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시와 이준익 감독의 <동주>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글로 이 바카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처음 문학 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에밀리 디킨슨의 시 「3월」을 읽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다가오는 순간, 아직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서둘러 온 반가운 손님으로 3월을 맞이하는 시였다. 그 시로 문을 열었던 이야기는 여름을 지나 지금 가을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을 이어왔다. 다시 추운 겨울이 시작될 것이고, 우리는 깊은 어둠 속에서 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지나온 여정을 함께 돌아보며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 글에서는 윤동주의 시와 생애를 시집 밖에서 만나보려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따라 그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윤동주 문학관’을 찾아가 시가 하나의 공간으로 구현되는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시인의 삶과 영화, 그리고 문학관이라는 공간을 거쳐 다시 그의 시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들어갔다가, 기억과 상상 속을 지나, 자신의 언어를 찾아 다시 삶으로 나오는 길. 그 길의 끝에서 만나는 윤동주는 엄혹했던 시절, 상처와 내면의 갈등을 시로 견디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 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한 시인의 삶을 돌아보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윤동주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읽은 뒤에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우리가 가지고 돌아갈 것은 윤동주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된 자신의 마음과 아직 쓰이지 않은 자신의 문장일 것이다.
오랜만에 영화 <동주>를 다시 보았다. 강하늘 배우가 연기한 동주는 흑백 화면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생전의 윤동주도 꼭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의 생애를 정리한 대표적인 저서인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영화로 재현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시인은 태어났다. 고종사촌이었던 송몽규는 그 보다 약 석 달 앞선 9월 28일에 태어났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함께 입학해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윤동주는 1942년 도쿄의 릿쿄 대학에, 송몽규는 교토의 제국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두 사람은 떨어져 지내게 된다.
윤동주가 릿쿄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학부 단발령이 내리는 등 제국주의의 광풍이 학원까지 휩쓸고 있었다. 릿쿄 대학의 그런 분위기는 윤동주가 도쿄를 떠나 송몽규가 있는 교토로 가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해 10월 윤동주와 송몽규는 교토에서 다시 만났고, 윤동주는 정지용이 다녔던 도시샤 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1945년 2월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실제로 일본에서 공부한 기간은 1년 3개월에 불과했다.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형무소에 갇혀있었으며,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윤동주의 죽음을 둘러싸고는 지금도 여러 의문이 남아 있다. 공식적인 사인은 뇌일혈. 그러나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았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에서 당시 규슈제국대학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1980년 일본인 윤동주 연구가인 고노오 에이찌가 주장한 주사 실험설과 관련된 것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윤동주의 마지막 순간을 둘러싼 진실은 현재까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윤동주의 시와 이름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오히려 더 널리 알려졌다. 1968년 연세대학교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졌고, 거기에는 「서시」가 새겨졌다. 1990년에는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시비가 조성됐다. 역시 「서시」가 새겨져 있다. 바로 옆에는 정지용의 시비도 있다. 정지용의 시 「압천」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시인의 생애를 바탕으로 영화 <동주>를 살펴보자.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시와 삶을 소재로 했다.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었기에 윤동주 시를 이야기하면서 이 영화를 빼놓기 어려울 정도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송몽규의 존재도 새롭게 부각시켰다. 무엇보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크린에 나타난 윤동주의 모습 때문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동주는 바카라 읽기와 시 쓰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나온다. 그러면서 내심 사촌인 몽규와 경쟁하고, 때로는 위축되기도 하며, 상처받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기까지 한 청년의 모습이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 덕분에 그의 시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그렇게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영화의 분위기가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 주요 인물은 윤동주와 송몽규, 그리고 강처중과 이여진이다. 이여진을 제외하고는 실존 인물이다. 영화는 이들의 빛나는 청춘을 찬란하고 유쾌하게 그린다. 함흥 출신의 처중은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동주, 몽규와 한방을 쓰며 특유의 푸근한 모습으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여진은 있을 법한 허구의 인물이다. 동주가 짝사랑하는 이화 여전 여학생으로 나온다.
몽규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실제 송몽규는 윤동주와 함께 성장했으며 영화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게 그려진다. 두 청년은 성격이 대조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과 문학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여진을 향한 마음조차 비교된다. 동주와 몽규는 빛과 그림자처럼 다르게 보이지만,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듯이 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보완한다.
도쿄와 교토에서 떨어져 지냈던 두 사람은 동주가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다시 만나게 된다. 동주가 교토에 가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미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었던 몽규와 뜻을 같이하지 않았다면 그의 생애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도쿄의 육첩방에서, 혹은 늙은 교수의 강의실에서 시를 쓰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렇게 살아남은 윤동주는 우리가 아는 그 윤동주일까. 무엇보다, 그의 시가 여전히 감동적일 수 있을까….
영화 <동주>의 의의는 비교적 전기적 사실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과 견주어 보면, 몇 장면이 아쉽기는 하나 대부분이 사실에 근거하여 성실하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몽규의 존재를 재조명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실 재조명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동안 일부 윤동주 연구자만 알고 있었던 그의 존재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윤동주 평전'에서도 윤동주 못지않게 송몽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뒤늦게나마 이 영화를 통해 윤동주의 벗이자, 젊은 혁명가였던 송몽규를 주목하게 되었다. 몽규로 인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동주의 또 다른 모습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인 ‘윤동주의 재해석’이라는 관점과 연계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윤동주가 저항 시인이며 기독교 시인임을 기계적으로 외워왔다. 물론 영화 속 동주에게도 저항적이고 기독교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가 더욱 강조하는 것은 평범한 청년으로서의 모습이다. 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까지 노트에 습작 시만 쓰고 있었던 동주는 축하하면서도 부러움과 위축감을 느낀다. 교토제국대학에 몽규만 합격했을 때도 동주는 절망하고 열등감에 휩싸인다. 평생의 벗이었던 몽규와 함께 지내면서 경쟁하고 갈등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도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강처중의 존재다. 영화에서는 주로 웃음을 유발하는 감초 역할로 등장하지만, 그는 윤동주의 절친한 벗으로 좀 더 진지하게 그려도 좋았을 것이다. 강처중은 윤동주가 유학 시절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이자, 그 편지에 동봉된 시들을 보관했다가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 「봄」 등 5편이 그의 손을 거쳐 보존됐다. 이 작품들은 릿쿄 대학 입학 직후인 1942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쓰인 시로, 윤동주의 일본 유학 시절에 창작된 시 중 남아 있는 작품은 강처중이 보관한 이 5편이 전부이다.
해방 이후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은 정지용과 함께 윤동주의 유고 시집을 내는 데에도 큰 힘을 보탰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강처중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현대사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그는 슬롯주의에 경도되어 좌익 활동을 하였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6·25 전쟁 이후 월북했다. 이 때문에 강처중의 이름은 윤동주의 유고 시집에서 ‘서울의 한 벗’으로 익명 처리되었다가 근래에 이르러서야 알려졌다. 이 영화를 계기로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강처중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화에는 동주가 시를 쓰고 낭송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흰 그림자」,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등 여러 작품이 영화에 포함되어 있으며, 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 배우가 낭송한다. 그의 목소리는 시인의 깊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독백처럼 들린다. 영화에 삽입된 일부 시는 실제 창작 시기와 영화 속 배경이 일치하지 않아 아쉽지만, 윤동주의 시를 대중에게 친근하게 소개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영화 <동주>가 윤동주의 전기적 사실에 충실했다고는 하나, 일부 내용은 실제 사실과 다르다. 예술 작품이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과 예술적 진실은 마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한 창작물을 넘어 윤동주의 전기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사실과 다른 부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윤동주의 연인에 관한 문제이다. 영화에서는 이화 여전에 다니는 여진과 릿쿄대학 여학생 쿠미, 두 여성이 등장하며, 동주가 이들에게 마음을 두는 것으로 그려진다.
윤동주가 좋아하던 여성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 여성은 누구였을까? 이는 윤동주 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는 ‘순’, 또는 ‘순이’라는 여성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윤동주에게 서로 마음을 나누던 연인은 없었다. 고향에서 여성을 사귀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연희전문학교 시절 이화 여전 문과에 다니던 여학생을 짝사랑했다는 당시 윤동주의 후배였던 정병욱 교수의 증언이 있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은 기차를 타고 통학했고, 성경 공부를 하며 서로 건너다보는 정도의 사이였다고 한다. 강처중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윤동주를 회고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을 그 여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고백하지 않았다. 그 여성도 모르는 친구들도 모르는 사랑을 회답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채 고민도 하면서 희망도 하면서-.
쑥스럽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강처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초간본) 「발문」에서
릿쿄 대학 시절에는 도쿄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박춘혜라는 여성에게 마음을 두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그 여성이 다른 사람과 약혼하면서 관계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에게는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교제한 연인보다는 혼자 마음을 품었던 여성이 있었던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진과 쿠미는 이러한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다.
다음은 ‘정지용과의 만남’이다. 영화에서는 여진의 소개로 동주가 정지용 시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윤동주가 정지용을 만났는지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정지용은 윤동주를 만난 일이 없다고 했지만, 라사행 목사는 자신이 윤동주와 함께 정지용을 만나러 갔다고 증언했다. 정작 정지용 본인은 만난 일이 없다고 하는데, 타인은 만났다고 하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윤동주와 정지용은 문학적으로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정지용의 시집을 탐독했다. 영화에서도 몽규가 정지용 시집을 동주에게 빌려다 주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정지용은 윤동주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학청년의 우상이었고, 윤동주 역시 기회가 된다면 정지용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설령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더라도 정지용에게 윤동주는 자신을 찾아온 여러 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지용이 그 만남을 기억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윤동주는 정지용을 만났지만, 정지용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현재로서는 두 사람의 만남을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영화의 끝에 동주는 쿠미의 도움으로 자신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하려 한다. 윤동주는 실제로 영문 시집 출간을 시도했을까? 쿠미가 허구의 인물이듯, 이 역시 영화적 상상력에 속한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자작시 19편을 골라 77부 한정으로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출간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시집 세 부를 필사하여 한 부는 자신이 소장하고, 한 부는 영문과 교수였던 이양하에게, 나머지 한 부는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다. 앞의 두 부는 유실되었고, 정병욱이 보관한 시집을 통해 윤동주의 시가 세상에 알려졌다.
윤동주가 쓴 작품은 1943년 7월 14일 체포되면서 일본 경찰에게 압수당했다. 교토의 시모가모 경찰서에 수감된 뒤 고오로기 형사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일본어로 번역했다고 전해지지만. 이 원고들 역시 남김없이 유실되었다.
시를 쓰거나 강의하는 문인들의 모임에서 한 선배 교수가 말했다. 어쩌면, 그때 압수된 윤동주의 작품이 교토의 어느 고서점 창고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아마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집 밖에서 윤동주를 만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의 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이곳은 청운 수도 가압장을 개축하여 만들었다.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건물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면서 용도에 맞게 일부를 고치고 윤동주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시를 공간으로 만나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시를 그림과 음악으로 감상하거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화로 만나는 일은 흔하지만, 공간으로 경험하는 일은 드물다. 시와 건축과의 만남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언덕길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는 릿쿄 대학 시절 윤동주의 모습이 걸려 있고, 그의 시 「새로운 길」도 보인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어지는 그 길은 이제 윤동주를 새롭게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윤동주 문학관은 세 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 전시실에는 실제 우물이 전시되어 있다. 윤동주 고향인 용정에서 사용하던 우물을 그대로 옮겨와 재설치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윤동주가 물을 떠 마시고 여름날 등목을 했음 직한 ‘과거의 우물’이다. 윤동주는 그렇게 생긴 우물에 얼굴을 비춰 보았을까.
벽에는 윤동주 관련 서적이 놓여 있고, 그 앞의 유리 테이블 안에는 윤동주의 시집이 전시되어 있다.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정음사, 1948)과 증보판(정음사, 1955)이다.
제2 전시실은 천장 없이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다. ‘열린 우물’인데,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공간 자체가 거대한 우물처럼 보인다. 벽에는 물이 차올랐던 흔적이 층층이 남아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짙은 갈색을 띠는데, 마치 물이끼가 낀 것 같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이 공간은 하늘을 담고 있다. 거꾸로 된 우물이다. 파란 하늘과 역광을 받아 그림자처럼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우물 안의 풍경을 연출한다.
윤동주 시 「자화상」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라고 노래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우물에는 하늘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있다. 윤동주 시에 나오는 우물을 형상화했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하늘이 곧 우물이 되는 특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제3 전시실’은 닫힌 우물이다. 들어서면 갑자기 어두워진다. 처음에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어둠이 눈에 익으면 저만치 천장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한 줄기가 보인다. 실제로 물탱크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습하고 답답한 분위기 때문에 감옥이 연상된다.
한쪽에는 오래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보았던 작은 나무 의자들이 흩어져 있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소학교 때 바카라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작은 의자 뒤에는 역시 나무와 철재로 만든 걸상 몇 개가 더 놓여 있다. 딱딱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앉으면 맞은편 벽을 스크린 삼아 윤동주의 생애와 시를 담은 흑백 영상이 천천히 흘러간다. 얼떨결에 폐쇄된 공간에 갇혀 수인(囚人)이 된 관람객들은 정지용이 윤동주 시집 서문에 쓴 ‘무시무시한 고독’을 잠시나마 체험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았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런 것이다.
-정지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초간본) 「서문」에서
영상이 끝나고 제3 전시실을 나서면 갑자기 환한 세상이 펼쳐진다. 바로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다. “까치가 날고/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새로운 길」) 하는 풍경 속에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산바카라하기 좋은 길이다. 밤이면 수많은 별빛이 내려 이 길을 따라 빛나리라. 언덕 위에는 오래된 소나무 밑으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고 새겨진 반원형 바위가 있다. 그 모양이 무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윤동주의 이름이 새겨진 바위 주변에는 마른풀들이 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이곳에도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고 시인의 언덕에는 다시 자랑처럼 풀이 무성해질 것이다.
윤동주에게 시 쓰기는 곧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로 남겼다. 그 시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읽는 이에게 위로를 건네고,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 시인의 언덕에 마른 풀이 겨울을 견디고 있듯, 우리 안에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장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 문장들도 저마다의 때를 만나 피어날 수 있을까.
프롤로그에서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3월」을 읽으며 독자들에게 ‘위층’으로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일상의 익숙한 풍경에서 잠시 벗어나 문학 속을 거닐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자는 뜻이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출발한 여정은 문학과 영화, 기억과 상상, 그리고 시 쓰기를 거쳐 윤동주에게 이르렀다. 윤동주의 시에도 겨울이 지나고 자신의 별에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살아간 두 시인의 시가 이 바카라의 처음과 끝에서 만난다.
이제 그 여정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내려올 시간이다. 문학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 그 안에서 발견한 마음을 간직한 채 당신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시를 펼쳐 들었을 때, 아직 쓰이지 않은 당신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