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국제포럼
주말 오후 이곳을 찾았다. 행사가 없는 날이라 광장은 한산했다. 광장 쪽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유리 덩어리가 먼저 시야를 채운다. 길게 휘어진 유리 벽이 곁을 달리는 선로를 따라 흐르고, 그 안쪽으로 뼈대를 드러낸 철골이 배의 용골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정작 발길을 붙잡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땅이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넓은 광장을 사람들이 가로지르고, 벤치에 앉아 쉬고, 다시 역 쪽으로 흩어진다. 그들 대부분은 이 건물 안의 공연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에게 도쿄국제포럼은 어떤 건물일까.
이 땅의 이야기는 도쿄도가 자리를 옮기기로 한 데서 시작한다. 1985년 도쿄도는 본청과 의회 같은 행정 기능을 신주쿠로 옮기고, 마루노우치의 이 땅에는 국제회의를 열 수 있는 도민의 홀을 두기로 했다. 도시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관청이 떠난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도쿄는 그 답을 세계에 물었다. 1988년 말 시작된 국제 설계경기에는 50개국에서 395건의 안이 들어왔고, 이듬해 우루과이 출신의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Rafael Viñoly)의 안이 뽑혔다. 공사는 예정보다 한 해 늦게 시작됐다. 땅을 파자 에도 시대의 유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발굴 조사를 마치고 1992년 가을에 착공한 건물은 1996년 완공되어 이듬해 1월 문을 열었다. 도쿄 한복판의 땅에 들어선 공공 건물. 그렇다면 그 땅을 가장 넉넉하게 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비뇰리의 답은 땅을 비우는 것이었다. 광장 한쪽의 배치도 앞에 서면 이 건물의 구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면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까울 만큼 단순하다. 서쪽에는 A부터 D까지 네 개의 홀이 늘어서고, 동쪽 선로 쪽에는 길게 휘어진 유리동이 놓였다. 전시홀 E는 광장 아래에 들어가 있다. 이 그림 한 장을 이해하고 나면, 건물의 나머지는 디테일이다.
그는 홀들을 선로의 진동과 소음이 덜 닿는 부지 서쪽에 공중에 띄우듯 모아 놓고, 그 발치에 생긴 땅을 광장으로 남겼다. 반대편의 유리동은 광장과 한 몸처럼 보이도록 투명하게 덮었다. 도쿄국제포럼 측은 설계 의도를 두고 홀들의 발치에 생겨난 지상 광장을 시각적으로 하나로 이어 더 넓은 공공 공간으로 느껴지게 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각 홀의 입구도 이 광장 쪽을 향해 열려 있다.
그날은 주말이라 푸드트럭이 보이지 않았다. 평일 점심이면 이 자리에 푸드트럭들이 늘어선다. 광장은 공연이 없는 날에도 비어 있지 않다. 유라쿠초역과 도쿄역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지름길이 되고, 점심시간의 회사원들에게는 그늘 아래 쉼터가 된다. 한 달에 두 번은 앤티크 마켓의 좌판이 광장을 가득 메운다. 공연장의 객석은 표를 산 사람에게만 열리지만, 이 광장은 누구에게도 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유리동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의 속이 그대로 드러난다. 높이 약 60미터의 유리 벽이 양쪽으로 서고, 머리 위로는 배 밑바닥을 뒤집어 놓은 듯한 철골 지붕이 건물 길이만큼 뻗어 있다. 벽을 따라 비스듬히 오르는 브리지 위에 서면 그 지붕이 한결 가까워진다. 시공을 맡은 오바야시구미(大林組)도 이 지붕을 배 밑바닥(船底)에 빗댔다. 벽을 채운 유리는 3,600장에 이른다.
이 거대한 지붕을 받치는 큰 기둥은 단 두 개다. 기둥은 위아래 끝이 한 점으로만 맞물리는 핀(pin) 접합이고, 사방으로 뻗은 가느다란 철골들이 모든 방향에서 오는 힘을 나눠 받는다. 두꺼운 벽과 촘촘한 기둥 대신 선으로 버티는 구조 덕분에 유리동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하나의 커다란 빈 공간으로 남았다. 비뇰리의 설명대로, 교차하는 두 개의 유리와 철골의 아치가 거대한 로비를 감싸며 단지 전체를 하나로 묶고, 극장과 광장에서 곡선의 화강암 벽까지 시야가 이어진다. 이 건물이 투명해야 했던 이유는 결국 광장에 있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앞서 걸은 나카도리가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한 회사의 사유지에서 시작된 길이 반세기 동안 역할을 나누고 실험을 거듭하며 누구나 머무는 거리가 되는 과정을 보았다. 누구나 머무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도쿄국제포럼은 같은 질문에 반대편에서 답한다. 이곳은 처음부터 공공의 땅이었고, 공공은 그 땅의 가장 좋은 자리를 건물로 채우는 대신 비워 두는 쪽을 택했다.
도쿄국제포럼에서 공연을 본 사람보다, 이 광장을 그냥 지나간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건물이 도시에 준 가장 큰 선물은 광장이다. 공공 건물의 크기는 홀의 객석 수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 건물이 도시에 비워 준 땅의 넓이로 정해진다. 광장을 빠져나와 도쿄역 쪽으로 눈을 돌리면, 역 앞에는 땅 대신 옥상을 도시에 내어 준 건물이 하나 더 있다.
글, 사진 | citevoix
추가 사진 | © TOKYO INTERNATIONAL FORUM CO., LTD. (도쿄국제포럼 공식 홈페이지)
내용 참고 | 도쿄국제포럼, Rafael Viñoly Architects, 오바야시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