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힘들다

힘듦은 위치에너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by일환

우리는 '힘들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아침에 동료와 마주치면 "요즘 어때요?"라는 인사가 오가고, 대답은 대개 "힘들죠, 뭐"로 끝난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힘들고, 회의를 마치고 나와서도 힘들다. 집에서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아, 힘들어"라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이번에는 내가 아내에게 "오늘 좀 힘들었어"라고 말한다. 하루 동안 이 말을 몇 번이나 하고 또 듣는지 세어보면 아마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데, 정작 남의 힘듦에는 잘 공감하지 않는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저울질이 시작된다. '그게 힘들다고?', '나는 그보다 더한 것도 견디는데', '우리 때는 훨씬 힘들었어.' 겉으로는 "힘들었겠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상대의 힘듦에 점수를 매기고 있다. 그리고 그 점수는 대체로 내 힘듦보다 낮다.


회사에서는 이 저울질이 직급을 따라 일어난다. 팀원은 리더를 보며 '지시만 하면 되니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리더는 팀원을 보며 '맡은 일만 잘하면 되니 편하겠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은 '임원은 연봉을 그만큼 받으니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임원들은 '직원들은 회사가 어떻게 될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말한다. 모두가 자기 자리의 짐이 가장 무겁다고 믿는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팀원이었을 때는 리더의 고민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리더가 된 뒤에는 팀원 시절의 막막함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


나는 말단 사원의 힘듦과 최고 경영자의 힘듦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짐의 무게는 다르지만, 그 짐을 지느라 쓰고 있는 힘은 다르지 않다.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은 코드 리뷰에 달린 코멘트 하나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내일 회의에서 의견 한마디를 꺼낼 수 있을지 몇 번이고 문장을 고쳐 본다. 경영자는 수백 명의 월급과 회사의 다음 분기를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고민의 크기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이 가진 힘을 남김없이 쓰고 있다.


서버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손바닥만 한 라즈베리파이도, 수십 개의 코어를 가진 거대한 서버도 CPU 사용률이 100%에 닿으면 똑같이 다음 요청을 받지 못한다. 큰 서버가 처리하는 일이 더 많다고 해서 작은 장비의 100%가 덜 버거운 100%인 것은 아니다. 100%는 그냥 100%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힘들다.


이 생각을 가장 자주 시험받는 곳은 집이다. 초등학생인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힘들다고 말할 때가 있다. 단짝 친구가 오늘은 다른 친구하고만 놀았다거나, 알던 문제를 틀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어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게 뭐가 힘들어. 아빠는 오늘 회사에서...'


다행히 대부분은 삼킨다. 내가 짊어진 짐이 좀 더 크다고 해서 아이의 짐이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열 살 남짓한 아이에게 단짝 친구가 등을 돌린 하루는 세상의 절반이 무너진 하루다. 어른이 된 내가 그 일을 사소하게 느끼는 것은 그사이 내 그릇이 커졌기 때문이지, 아이의 일이 작아서가 아니다. 예전에 '어른은 치사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른은 자기가 지쳐 있을 때 아이에게 어른처럼 굴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아이의 힘듦을 내 잣대로 재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치사한 어른이 된다.


남의 힘듦을 내 잣대로 재는 실수를 크게 한 적이 있다. 오래전 신입 사원 시절,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올라와 내 자취방에 묵던 친구가 연구실에서 겪고 있던 괴롭힘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날 나는 상사의 트집 때문에 밤늦게 퇴근해 잔뜩 지쳐 있었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그래 봐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두 달 뒤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남의 고민을 내 잣대로 폄하했을까? 그때의 나는 내 짐이 더 무겁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밤 우리는 둘 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힘들었다.


힘듦은 위치에너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위치에너지는 높이에 비례한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더 큰 에너지를 품는다. 우리는 힘듦도 그렇다고 착각한다. 자리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바카라임이 클수록 더 힘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힘들다'를 풀어 보면 '힘이 든다'는 뜻이다. 힘은 어딘가에 서 있는 것만으로는 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밀어내거나 끌어올릴 때 비로소 든다. 물리학에서도 일은 힘과 움직인 거리의 곱이다. 아무리 높은 곳에 서 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한 일은 0이다.


그러니 힘듦을 결정하는 것은 위치가 아니라 태도다. 각자가 얼마나 깊이 고민하며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대충 임하는 사람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 낮은 자리에 있어도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힘들다. 그렇게 보면 힘들다는 말은 투정이라기보다 고백에 가깝다. '나는 지금 이 일을 대충 하고 있지 않다'는 고백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힘듦의 크기를 재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그 깊이를 알아봐 주려고 한다. "그 정도 가지고 뭘"이나 "다들 힘들어" 대신 "정말 애쓰고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다들 힘들어"라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상대의 힘듦을 평균값 속에 묻어 버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리더로서 팀원에게, 부모로서 아이에게, 동료로서 서로에게 적어도 그 말만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모든 짐이 같다는 말은 아니다. 자리마다 바카라임의 크기는 분명히 다르고, 자기 그릇보다 큰 짐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먼저다. 다만 도움을 주기 전에도, 미처 도움을 줄 수 없을 때에도, 상대가 최선을 다해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 줄 수 있다. 그건 돈도 시간도 들지 않는 일이다.


오늘 밤에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아내에게 "오늘 좀 힘들었어"라고 말할 것 같다. 아내는 아마 "나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누구의 하루가 더 고단했는지 속으로 저울질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저울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오늘 둘 다 최선을 다해 힘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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