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6
어디든 좋았다
그댈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는 그래서 낯설은 곳으로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한발자국에 설렘
두발자국에 걱정을 담아
가을을 보내기엔 아쉽지만
추위는 겨울을 보채는 그 저녁
2층 오랜 커피숍에 앉아서
어디서 올지도 모르는 그대를 기다렸다
내가 여기에 기다리고 있겠다는
무심히 한 말을 남기고
슬며시 기댄 차가운 유리는 얼음 같았다
투명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고가는 사람들 중에 그대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서늘하고 낯선 곳에서
반갑고 익숙한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분명한 행복이었다
그러니 그대는 아마 따듯한 온기를 데리고 함께 오리라
나는 그리 생각했다
한참을 창틀에 앉아있던 낙엽이 내게 인사도하지 못한채 날아가버렸을 때
그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내 뒤에서 그대가 날 보고 있었다
글썽이는 눈과
빨갛게 되어버린 코 끝에는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한 늦가을 추위가 묻어 있었다
익숙함도 아니고 반가움도 아니고
그날 그대의 첫인상은 연민이였다
창 밖 겨울 속에서 날 찾아온 연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