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지 6월호 中 '12가지 마음에 건네는 영화 처방전'
첫사랑의 계보를 잇는 영화들이 있다. 젊은 날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을 담은 영화들. <클래식>(2003)부터 <500일의 썸머>(2010), <건축학 개론>(2012)까지. 이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열혈 팬덤을 만들어낸 영화가 있으니, 바로 <라라랜드>(2016)다.
이 영화가 그토록 유명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알록달록 화려한 미국 LA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감각적인 노래와 춤. 포스터도 그렇지 않나.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슈트와 노란 원피스를 각각 잘 차려입은 남녀가 춤을 추는 이미지는 환상적이다.
또한 이 영화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누구나 젊은 시절 한 번쯤 인생의 기로에 선다. 꿈을 택할 것인가, 현실을 택할 것인가. 사랑을 지킬 것인가, 떠나보낼 것인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지만 인생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결단의 순간이 지나고, 선택하지 않은 길은 마음에 영영 새겨진다. 그 길 위에 한때 사랑했던 이가 서 있다면 그 순간을 가슴에서 지우기란 어렵다.
<라라랜드>가 포착하는 것은 정확히 그러한 순간이다. 여기 두 남녀는 사랑을 키우며 꿈을 향해 달리지만, 가진 것 없어 불안한 청춘에게 세상은 때로 가혹하다. 과연 이들은 원하는 것을, 그리고 서로를 지킬 수 있을까. 아래부터 <라라랜드>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꽉 막힌 도로 위. 차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자 갑갑해하던 운전자들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글이글 타는 도로 위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마치 이곳이 도로라는 걸 잊은 것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갑갑하던 도로에 어느새 축제가 열린다.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물들이는 이 오프닝은 <라라랜드> 전체를 요약해서 보여준다. 갈 곳 모를 무더운 여름. 그럼에도 우리는 뜨거웠고 또 행복했다고.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는 우연히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만남의 순간이 묘하다. 재즈 바에서 세바스찬은 자기만의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이지만 선곡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하지만 미아만은 그의 특별함을 알아본다.
이들은 데이트하며 LA의 야경을 감상한다. 그곳에는 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풍경을 함께 보는 것이다. 온 세상이 몰라도, 둘만은 서로의 진면모를 꿰뚫어 보며 같은 비전을 공유한다. 이것은 후반부를 위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꿈을 위해 헤어지는 순간에도 서로의 맘을 이해한다. 연인은 때로 가장 좋은 동지다.
이 영화는 자주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다. 함께 천문대에서 별을 볼 때, 이들의 몸은 우주로 나아간다. 무수한 별 사이에서 노닐던 걸음이 키스로 마무리될 때, 마치 한 편의 영화가 끝난 것 같은 아이리스 아웃(렌즈 조리개가 닫히는 것처럼, 화면 가장자리부터 검은 원이 점점 좁혀 들다가 화면이 암전되는 연출 기법)을 끝으로 씬이 마무리된다. 이 장면은 사랑과 꿈, 영화는 하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여름날이 그렇듯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둘 사이 사소한 말다툼은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이들 사이 놓인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철없이 사랑하던 시절은 끝나고 만다. 남자는 의기소침해진 여자가 꿈을 이루도록 돕고, 그 결과 여자는 파리에서 일하게 된다. 함께였다가 이제 각자 꿈을 좇게 된 둘. 이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서로의 꿈을 존중해서 이별을 맞이한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우리 둘이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을 영화는 보여준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결혼하여 애를 낳고 사는 상상이 한 편의 영화가 되어 상영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름다운 환영. 그것이 영화이고, 또 사랑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에게 가지 못한 길이다. 젊은 날의 아쉬움을 생각할 때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은 채로 서로의 기억 속에, 그리고 스크린에 새겨졌다.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라라랜드>는 보여준다. 마지막에 이 둘이 짧은 눈인사를 마지막으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것을 기억할 것이다. 때때로 우리를 찾아오는 과거의 환영 위로, 오늘은 다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