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
꿀벌은 유난히 그 꽃의 심장 근처에
제 전부를 뉘어 버리는 일이 좋았다
노란 꽃가루가 흉터처럼 온몸을 덮쳐와도
날갯짓이 무거워지는 것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제 몸의 경계는 꽃의 무늬 속에 흐려져 있었으므로
단술은 이미 마르고 서늘한 꽃향만 남은 폐허
더는 얻을 것이 없는 메마른 품이었으나
꿀벌은 자꾸만 그곳으로 돌아와 머리를 묻었다
사랑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워지는 것임을 증명하듯
향기만 남은 적막 속으로 스스로를 유기했다
머지않아 꽃이 저를 버리고 시들 것임을 안다
예고된 소멸은 꿀벌의 생을 위협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투신을 완성할 뿐이다
이유를 묻지 않는 맹목이 향기가 되어 흐르는
지금
여기
꽃의 품 안에서 꿀벌은 비로소 안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