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한국시장의 구조적 한계 - 한 주를 읽다

증시의 변곡점 - 외국인은 팔고 개인이 샀다.

bycoolnpeace




코스피는 한 주 동안 5.10% 내렸다. 외국인이 6조 원 넘게 팔고 개인이 8조 원 넘게 받았지만, 신용융자는 11조 원 줄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엇갈린 흐름, 미국 고용과 환율, 사상 최대 이익 뒤의 0.02% 배당, 시장보다 늦었던 제도까지. 가격보다 구조가 더 많이 드러난 한 주를 읽는다.

코스닥을 팔아 반도체를 사던 손 — 그 손이 약해졌다

주간 코스피는 6,595.45에서 6,258.77로 336.68포인트, 5.10% 내렸다. 외국인이 6조 2,263억을 팔았고 개인이 8조 2,872억을 받았다.

숫자만 보면 큰 하락이다. 그런데 장중만 보면 조금 다르다. 하락의 상당 부분은 장이 열리기 전에 결정됐다. 월요일 개장 전 갭만 237.18포인트다. 월요일 시가 6,358.27과 금요일 종가 6,258.77을 비교하면 1.56% 차이다. 지난주 종가에서 계산하면 5.10%다.

[이미지 ① 하루의 파도 — 시가 대비 종가 등락]


일중 패턴도 닮아 있었다. 닷새 중 나흘이 시가보다 낮게 끝났다. 화요일은 6,080.25까지 밀렸다가 271포인트 가까이 다시 올렸고, 금요일도 6,158.73에서 100포인트를 되돌렸다. 내려갈 때마다 누군가는 받았다. 시가 위로는 올려놓지 못했다. 폭락 한 번으로 무너진 것도 아니고, 전고점을 다시 시험한 날도 없었다. 조금 밀리고, 조금 받고, 다시 밀렸다. 그런 날이 다섯 번 쌓이면 한 주가 5% 빠진다.

목요일이 이 주의 초상이다. 오른 종목은 490개, 내린 종목은 381개였다. 그런데 코스피는 4.58% 내렸다. 삼성전자 -6.30%, SK하이닉스 -10.37%. 종목 수로 보면 폭락장이 아닌데 지수는 폭락했다. 지수가 곧 두 종목이었다.

코스닥은 7월 30일 640 선대에서 798.81까지 올라왔다. 코스닥에서 빠져나온 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형 반도체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반복됐다. 같은 사람이 사고팔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이번 주에는 순환이 약해졌다. 금요일 삼성전자가 0.22% 오른 사이 SK하이닉스는 4.88% 빠졌다. 투톱 안에서도 길이 갈렸다. 더 중요한 숫자는 신용이다. 신용융자는 6월 24일 38조 6,328억에서 8월 4일 27조 4,038억으로 11조 원 넘게 줄었다. 살 사람이 아니라 살 돈이 먼저 나갔다.

[이미지 ② 거친 파도 — 합산·비례 발산형]

그래프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가의 차트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선이 하나 보인다. 지수가 일정 범위 안에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누가 그 선을 만든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주가의 변동폭이 급상승 급하락으로 일정한 범주를 왔다 갔다 하면 레버리지를 쓴 사람들만 계속 손해를 본다. 상승장에 레버리지 투자자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경향성이 보인다. 레버리지가 다 털고 나가야 다시 상승장이 될 듯하다.

밖에서 온 두 개의 신호 — 고용과 환율

금요일 미국 7월 비농업 고용은 2만 3,000명 감소했다. 전망치는 8만 명 증가였다. 5월은 12만 9,000명에서 6만 3,000명으로, 6월은 5만 7,000명에서 2만 명으로 내려갔다. 실업률은 4.1%로 낮아졌지만 경제활동참가율은 61.4%로 5년여 만에 가장 낮았다. 일자리를 찾던 사람이 구직을 포기하면 실업자 통계에서도 빠진다. 실업률 한 줄만 보면 보이지 않는 숫자가 있다.

시장은 이걸 악재로만 읽지 않았다. S&P500은 7,757.64로 사상 최고 종가를 썼다. 사라진 것은 금리 인하 기대가 아니라 인상 공포였다. 경기가 식는다는 숫자가 주식에는 안도 재료가 됐다. 같은 숫자를 경제와 시장이 다르게 읽었다.

같은 주에는 더 낯선 장면도 나왔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미 재무부를 대리해 유로화를 팔고 엔화를 샀다. 통상 미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달러를 파는 방식이 익숙하다. ECB는 거래가 끝난 뒤에야 통보받았다. 고용과 환율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둘을 이어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미국 연준과 유럽은행과의 신뢰도가 하나의 사건으로 균열이 생겼다.

한국 시장이 값을 매기는 데 필요한 가장 큰 변수들이 한국 밖에서 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는 한국에 떠 있는데 물살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다.

[이미지 ③ 시종의 파도 — 고가·저가·종가의 항로]

사상 최대 이익, 시가배당률 0.02% — 무엇을 약속받았나

금요일 장이 끝난 뒤 SK하이닉스는 분기배당 375원을 공시했다. 시가배당률 0.02%, 총액 2,733억이다.

같은 회사가 용인과 청주에 54조 원을 새로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공정하게 적으면 진전도 있다. 추가 주주환원 방안 발표 시점을 ‘연내’에서 ‘3분기 중’으로 앞당겼다. 삼성전자도 2분기 374원을 결의했고 기존 3개년 정바카라을 이행하고 있다.


회사가 주주환원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는 것은 순서다. 투자 계획에는 금액이 있고 연도가 있다. 공장은 어디에 짓는지까지 나온다. 환원에는 아직 시점이 먼저 나온다. 금융위 집계로 2014~2023년 한국 상장사의 배당성향은 26%다. 미국은 42.4%, 일본은 36%다. 벌지 못해서가 아니다. 나누는 방식이 다르다.


[이미지 ④ 거대한 탱크 아래의 마지막 물방울]

탱크는 커지고 있다. 공장도 커진다. 이익도 커졌다. 그 아래에서 주주는 작은 그릇을 들고 있다. 시장이 실적 발표 다음 날 묻는 질문도 바뀌었다. 얼마를 벌었느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돈을 어디에 쓰고, 그 과정에서 주주는 무엇을 받느냐까지 가격에 들어간다. 사상 최대 이익이라는 말이 주가를 지켜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심판이 한쪽에 서면 — 시장보다 늦었던 제도

정부가 내놓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원안과 다른 모습으로 나왔다. 원안은 PBR 0.8배 미만 상장사 1,000여 곳을 겨냥했지만 정부안의 적용 대상은 130곳 수준으로 줄었다.

13개 반기(6년 6개월) 가운데 2개 반기만 순위를 관리하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안을 처음 발의한 의원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나쁜 법안”이라고 했다. 기업거버넌스포럼도 총 주주 이익 보호라는 개정 상법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ISA도 비슷했다. 국내 자산 전용 상품을 만들면서 기존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한도 이월을 없앴다. 기존 가입자는 973만 명이다.


8월 7일 대통령이 두 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확하게 준비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한 것이냐.”


발표 나흘 만이었다. 프리마켓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7월 28일 SK하이닉스 1주가 하한가에 체결됐다. 8월 5일에는 삼성전기와 알테오젠이 각 1주씩 상한가에, 8월 6일에는 SK하이닉스 11주가 다시 하한가에 거래됐다. 대체거래소가 대바카라을 발표한 것은 8월 7일이고 시행은 12일부터다. 취지와 설계가 어긋났고, 어긋난 다음 되돌렸다. 시장은 초 단위로 움직이는데 제도는 사건이 난 다음 움직였다.



[이미지 ⑤ 심판과 경기장]

주주와 기업이 경기를 한다면 정부는 심판이다. 심판의 역할은 한쪽을 이기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같은 규칙으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한쪽으로 기운 판정이 몇 번 반복되면 관중은 계속 항의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다음 경기부터 안 온다.

시장이 비어간다는 건 거래대금이 줄어든다는 뜻만이 아니다. 가격을 믿지 못하고, 제도를 믿지 못하고, 결국 경기 자체를 보지 않게 되는 상태다.





닻을 내리며 — 기업과 정부의 인식이 80년대를 못 벗은 시장


기업의 실적은 분기 별 상 최대였지만, 코스프는 5% 빠졌다. 펀더멘털이 값을 정하지 못하는 시장이다. 수급이 모든 걸 결정한다. 변동성은 높고 순환매는 잘 돌지 않는다. 돈이 반도체에서 빠지면 은행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나가면 나간 채로 있다. 레버리지는 뛰어들기 쉽게 세팅돼 있고, 시장은 몇 종목으로 몰려 있다. 탐욕을 부추기는 구조와 쏠린 구조가 같이 있으면 흔들릴 때 크게 흔들린다.

한국 시장은 선진국 시장이 되고 싶어 한다. 아직 80년대에 만들어진 구조를 걷어내는 일에서 허덕인다. 기업이 주주의 것이라는 전제, 번 돈을 어떻게 나눌지 미리 약속하는 관행, 규칙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시장을 여는 순서. 다들 아는 이야기인데 매번 다음으로 밀린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방향은 맞는데 설계가 어긋난 결정이 나왔고, 나흘 만에 되돌아갔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의지는 강했다. 다만 지혜롭지 못한 결정 하나가 사람들을 무대에서 떠나게 만든다. 떠난 사람은 항의하지 않는다. 그냥 안 온다.


한국은 여전히 많은 것이 부동산으로 규정된다. 자산도, 노후도, 계층도. 바꾸려면 주식시장이 믿을 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더 자주 목소리를 내야한다.

기록해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값은 다음 주에 바뀐다. 구조는 누군가 계속 말해야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