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학습 상황과 뭐가 다를까?
인터넷이 생겼을 때도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AI라고 뭐가 다를까?
AI가 학습에 기여한다는 가정은 위의 질문을 먼저 불러낸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종 정보와 고급 지식에 대한 접근을 쉽게 했지만, 과연 그것으로 아이들의 학습 환경은 나아지고, 아이들의 학습 경험은 더 발전했는가? 오히려 스마트폰 중독과 값비싼 통신요금, 기기값만 물고 있고, 아이들의 관리는 더 까다로워지지 않았을까?
30년 동안 경험한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는 근거가 없는데 AI는 무엇이 다를까? 별로, 다를 것은 없다. 지금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AI 기술은 컨텐츠 소비를 왜곡 유도하는 알고리즘일 것이며,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자동 이미지 조정 기능일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공부에 활용하고 더더욱 소수의 사람들만이 AI, 특히 챗GPT의 정보 탐색 및 조합 기능을 학습에 활용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학습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거의 항상 기각되어 왔다. 그 뿌리는 대강 "기계식 계산기"가 처음 만들어진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라디오, TV, 비디오 등의 시청각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통적으로 소수에게만 가능했던 "좋은 교육"을 다수의 학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여럿 가동되었고, 대체로 실패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혁신, AI 혁명에 있어서도 이번에도 반드시 기술을 통한 학습의 혁신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할 아주 많은 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혁신적 기술은 아이들의 학습을 혁신해내지 못할까?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당장 챗GPT를 가지고 아무리 공부를 한들, "시험"이라는 평가체계가 옴짝달싹 움직이고 있지 않다. 그런 시험 중심의 평가 체계에선 굳이 AI가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가 수십년간 해 온 종이 문제집을 반복해서 푸는 것이 제일 좋은 성적 향상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서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다시 실감하는 중이다.
시험이라는 최종 평가체계가 교육의 한 가운데 박혀 있으니, 수업과 학습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은 아이들의 학습에 대한 인식을 교란하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혁신적 기술은 학습을 향상하지 못하고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를 만들어낸다. 여기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다. 챗GPT라는 혁신적 기술이 학습에 기여하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위기로 인식하고 그것을 통제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지대에 우리는 서 있다.
그렇다고, 기술이 학습에 기여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빈익빈 부익부'라고 말했듯 챗GPT 등의 혁신적 AI기술을 통해 학생 개인들이 자신의 학습을 크게 발전시키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AI 기술은 말 그대로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다.
흥행 기록을 새로 써나가고 있는 기념비적 영화 <오디세우스>에는 '멘토르'라는 인물이 나온다. 초반부의 주인공 텔레마코스의 스승격인 인물로 극장에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렇다고. 멘토르가 멘토라는 영어 단어의 기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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