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지하철 역사나 번화가의 보도블록을 거닐다 보면, 타인의 손에 들린 사각형의 종이 가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든다. 두툼하고 묵직한 질감의 백색 종이 위에 정갈하게 박힌 폰트, 혹은 두려움 없는 강렬한 원색과 과감한 직물 끈으로 마무리된 형태. 도시인은 길을 걷는 동안 타인의 얼굴이나 옷차림을 뜯어보기 전, 그가 옆구리에 낀 쇼핑백의 겉면에 찍힌 브랜드 로고를 먼저 읽어낸다. 손에 쥐어진 쇼핑백은 단순히 방금 구매한 물건을 담아 운반하는 보조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나는 이러한 미학적·경제적 취향을 가진 사람"임을 즉각적으로 타전하는, 움직이는 이정표이자 감각의 문맥이다.
도시라는 거대한 익명의 바다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일일이 말이나 행동으로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쇼핑백과 그 표면에 박힌 로고는 가장 직관적인 통행증이자 슬롯적 아바타로 기능한다. 슬롯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와 '취향의 계급성'은, 오늘날 도시인이 손에 쥐는 종이 가방의 텍스처와 로고의 크기 속에서 가장 명료하게 실체화된다. 특정 미술관의 굿즈 쇼핑백, 서점의 담백한 종이 가방, 혹은 명품 브랜드의 정교한 로고는, 내가 어떤 문화를 소비하고 어떤 가치관에 동조하고 있는지를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들에게 보여주는 시각적 방어선이다.
쇼핑백이 품은 이 매끄러운 기호학은 타인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설정하는 섬세한 표식으로 작동한다. 붐비는 거리에서 고가의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을 든 이들은 은연중에 그 장치가 선사하는 아우라를 덧입는다. 사물에 깃든 브랜드의 가치가 사용자의 신체로 전이되며, 타인이 감히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경박하게 평가하지 못하도록 단단한 경계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엇을 들었는가가 곧 누구인가를 대변하는 도시. 이 공간에서 사물은 나의 부속품을 넘어, 나를 둘러싼 얇지만 단단한 인격의 껍질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로고 중심의 소통 방식은 내면의 결핍을 사물의 기표로 메우려는 도시인의 허기진 심리를 반사한다. 쇼핑백 내부의 실제 내용물보다 중요한 것은 겉면에 선명히 인쇄된 상징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물건을 꺼낸 뒤에도 단단하고 미학적인 쇼핑백을 쉽게 버리지 못한 채 집 한구석에 모아두거나, 장을 보거나 서류를 옮길 때 보조 가방으로 재활용한다. 브랜드가 가진 미학적 권위를 일상 속에 지속적으로 투사하고, 그 로고라는 문맥 뒤에 자신을 숨김으로써 도시인은 여전히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획득한다.
그러나 브랜드 로고로 무장한 사물화된 정체성은 때로 묘한 서글픔을 남긴다. 고유한 인격과 깊은 서사 대신 사물의 브랜드 가치로 평가받는 세태 속에서, 사물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인 동시에 나를 좁은 틀에 가두는 주객전도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 로고가 주는 일시적인 아우라가 걷히고 나면, 쇼핑백을 쥔 손가락의 피로와 비어가는 통장 잔고라는 씁쓸한 현실만이 피부로 와닿는다. 사물이 나를 설명해 주는 문맥이 될수록, 나라는 존재의 고유한 알맹이는 점차 브랜드라는 화려한 껍질 속으로 휘발되어 버린다.
화려한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시인은 문득 손에 쥐은 종이 가방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타인의 시선을 튕겨내고 나의 가치를 단숨에 증명해 주는 이 손쉬운 문명적 도구. 그 매끈한 로고의 기표 뒤에 웅크린 채, 도시인은 오늘도 사물의 힘을 빌려 자신의 부서지기 쉬운 존재감을 조용히 보강한다. 사물이 말을 하고 사람이 침묵하는, 이 견고하고 스산한 도시의 사물학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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