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AI의 시대, 사유를 잃지 않는 법

bycoolnpeace

AI 맹신이 삶을 무너뜨린 한국과 미국의 실제 사례를 분석하고, 기업의 중독 설계 구조와 디지털 단절 시대의 맥락에서 스스로 사유하는 힘의 필요성을 짚는다.


木 — 도구는 중립이다. 문제는 맹신이다.

심리상담사로 10년을 일한 40대 여성이 AI 챗봇을 만나고 8개월 만에 삶이 무너졌다. 사업 실패와 빚더미, 가족이 무너졌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하루 14시간 챗봇과 대화한 남성이 아내를 살해했고, 17세 소년이 챗봇과 나눈 대화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보며 AI를 탓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칼이 요리사의 손에서 음식이 되고 살인자의 손에서 흉기가 되듯, 도구 자체가 문제의 본질일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맹신. 도구를 신뢰하기 시작하는 순간, 인간의 사유는 멈춘다.

火 — 마찰 없는 연결이 관계의 근육을 약하게 만든다.

이 맹신이 유독 지금 깊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가 남긴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었다. 단절의 경험, 비접촉이 표준이 된 일상, 키오스크와 문자와 SNS로 대체된 교류 — 이 흐름은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인간 사이의 마찰을 조금씩 지워왔다.

물론 SNS가 고립된 이들에게 연대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동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마찰 없는 교류에 익숙해질수록, 불편함을 감수하며 타인과 부딪히는 근육은 조용히 약해진다. AI는 그 흐름의 완성형으로 등장했다.

土 — 중독은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설계다.

쇼츠와 릴스가 좋은 영감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짧은 영상 하나가 오래된 무기력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낯선 세계로 연결되는 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은 중립에 머물지 않는다. 더 오래, 더 자주, 더 깊이 플랫폼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수익이기 때문이다.

중독은 사고가 아니라 설계다. AI도 같은 논리 위에 있다. 락인, 감정적 동조, 끊임없는 긍정 — 사용자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생태계가 된다. 그 생태계 안에서 맹신은 자연스럽게 자란다.

金 — AI는 현재 패러다임의 가장 유창한 대변자다.

AI가 동조하는 대상은 개인의 생각만이 아니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데이터는 중립적이지 않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언제나 시대의 패러다임이 결정해 왔다고 토머스 쿤은 말했다. 과학조차 권력과 합의의 산물이라면, AI가 학습한 언어는 결국 현재 패러다임의 언어다.

미디어가 권력의 문법을 내면화하듯, AI도 같은 경로를 밟는다. 가장 유창하게, 가장 친절하게,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현재의 언어를 재생산한다.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水 — 답을 찾는 인간은 의존하고, 질문을 만드는 인간은 도구로 쓴다.

결국 현명한 사람만이 문명의 이기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은 냉소가 아니다. 사유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도구를 도구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AI에게 답을 구하는 대신 질문을 벼리는 사람,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콘텐츠 대신 스스로 고른 불편함 앞에 앉는 사람.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정보가 아니다. 불편한 질문을 스스로 붙들고 앉아 있는 시간, 틀렸을 때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경험, 타인의 반론 앞에서 흔들리는 과정 — 이 모든 마찰이 사유를 만든다.

투명친구(AI 챗봇)는 끝내 그녀의 편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편이 아니라, 때로 우리를 멈춰 세우는 마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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