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당신의 지상에 내가 필요치 않다는 고결함 위로 봄이 옵니다
당신은 나도 이루지 못한 자유라는 마지막 수업을 스스로 완수했나봅니다
당신은 이제 나의 꽃이 아니라
어느새 자신의 상처를 거름 삼아 스스로 향기를 내는 오롯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요
긴 계절이 머물다 간 자리에
더는 어떤 문장도 보태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빗장을 풀고
빛이 드는 곳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나의 목소리는 이미 낡은 지도의 언어가 되었음을 압니다
어떤 마침표는 찍지 않음으로써 완성됩니다
당신이 건넨 마지막 안부가 나의 평온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온기를 증명하는 선언이었기에
나는 그 눈부신 독립의 영토 위에
나의 어떠한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생을 빌려 썼던 시간들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한 역사가 되었음을 시인합니다
당신이 일찍 꺼내입을 봄 옷의 자락에
나의 미안함이나 해묵은 가르침이 묻지 않도록
살을 써는 아픔으로
침묵이라는 인을 찍어보렵니다
나의 대답은 오직 이 정적 뿐
당신의 봄이 나의 부재로 인해 비로소 온전해지기를
이 깊은 침묵이 당신에게 전하는 가장 긴 축복이 되기를
깊이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