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내가 먹이고 재운 것이, 나를 먹고 자랐다.

by미제


또 그만뒀다.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이제 세는 것도 의미가 없다. 면접관은 좋은 분이었고 회사도 멀쩡했고 문제는 늘 그렇듯 나였다.


가방을 멘 채 한참을 걸었다. 버스를 탈 기운도,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버거워진 지 오래였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돋아났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으면 정말 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삼켜 버렸다.


골목 어귀에서 조그마한 움직임을 봤다. 가로등도 잘 들지 않는 구석, 버려진 박스들이 쌓인 틈이었다.

무언가 작은 것이 거기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였다. 새끼인 것 같은데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 하얬을까. 지금은 회색에 가까웠다.


쪼그려 앉아 한참을 봤다. 고양이도 나를 봤다. 울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손을 뻗었다.


"너 하나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품에 넣으니 생각보다 가벼웠다. 버둥대지도 않았다. 처음 안기는 것치고 너무 얌전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그때 잠깐 스쳤지만 곧 잊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 덜 멀게 느껴졌다.




집 안, 둘이 되었다.


씻기는 데 며칠이 걸렸다. 회색이 한 겹씩 벗겨졌다. 그 밑에서 하얀 게 나왔다.

닦아낼수록 분명해졌다. 원래 이렇게 흰 거였구나.


씻기고 나면 수건에 오래 감쌌다. 품에 안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조그마한 생물체는 버둥대지 않았다. 안긴 채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한번 하얘지고 나서는, 늘 그 상태였다.

털은 언제 봐도 곱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 정작 제 몸을 핥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고양이는 종일 제 털을 고른다고 들었는데, 이 아이는 가만히 있어도 깨끗했다.


고양이를 씻기다 보면 물이 여기저기 튀었다. 나는 그걸로 샤워를 대신했다 치고 그냥 누웠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세지 않았다.


고양이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밥을 주면 먹었고, 두면 잤고, 부르지 않아도 곁에 와 있었다. 키우기 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밤이면 무릎에 올려놓고 등을 쓸었다. 따뜻한 게 손바닥에 닿았다.


집이 조용했다.


쓰다듬는 손이 털을 누르는 소리,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시계 초침이 유난히 크게 갔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계속 쓸었다.


새벽에 냉장고를 열었다. 칸칸이 고양이 간식이었다. 참치, 닭가슴살, 게맛살 모양의 것들.


문을 한참 열어 두고 보다가 다시 그냥 닫았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엔 며칠 전 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고양이는 더 하얘져 있었다.




언제부턴가 손님이 오지 않았다. 오라고 한 적도 없으니 당연했다.


전화가 울리면 화면만 보다 두었다. 두어 번 그러자 더는 울리지 않았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품에 넣고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라앉는 게 편했다.


그날도 그렇게 안고 있다 일어났다. 무릎이 배겨 옷을 털었다. 손이 두어 번 헛돌았다.

검은 니트의 선명함은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언제부턴가 밤이 길어졌다. 고양이는 해가 지면 또렷해졌다.


어둠 속에서 눈이 동그래지고, 방을 소리 없이 돌아다녔다.

난 그게 깨어 있는 시간이려니 하고 같이 깨어 있었다.


커튼은 늘 쳐 두었다.

햇빛이 들면 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빛을 싫어하는 것 같아 두꺼운 천으로 한 겹 더 가렸다.


방은 늘 한밤 같았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시계를 봐야 알았다.


방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발끝으로 걸었다. 냉장고 문은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여닫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새들이 울 때쯤 잠들었다.

눈을 뜨면 해가 기울어 있었다. 하루가 어느 틈에 빠져나가 있었다.


아까운 줄도 몰랐다. 어차피 할 일도, 갈 데도 없었으니까.


고양이는 내가 잠들면 머리맡에 와 앉았다.

깨어 있는 내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잘 따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면접을 봤다.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나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밤을 새우고 출근해 바카라상에 앉으면, 자꾸 집이 떠올랐다.


혼자 있을 고양이. 커튼은 잘 쳐 두고 나왔던가, 밥그릇은 채워 두었던가.


모니터를 보다 멍해지는 일이 잦았다. 옆자리가 두어 번 불렀는데 못 들었다.

내 일만 자꾸 늘어났다. 처리하는 것보다 처리해야 할 것들이 계속 밀려 들어왔다.

다들 나를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다.


오래 못 갔다. 이번에도 문제는 나였다.




집에 돌아온 뒤로는 거의 눕는 일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안고 누우면 하루가 갔다.

처음엔 그 따뜻함이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안고 있어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며칠 만에 일어나려는데 눈앞이 핑 돌아 벽을 짚었다.

끼니를 언제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손목이 눈에 띄게 가늘어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고양이를 들이고부터 나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일도, 잠도, 끼니도, 사람도.


얘가 눈부셔지는 만큼 나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떼어놓아야 했다.




어느 새벽, 화장실에 가다 거울 앞을 지났다.


무심코 본 얼굴이 낯설었다. 눈이 퀭하고 낯빛이 검었다. 거울을 안 본 지 얼마나 됐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더 두면, 정말로 내가 없어질 것 같았다.


다음 날, 고양이를 안아 현관 앞에 내려놓았다.

문 쪽으로 살살 밀었다. 고양이는 가지 않았다. 발치에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문고리를 잡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돌리면 되는데, 그냥 열어 주면 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뒤를 돌아봤다. 고양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두 번을 그러다 겨우 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고양이가 바람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가려는 것도 같았다.


난 문을 열어 둔 채, 안전고리를 걸었다. 문은 한 뼘만 열린 채 멈췄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고양이는 그 앞에 앉아 밖을 봤다. 나는 그 뒤에 앉아 고양이를 봤다. 저 틈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문은 그날부터 늘 그만큼 열려 있었다.

나는 매일 그 앞에 앉았다. 한 뼘의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언제든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은 열어 두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고리야 풀면 그만이니까.


틈으로 드는 빛이 노랬다가 파랬다가 했다. 몇 번의 계절이 그 사이로 지나갔다.


나는 이제 해가 기울 때면 그 앞에 앉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언제든 보낼 수 있었다. 여전히 하얀 고양이 ─



ChatGPT Image 2026년 8월 5일 오후 03_30_29.png가스레인지 위 냄비엔 며칠 전 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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