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검사하러 가서 남의 눈치를 봤다.
바카라을 읽다가 안경을 벗어 닦는 일이 잦아졌다. 렌즈에 뭔가 묻었나 싶어 불빛에 비춰보면 별것 없었다. 닦고 나서도 글자는 비슷했다. 바카라을 당겼다가 밀었다가 했다. 요즘 바카라은 왜 이렇게 글씨를 작게 넣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바카라 만드는 사람에게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노트북 화면의 글자도 한 단계 키웠다. 원고는 읽기 편해졌는데 한 화면에 들어오는 문장이 줄었다. 문단 끝을 보려고 자꾸 화면을 내렸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안경원에 갔다.
안경사는 내가 쓰던 안경을 받아 살펴봤다. 언제 맞췄느냐고 물었다. 이 년쯤 됐다고 했다가, 더 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경을 맞춘 해는 가물가물한데 그때 비가 왔다는 건 기억났다. 그런 이야기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하지 않았다.
먼저 기계 앞에 앉으라고 했다. 턱받침에 턱을 올리고 이마를 붙였다. 동그란 창 너머로 길이 하나 뻗어 있었고, 그 끝에 빨간 열기구가 떠 있었다. 열기구가 흐려졌다가 또렷해지기를 몇 번 되풀이했다. 그냥 보고만 있으면 됐다. 기계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안쪽 의자로 옮겨 앉았다. 안경사가 검사용 테를 얼굴에 얹었다. 평소 안경보다 묵직했다. 귀에 걸린 다리를 맞추는 손이 가까이 왔다가 물러났다. 벽 쪽에 숫자가 켜졌다.
처음에는 수월했다. 보이는 숫자를 읽으면 됐다. 작은 줄로 내려갈수록 대답이 느려졌다. 둥근 건 알겠는데 육인지 팔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죄송한데, 이거 팔이에요?”
“안 보이시면 안 보인다고 하셔도 돼요.”
나는 웃었다. 읽을 수 있는 줄보다 한 줄은 더 읽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서 잘한다고 칭찬을 받을 일도 없는데, 모르는 숫자까지 어떻게든 맞혀보고 있었다. 렌즈를 바꾸는 소리가 났다.
“지금이 1번이고요. 이게 2번이에요. 어느 쪽이 더 선명하세요?”
“2번이요.”
그건 금방 알았다. 번져 보이던 숫자 가장자리가 또렷해졌다. 렌즈가 한 번 더 바뀌었다.
“자, 이번에는 이게 1번이고요. 이게 2번이에요.”
이번에는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진한 것 같고 다른 하나는 획이 가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 선명한지는 생각할수록 헷갈렸다. 아까 본 것을 기억하려고 하면 지금 것이 흐트러졌다. 안경사의 손이 렌즈 옆에서 멈춰 있었다.
“2번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아요.”
“네.”
다음으로 넘어갔다. 나는 방금 지나간 1번이 더 나았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곧바로 말을 바꾸기는 뭣했다. 조금 전까지 2번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1번일 수도 있다고 하면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대답 하나로 일이 번거로워지는 건 아닐까. 다음 비교가 이어졌고, 나는 이번에도 둘 중 하나를 골랐다.
바깥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직원이 손님에게 인사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괜히 대답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몇 번을 더 비교한 뒤에 질문이 바뀌었다.
“지금은 어떠세요?”
“네, 괜찮아요.”
말은 쉽게 나왔다. 그런데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는 나도 정확히 몰랐다. 잘 보인다는 뜻인지, 이 정도면 됐다는 뜻인지.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더 분명해질까 싶어 깜빡였다. 숫자는 여전히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벽에 붙어 있었다.
안경사는 옆에 놓인 렌즈를 살폈다. 나는 그 손을 보다가 벽의 숫자로 눈을 돌렸다. 내가 고른 답들은 숫자가 되어 새 렌즈에 들어갈 것이다. 그 안경으로 몇 년은 바카라을 읽고 원고를 써야 했다. 차이를 몰라 망설였다는 것,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서둘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니 안경사는 알 길이 없었다.
“죄송한데요.”
안경사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 그 두 개요, 한 번만 다시 보여주세요.”
“네. 이거랑 이거요?”
렌즈가 바뀌었다. 나는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숫자 하나를 정해 가장자리를 봤다. 여전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죄송한데, 비슷해요. 잘 모르겠어요.”
“네, 비슷하시면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돼요.”
안경사는 다른 렌즈를 집었다. 내가 미안해할 틈도 없이 다음 비교가 시작됐다.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였고, 손놀림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한번 폈다.
렌즈를 바꾸고 어느 쪽이냐고 물으면, 둘 중 하나는 골라야 제대로 대답하는 거라고 여겼다.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상대가 준비한 질문에 협조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보고 있는 사람은 나인데, 정작 대답할 때는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안경사는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와 테의 위치를 고쳐주고 렌즈를 몇 번이나 바꿔 끼워도, 그 안쪽에서 숫자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내가 말해줘야 했다.
“이건 더 진하게 보이는데, 아까 것이 좀 편한 것 같아요.”
말하고 나서 잠깐 망설였다. 진하다는 것과 편하다는 것이 서로 다른 답이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그럼 아까 걸로 다시 볼게요.”
안경사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렌즈를 바꿨다.
이번에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숫자를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쪽과 계속 보고 있고 싶은 쪽이 꼭 같지는 않았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보이는 만큼만 말했다. 전보다 낫다고 했다가, 다시 보니 비슷하다고도 했다. 말머리마다 붙이던 ‘죄송한데’가 그때는 빠져 있었다. 일부러 뺀 것은 아니었다. 눈앞의 차이를 살피느라 잊었다.
마지막으로 손바닥만 한 카드를 건네받았다. 작은 글씨가 크기별로 몇 줄 적혀 있었다. 평소 바카라 보는 거리에 들고 읽어보라고 했다. 위쪽 줄은 읽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글자가 뭉쳤다. 나도 모르게 카드를 든 팔이 앞으로 나갔다.
“가까운 거 보실 때 불편하셨죠? 노안이 오기 시작한 거예요. 이맘때 많이들 오세요.”
바카라 글씨가 작아진 게 아니었다. 바카라 만드는 사람에게 묻지 않길 잘했다. 렌즈가 하나 더 얹히자 아래 줄 글씨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검사가 끝나갈 무렵, 안경사는 시험용 안경을 쓴 채 바깥쪽도 한번 보라고 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울과 진열장, 유리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 벽의 숫자만 보다가 가게 안을 둘러보니 눈이 낯설었다.
진열장 위에 작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글씨였다. ‘주문하신 렌즈는 이삼일 뒤에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읽는 동안 글자가 번지지 않았다. 바카라을 당겼다 밀었다 할 때처럼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됐다.
“괜찮으세요?”
등 뒤에서 안경사가 물었다.
네, 하려다가 안내문 쪽으로 고개를 조금 더 돌렸다.
“잠깐만요. 조금만 더 보고요.”
안경사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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