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 만두전골

찬바람이 불면

by은정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순간을 뒤돌아본다.

그 순간이 지니는 의미를.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 드라마 연애시대 中 -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가 있다.

<연애시대>


난 원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드라마도 나온 뒤 한 10년 뒤쯤에 보았던 것 같다.

검색해 보니 2006년 드라마이다. 무려 20년 전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드라마의 여운이 계속 남는 걸 보면 꽤나 마음에 닿았던 모양이다. 그때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10년이나 지난 그 옛날 드라마를 며칠 내내 틀어놓고 있었다. 20대였다면 그저 지나쳤을 대사들이, 서른을 넘겨 삶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내 방 안에서는 밤마다 유독 길게 맴돌았다. 어쩌면 딱 그 나이에 만났기에, 이 여운을 지금까지 오랫동안 품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되면 가끔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대사가 생각난다. 작가님은 어떻게 그런 대사들을 썼는지, 그리고 주인공들은 너무나도 그들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배우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인공인 동진은 서점 직원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은호의 직업은 수영 강사, 백수로 있는 동생, 그들을 돕는 의사 친구, 목사님 아버지, 또 레슬링 선수까지. 평범해 보이는 직업 속 독특한 직업 하나, 그마저도 이 드라마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생각해 보면 스토리가 특이했다. 아이를 잃은 부부가 이혼을 했고, 이혼한 부부가 기념일마다 만나 식사를 하는 장면이 처음 시작이다. 그러면서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심지어 동진은 동창생이었던 유경과 다시 재혼까지 하지만 유경은 동진이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그를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은 동진과 은호가 다시 만나면서 끝이 난다.

드라마를 볼 당시는 가슴 아픈 묘사와 주인공들의 각각의 심정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서 거기에 몰입해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두 이해가 갔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나이가 들고 생각해 보니 정말 보살인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유경"이다.

한강 선상 결혼식 날, 남편 될 사람의 전 와이프인 은호가 하객으로 참석해 축가를 부른다. 심지어 노래 가사가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이 말

고마워 정말 너에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너무 많이 돌아와 잊고 있었던 말 정말 고마워

고마워 정말 너에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너무 많이 돌아와 잊을 뻔했던 말 정말 고마워

고마워'


만약 실제로 결혼식에 남편 될 사람의 전 와이프가 참석해 저런 내용의 축가를 부르고 울면서 나간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유경이라는 캐릭터는 지상 최강의 자존감을 가졌거나, 거의 성인군자에 가까운 보살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인생 드라마를 꼽으라 한다면 여전히 이 드라마를 꼽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입장이 너무나 잘 담겨있어 누구 하나 탓 할 수 없는.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일 수 없는 이야기.

그 마음들이 40대가 된 지금에서야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릿하게 와닿는다.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드라마, ost마저 아련한.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드라마의 아련함에 잠시 젖어 있다가 만두전골을 먹으려고 한다.

찬 바람이 불면 역시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만 한 게 없으니까. 냄비에 만두를 얹고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20년 전 그 오래된 장면 하나가 김과 함께 몽글몽글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파, 고춧가루를 볶는다.

2. 냉동 육수가 남아서 사용했다.(시판 육수, 다시다 모두 사용 가능)

3. 간이 부족하면 멸치 액젓이나 간장, 소금으로 간을 더 한다. 고추장도 한스푼 넣었다.

4. 만두를 넣는다.

5. 계란을 풀어 둘러 한소끔 끓여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만두전골을 사이에 두고, 오랜만에 <연애시대>를 다시 틀었다.

화면 속 인물들은 여전히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울고 웃고 있다. 그땐 몰랐는데 다시 보니 상당히 어린 얼굴들이다. 김갑수 아저씨가 있는 힘을 다해 말한다. "행복해져라 은호야."


얼큰한 국물을 한 스푼 크게 떠먹고는 푹 물러진 만두를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차오르는 온기 덕분인지, 마음 마음 한구석까지 은은하게 따뜻해져 온다.


찬 바람이 불면 뜨끈한 만두전골을 먹으며 옛 드라마 다시 보는 여유.

뭐,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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