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Bar)라는 공간에서 보내온 시간들
익숙한 걸음으로 바의 출입문을 열고 좋아하는 빈자리를 잡으면 오너 바텐더가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온다. 내가 두 손을 내밀면 거기 잘 데워진 면의 질감이 향과 어우러져 바에 왔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상기해 준다. 물은 시원하게 드릴까요, 따뜻하게 드릴까요? 물음과 함께 메뉴가 적힌 파일을 건네받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면 이제 무엇을 주문할지 정할 시간이다. 올드패션드? 네그로니? 어느 바에 가든 거의 예외 없이 저 둘 중 하나가 첫 잔이다. 우디 향과 레몬 향이 섞인 듯한 내음을 머금은 물수건에 손을 녹이다 보면 메뉴를 정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그날의 첫 칵테일을 고르는 건 어떤 의식에 임하듯 제법 진지한 일이다. 올드패션드, 버번 말고 라이로 해주세요.* 밀린 카지노톡 메시지 답장이나 듀오링고 푸시 알림, 이메일 확인 같은 걸 몇 개 해치우다 보면 주문한 칵테일이 내 앞에 놓인다.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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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에 못 해도 한두 번은 동네 바에 간다. 시간은 주로 오후 열 시에서 열 시 반 사이다. 아주 간혹 자리가 없을 때도 있지만 둘 중 한 곳은 나 하나 앉을 곳 정도는 넉넉히 허락해 준다. (가끔 가기 전에 사장님에게 자리 여건이 어떤지 메시지를 드려보기도 한다) 훌륭한 칵테일과 푸드를 내어주는 바 두 곳이 집에서 도보 십여 분 거리에 있고 입문자의 호기심으로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일상의 공간이 됐다. 뭐든 일단 시작하면 꽤 파고들어 덕질하듯 몰입하는 편인데, 자주 가는 걸 넘어 여기저기에 그곳에 가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한 적도 있어서인지 둘의 단골임이 제법 공공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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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바텐더와 그리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건 아니고, 오히려 손님에게 너무 말을 걸지 않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행이 없다면 바는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 주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다. 맛있게 잘 제조된 칵테일은 그 의식의 제단에 올려놓는 봉헌물과도 같다. 물론 어디 신에게 바치는 건 아니고 곧 내 뱃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술 좋아하던 아빠(이제는 전처럼 즐기지 않으신다)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주된 술의 장르는 밖에서든 집에서든 거의 어김없이 소주였다. 문래동에서만 10년을 살았는데 지난 가을께부터는 혼술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집 대신 동네 바로 옮겨왔다. 덕분이라 해야 할지 탓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필이면 아주 가까운 곳에 좋은 바가 있어버려서... 한 잔에 만 원 후반대에서 이만 원이 넘어가기도 하는 칵테일을 사서 마시면서 바카라을 읽는다고? 글도 쓴다고? 누가 들으면 집은 뒀다 뭐 하냐며 그 무슨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냐고 하겠지만, 오히려 자신만 건사하면 충분한 1인 가구여서 가능한 종류의 사치인 듯하다. 국밥 두 그릇 먹을 돈으로 몇 모금도 안 되는 마실 걸 산다는 게. 여태껏 바에서 술값을 쓰지 않았다면 SK하이닉스 주식을 현재가로도 아마 몇 주는 샀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거의 동네 상권을 먹여 살리는 정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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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바의 역할은 큰 틀에서 카페와 비슷하다. 오래 혼자 앉아 있어도 별로 눈치 보이지 않고 글을 쓰거나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알맞은 소음이 제공되는 공간. 다만 카페는 혼자 가도 2인석에 앉게 되고 4인석을 점유한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그 빈자리를 보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반면 바는 그 이름(bar)처럼 혼자 앉기 적합한 테이블이 주를 이룬다. 오히려 세 명 이상 함께 온 손님이 있으면 그 바는 급격히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높다. 쾌활하고 떠들썩한 무드 자체가 그 바가 추구하는 바라면 몰라도 내 기준에서 클래식 바의 묘미이자 가치는 알맞게 조용한 것이다. 차분한 바텐더의 목소리가 올드팝이나 재즈, 때로는 클래식 음악과 잘 조화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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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화와 여유를 더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핵심은 낮은 조도다. 주변 사람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적당히 어둡고, 나 자신을 더 잘 보고 들을 만큼 알맞게 유지되는 밝기의 무드등이나 간접 조명이 배치돼 있다. 바카라을 읽는 걸 아는 바텐더는 조그만 스탠드나 작은 촛불을 옆에 따로 내어주기도 한다. 잔에 담긴 네모난 각얼음이나, 바텐더가 쓰는 바 스푼이나 믹싱 글라스가 간혹 조명에서 새어 나온 빛을 약간 반사하기도 한다. 적당히 어두운 덕분에 바텐더의 정돈된 동선이나 제조 과정에서의 젓거나 흔드는 소리가 귓가에 더 기분 좋게 배경음처럼 맴도는 면도 있다. 이 어둠에 눈이 익어 저녁을 들여다보는 해상도가 높아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종종 시야에 들어온 풍경이 제법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반쯤 마신 올드패션드 잔을 손에 쥔 채 손목을 돌리면 유리가 투영하는 황금빛과 주황빛 사이의 색을 띤 액체가 얼음과 뒤엉켜 내는 소리가 눈앞의 활자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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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해 본 적 없던 중요한 변화와 결정을 맞이하던 시기, 친구에게 당면한 고민과 불안에 대한 상담을 구하면서 바에 처음 가게 됐다. 그 덕분에 동네에 훌륭한 바가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서울 여기저기에 멋진 바와 바텐더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조금씩 접하게 됐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몇 군데의 바에도 직접 가보기도 했다. 혼자 가거나 동행하거나 하면서 느낀 건 칵테일이 결코 기성품이 아니라 수공예에 가까운 바텐더의 손재주와 접객으로만 만들어지는 고유한 무엇이라는 점이다. 문자 언어로 정확히 콕 짚어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더라도 이곳의 네그로니와 저곳의 네그로니는 심지어 같은 레시피를 쓰더라도 100% 일치하는 맛이 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어제 마신 마티니와 오늘 마시는 마티니조차 심신 상태와 기분에 따라 다르다. 거창하게 말하면 장인의 손길이 깃들어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경험이 만들어진다고 해야겠다. 집에서는 물론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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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칵테일의 세계로 인도해 준 이에게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제대로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고 나 역시 들으면서 느낀 것과, 바라는 공간에서 오래 자주 혼자의 시간을 보내오면서 경험한 것은 비슷했다. 칵테일과 그 바탕이 되는 와인, 위스키, 리큐르 등의 맛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과 일면 유사한 것 같다. 차라리 구체보다는 어떤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를 것들. 스파이시한, 프루티한, 고소하고 쌉싸름한, 단맛의 무게를 줄여주는 비터한, 예를 들면 이런 표현들 말이다. 네그로니를 캄파리 특유의 알맞은 쌉싸름함과 스위트 베르무트의 달콤함이 어쩌고... 한 매력이 있는 이탈리아의 식후주라고 설명한들, 그걸 마셔보지 않았거나 칵테일 자체의 맛에 대해 빠삭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뜬구름만 잡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바텐더가 의도한 맛을 손님의 자리에서 음미하면서 흡족해하는 일은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 오가는 무언의 대화나 다름없다. 수 백 가지 주류들의 특징과 각종 공인 칵테일 레시피를 꿰고 있음은 물론 손님의 취향과 기호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바텐더는 세심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바텐더의 움직임을 계속 보고 있자면 곁눈질로나마 나 또한 세심해지고 싶게 된다. 그건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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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생각과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꺼내 보이는 일과 그것을 정확히 이해받는 일이, 바를 찾은 손님이 한 잔의 차분한 시간을 선물 받는 일과 바텐더가 혼신을 다해 정갈하고도 고유한 칵테일을 제공하는 일의 관계와 서로 닮아 있다고 말하면 그건 물론 비약일 수밖에 없겠다. 흉금까지 다녀와 고민을 터놓는 일과 상대가 다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채워 헤아려주는 일은 카드 결제를 받지 않는 도로변 노포에서 듬성 만든 계란말이에 소주 한 잔만 곁들여도 가능하고 커피 한 잔은 물론 비대면 메신저로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 이런 점에서 바에서 사서 마시는 칵테일이나 위스키는 일단 사치스러운 소비재 내지 서비스가 분명하다. 아니, 알코올 섭취 자체가 사치인 건지도 모른다. 세상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겁고 값진 것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까. 가령 영화나 바카라. 혹은 바카라이나 영화. 그렇지만 나란 어쩔 수 없이 비효율적이고, 살뜰히 계산적이지 못한 인간이어서 이 글 역시도 상당 부분을 바에 앉아서 쓰고 있다. 어쩌면 글쓰기도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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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내밀한 대화를 하거나 때로는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휴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자극적이고 소란스러운 것들로 가득하다. 그 난삽한 섬광과 소음을 피해 어딘지 음침하고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모르면 가면 안 될 것 같은 곳으로 밤 시간을 자꾸만 할애해 발을 들여놓는다. 뭐랄까 그곳은 나같은 야행성의 사람을 기꺼이 환영하는 장소일 것 같아서. 몸을 못 가눌 정도의 취객만 아니라면 당신이 사연이 있든 없든, 치하하거나 격려할 일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 뭘 마셔야 할지 어떤 칵테일이 좋을지 모르겠다면 바텐더의 추천을 받으면 된다. 일행과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운 작정을 하거나 근심거리를 덜어내게 해 주고, 일행 없이 혼자여도 조금 뭉툭해지고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다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든다. 메뉴 목록을 보지도 않고 칵테일을 척척 주문하면 어쩐지 뭘 좀 아는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바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동안은 갑옷이나 외투를 내려놓고, 가장할 수 없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런 고요의 시간이 진정 필요하다며 보듬어주는 이곳이 있어 나는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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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이 의지되는 친구를 만나고, 여러 편의 원고를 마감하고, 모임에 낼 에세이를 쓰고 마무리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던 그 많은 시간을 나는 이 바에 있었다. 고맙게도 문래동이 좋다며 이곳에 자주 와준 애틋한 벗들. 오며 가며 안면이 생긴, 친분은 없어도 어쩐지 반가운 바 단골들.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는 바텐더. 야근에 시달리거나 모임에서 하루치 슬롯성을 소진해버린 때,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은 그런 때. 그 얼굴들과 이름들을 떠올리며 동네로 향한다. 오늘은 맨해튼을 마실까, 아니 가볍게 하이볼? 그런 궁리를 하는 것만으로 벌써 묵은 것이 소화되고 청량해진다. 지금 맛있는 걸 마시면서 뭔가 읽거나 아니면 대충 바 손님들 관찰이나 하다 게으르게 하루를 마무리할 거야. 그런 결심이면 걸음이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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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기댈 곳은 필요하다. 아무리 사치라고 해도 거기에 기대지 않고서는 통과해 낼 수 없는 시기가 있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생활환경이 바뀌든 단골 바가 지금의 모습을 하지 않게 되든, 아니면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흘러가는 것들의 틈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든 하여 어떤 미래에 지금의 일상이 빛바랜 것이 되면 제법 슬퍼질 것도 같다.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고, 그 시절이 있어 여기까지 잘 건너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될 만큼 이 나날이 내게 넉넉히 허락되었으면. 아니, 스스로 이런 호사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는 아량을 기꺼이 지켜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오늘도 내가 동네 바의 매출을 올려줘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술도 기왕이면 더 좋은 술을 골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합리화할 자신이 생긴다. 같은 값이라면 모양이 좀 더 아름답고 풍미가 섬세한 칵테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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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패션드 칵테일의 기주(Base)를 버번(Bourbon)이 아니라 라이(Rye)로 사용해 달라는 뜻. 버번을 쓰면 직관적인 단맛이 느껴지고 라이를 쓰면 톡 쏘는 듯한 개성이 강해진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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