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4
오랜 한옥들 늘어선 길 위
하늘에서는 끈적이는 능소화 빛 노을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노곤함에 덮인 저녁 시간은 끈적이고
한낮의 피곤함에 익어버린 바람의 품에서
난 민들레 홀씨처럼 떨었다
나는 그곳에서 너와 걸었다
오래
단 둘이서 걸었다
아무도 없는 것 처럼 걸었고
내일이 없는것처럼 떠들고
웃었다
선한 하늘에선
있지도 않을 대낮의 별들이
장맛비처럼 오는 쏟아졌다
이름도 잊은 계절을
떠나보내며
내일의 우리를 그리며 숨을 삼켰다
우리의 모든 일들은
내일이 와서 생긴 일이거나
내일이 오지 않아서 생긴 일들이었단 걸
나는 그즈음 배운 것 같다
우리는 오늘도
공허한 방안에 불을끄고
빈 그릇에 깊은 어둠을 채워삼킨다
단지 두명이서
단 둘이서
참 다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