미 그 얼굴을 잊은 채 가면 자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가면을 쓰는 것과 가면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조로에게는 밤이 되면 돌아갈 이름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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