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byCOSMO

집에서 나와 신호등 하나를 건너고 편의점을 지나면 그 카페가 있다. 걸어서 오 분이 채 안 걸린다. 문을 밀면 소리가 난다. 종은 없지만 뻑뻑한 경첩이 내는 소리다. 그 소리에 맞춰 계산대 쪽에서 인사가 온다.


"어서 오세요."


나를 보고 하는 인사인지, 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인사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오늘은 눈이 마주쳤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드시고 가세요?"

"네."


매번 같다. 순서도, 문장도. 나는 세 마디를 하고 상대도 세 마디를 한다. 카드를 내밀면 받아서 단말기에 꽂고, 영수증 필요하시냐고 묻고, 괜찮다고 하면 계산대 아래에서 진동벨을 꺼내 건넨다. 진동벨을 쥐고 자리로 간다. 창가 두 번째 자리를 좋아하는데 마침 비어 있다. 노트북을 열고 충전기를 꽂는다. 벽 아래쪽 콘센트 커버는 여전히 반쯤 깨져 있다.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창가 자리에서는 밖이 잘 보인다. 유리 너머로 인도가 지나가고 그 뒤가 이차선 도로다. 건너편에는 약국과 세탁소가 나란히 있고 세탁소 앞에는 비닐을 씌운 옷들이 걸려 있다. 오후가 되면 볕이 유리를 타고 들어와 화면이 잘 안 보인다. 그럴 때는 몸을 조금 틀어 앉는다. 유리에는 가게 이름이 붙어 있는데 안쪽에서 보면 글자가 뒤집혀 있다. 그러니까 저 글자는 지나가는 사람들 몫이고, 나는 매일 그 뒷면을 본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깝고, 커피가 입에 맞는다. 신맛이 튀지 않고 뒷맛이 짧아 두 잔을 연거푸 마셔도 속이 편하다. 작업 시간은 따로 없다. 원고가 급하면 아침 일찍 나오고, 밤새 막히던 날엔 오후 느지막이 나온다. 오전에 두 시간 앉았다가 집에 다녀와 저녁에 다시 오기도 한다. 하루에 문을 두 번 미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흘 내내 발길을 끊는 주도 있다. 집에서 잘 써지는 날엔 굳이 문밖을 나설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 그 사람과 나는 정해진 시간에 만나지 않는다. 요일도, 간격도 없다. 내가 문을 밀었을 때 카운터에 그가 서 있으면 만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서 있으면 엇갈릴 뿐이다. 다른 직원이 있는 날에도 "어서 오세요"는 똑같이 들린다. 목소리의 결이나 말끝의 높낮이가 조금 다를 뿐, 나는 같은 세 마디를 건네고 진동벨을 받아 든다. 바뀌는 건 없다.


두 번 가는 날은 이렇다. 오전에 앉았다가 별 소득 없이 접고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문을 민다. 그러면 인사도 두 번 받는다. 어서 오세요. 몇 시간 전과 같은 문장이다. 또 오셨네요, 같은 말은 붙지 않는다. 나도 아까 왔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문도 그대로 세 마디다. 달라지는 건 자리 정도다. 아침에 앉았던 창가가 저녁에는 차 있어서 안쪽 테이블로 간다.


그 사람이 있는 날이라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눈이 한 번 더 마주치거나 인사가 조금 더 또렷하게 얹히는 정도. 그런데 그 차이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때도 있었다. 며칠 연속으로 다른 얼굴이 서 있길래 그만뒀나 싶었는데, 어느 날 문을 여니 다시 서 있었다. 서로 "오랜만"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쉬다 왔는지 시간대를 바꿨는지 나는 알 길이 없고, 그 역시 내가 며칠 만에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 며칠은 그저 아무 일도 아닌 채로 흘러갔다.


가게 안은 늘 일정한 소음으로 차 있다. 원두 갈리는 소리가 짧게 끊어지고, 스팀 노즐에서 쇳소리가 새어 나오고, 각얼음 쏟아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규칙은 없지만 익숙해서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고요한 곳보다 문장이 잘 풀린다. 노트북 화면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장이 막히면 얼음을 빨대로 휘젓다 계산대 쪽을 본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왼쪽 주머니에 꽂힌 검은색 볼펜. 명찰은 없다. 가슴께에 작게 새겨진 가게 로고뿐이다. 사람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는 애초에 비어 있다.


나는 저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


아르바이트생인지 직원인지, 문을 열고 닫는 바카라임자인지 시간을 나눠 쓰는 교대 근무자인지 알지 못한다. 물어본 적도 없고 부를 일도 없었다. 카운터로 다가가면 상대가 먼저 말을 건네고, 나는 메뉴를 말하면 그만이다. 이곳에서는 서로의 이름이 필요한 순간이 오지 않는다.


그쪽도 마찬가지다. 카드를 건네받으며 성씨 정도는 스쳤을지 몰라도 기억할 까닭은 없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카드를 쥐었다 놓을 테니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모른다. 그저 노트북을 오래 켜두는 손님,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손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손님. 그 정도의 흐릿한 윤곽으로 서로를 안다. 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계속 만난다.


돌아보면 이런 관계가 이곳뿐만은 아니다. 같은 층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가 그렇다. 문이 열리면 눈을 맞추고, "안녕하세요" 한 뒤 각자의 층수 버튼을 확인하고는 벽보를 본다. 내릴 때 가벼운 목례를 보탠다. 몇 호에 사는지는 알아도 이름은 모른다. 분리수거장에서 상자를 접고 빈 병을 내려놓다 마주치는 사람들, 새벽에 막힌 문장을 털어내려 들른 편의점의 야간 근무자. "봉투 필요하세요?"와 "괜찮습니다"로 끝나는 대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을 모르는 이들과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인사를 나눈다. 인사가 끝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는 사건으로 유지된다. 밥을 나누고, 시간을 쪼개고, 오해를 쌓았다가 풀고, 다시 엉키며 관계의 부피를 키운다. 사건이 멈추면 사이는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인사만 나누는 사이는 정반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유지된다. 사정을 묻고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다음 만남에는 안부를 건네야 하는 바카라임이 생긴다. 물어야 할 말이 생기면 묻지 못했을 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가벼움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 사이에는 쌓이는 게 없다. 몇 년을 보아도 첫날과 같은 거리에 서 있다. 오래 보았다고 친밀해지지 않고, 한참을 비웠다고 어색해지지도 않는다. 사흘 만에 문을 밀어도 "어서 오세요"는 늘 같은 온도로 돌아온다.


진동벨이 울려 컵을 받아왔다. 컵을 건네는 손, 왼손 검지에 반창고가 감겨 있었다. 물에 젖어 끝이 살짝 들떠 있었다. 종이에 베였는지 얼음통 모서리에 긁혔는지 알지 못한다. 묻지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오면 반창고는 떨어져 있을 테고, 상처가 언제 아물었는지 모른 채 지나간다.


자리로 돌아왔다. 얼음이 반쯤 녹아 맑아져 있었다. 몇 줄의 문장을 더 적고, 몇 줄은 지웠다. 한 시간쯤 지나 노트북을 덮었다. 충전기를 챙겨 가방에 넣고 빈 잔을 반납대에 올렸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게요."


등 뒤에서 다른 손님을 향한 인사가 들려왔다. 내가 들었던 것과 같은 문장, 같은 높낮이다.


문을 밀고 나왔다. 경첩 소리와 함께 짤막한 배웅이 뒤따라왔다.


"안녕히 가세요."


문이 완전히 닫히자 소리가 뚝 끊겼다. 신호등 앞에 섰다. 초록 불이 켜졌고, 나는 건넜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