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임을 증명해 나가는 하나.
그는 누구에게나 깍듯했다.
편의점 야간 알바에게도, 지하철 입구에서 종이컵을 든 사람에게도, 새벽 거리를 쓰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직업으로 사람을 위아래에 놓는 법을 그는 모르는 듯했다.
그날도 그는 역 앞 노점에서 어묵을 하나 샀다. 주인이 국물을 떠주자 두 손으로 받고, 잘 먹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봤다.
다들 그를 그렇게 봤다.
사람들은 그 시간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다들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같은 각도로 목을 꺾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면 약속한 듯 동시에 고개를 들고, 같은 보폭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누구도 어묵 따위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는 국물을 다 마시고 또 인사를 했다. 주인은 이번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종이컵을 든 사람 앞을 지날 때, 그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전부 꺼내 놓았다. 그러고는 자기가 받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날 그는 점심을 걸렀다. 동전이 거기 다 있었으니까. 종이컵을 든 사람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자리에 동전을 놓았다.
그는 자주 하늘을 봤다.
걷다 말고 멈춰 서서, 해가 어디쯤 왔는지를 한참 올려다봤다. 아침과 저녁의 빛이 어떻게 다른지, 구름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바람의 온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는 그런 걸 다 알았다.
저 빛은 아무도 못 만들어요.
해가 지기 직전에만 나오는 색이거든요.
돈 주고도 못 사요.
그는 옆사람에게 말했지만 들은 척도 않고 제 물건을 바코드에 갖다 댔다. 편의점 알바는 봉투 필요하냐고만 물었다. 둘 다 할 일만 하고 군말은 섞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또 말했다.
사람은 자연에서 났으니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그러니 바람과 햇빛에서 받는 기운을 무시하면 안 돼요.
계산대 직원은 영수증을 뽑아 내밀었다.
아무도 그와 같은 걸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슨 색이든 고개를 숙이고 같은 화면을 봤다. 그 화면 속에서 다들 같은 걸 보고, 같은 데서 웃고, 같은 걸 샀다.
그는 교회에도, 절에도, 성당에도 갔다. 어디든 갔다.
사람에게 기대는 일을 그만둔 뒤로 그는 신에게 기댔다.
기댔다기보다 따졌다.
무릎을 꿇고도 그는 신에게 대들었다. 이만큼 했으면 됐지 않으냐고, 왜 자꾸 시험에 드느냐고.
울면서도 지지는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라면을 다 끓이고 냄비를 들고 와 앉았는데, 면이 죽처럼 퍼져 있었다. 끓는 물에 너무 오래 둔 모양이었다.
그는 그 앞에 멈춰 하늘을 —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찌하여 또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느냐고. 이만큼 했으면 됐지 않으냐고.
고작 라면 한 그릇이었다.
그는 가진 게 없었다.
없는 걸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방에는 옷 몇 벌과 이부자리, 낡은 그릇 둘이 전부였다.
더 가지려 들지 않았고, 없는 걸 채우려 애쓰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무얼 사 모으고 무얼 더 가지려 다투는지, 그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가는 길로도 가지 않았다. 다들 한 방향으로 걸을 때 그는 자주 반대로 걸었다. 더 빠른 길을 알면서도 굳이 돌아갔고, 줄을 서야 할 때 줄 밖에 섰다.
인정받는 일에도 욕심이 없었다. 잘 보일 사람이 그에게는 없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도 버리지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손수건. 빛이 바래고 귀퉁이가 해진, 오래된 천 조각.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무얼 닦는 데 쓰지도 않았다. 그저 가끔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다 다시 넣었다.
누가 그게 뭐냐고 물으면 그는 별거 아니라고 했다. 정말 별거 아닌 거라면 삼십 년을 가지고 다닐 리 없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살았다.
가진 것에도, 인정에도, 사람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그 손수건 한 장 앞에서만, 그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별종이라 했다. 그가 무엇을 끝내 못 놓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들 가는 쪽으로 가면 편하다는 걸.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을 보지 않고, 곁을 두지 않으면 된다는 걸. 그러면 아무도 그를 별종이라 부르지 않을 거였다. 끼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걸 모르지 않았다. 알면서 안 했다.
그렇게 사는 게 그에게는 숨을 참는 일 같았으니까. 편한 걸 알면서도 그쪽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혼자였고, 자주 손해를 봤고, 끼니를 걸렀고, 신에게 울었다. 다 알면서 택한 길이었다.
그게 그를 외롭게 한다는 것까지도.
그날 그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가 빨갰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모여들었다. 어깨가 닿을 만큼 붙어 섰는데도, 누구도 옆을 보지 않았다. 그는 무심코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사람이 사람 곁에 서면 으레 그러니까. 흘끔 보고, 멋쩍게 비키고, 한 발 물러나 자리를 내주고.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부딪칠 듯 서 있으면서 서로가 거기 없는 것처럼 굴었다.
비키는 사람도, 비켜달라는 사람도 없었다. 누가 발을 밟아도, 밟힌 쪽이 아무 내색이 없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기 마련인 그 작은 어긋남이, 그 자리엔 한 점도 없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그들이 걸음을 옮겼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앞질러도 미안해하지 않았고, 뒤처진 사람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누구도 누구를 의식하지 않았다. 같이 걷는 게 아니라, 혼자인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떠밀리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이 건너는데, 거기엔 아무 사이도 없었다.
그는 건너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면 늘 그랬다. 그가 고개를 숙여도 받아주는 눈이 없었고, 그가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그는 줄곧 그게 자기 탓인 줄 알았다. 자기가 별나서, 자기가 어긋나서 혼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저들은 저들끼리도 혼자였다.
그는 한참을 봤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가닿지 못했다.
그저, 저 사람들과 자기가 어딘가 다르다는 것.
그건 늘 알던 일이, 오늘 조금 더 또렷했을 뿐이었다.
신호가 다시 빨개졌다.
그는 돌아섰다.
사람들이 가는 쪽이 아니라, 늘 가던 자기 쪽으로.
골목으로 접어들면 해가 지는 게 보일 거였다. 그 시간에만 나오는 색을, 오늘도 보러 갈 참이었다.
가는 길에 그는 또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고, 가진 동전을 마저 내려놓을 것이다. 그러느라 저녁을 거를 것이고, 밤이 오면 신에게 따질 것이다. 어찌하여 또, 하고.
그는 대다수가 가는 쪽으로 한 발짝만 옮기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게 그를 살게 한다는 건 끝내 몰랐다.
골목 끝에 해가 걸려 있었다.
그 색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보지 못한 골목 저편, 누군가 같은 해를 보고 있었다.
서로는 끝내 몰랐다.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색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