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가장 긴박한 순간, 버릴 것과 취할 것

byJoanne

딸 J의 시선



어떤 장르에서 선두 주자 역할을 했던 ‘모던 클래식’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후 여러 비슷한 영화들이 그 작품으로부터 파생되며 변형을 거듭했음에도 역시 ‘원조’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쾌감이 느껴지는 때가 있는 반면, "이 영화가 원래 이랬었나?"하고 당황하게 되는 경우도 적잖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마이클 맨 감독의 1995년 작 [히트](Heat)를 다시 보는 동안 재미있게도 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LA에서 활동하는 ‘베테랑’ 강도 "닐 매컬리"(드 니로)가 일행과 함께 현금 수송 차량을 급습해 상당한 총액의 무기명채권을 강탈하는 사건을 비추며 시작된다. 늘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하는 팀원 크리스(발 킬머), 마이클(톰 사이즈모어), 길버트(대니 트레호)와 달리 처음으로 일행에 합류한 웨인그로(케빈 게이지)가 어딘지 아슬아슬하게 행동하다 과한 대응으로 호송 요원을 살해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냉철한 판단력의 닐이 남은 호송 요원 모두를 살해해 증인을 제거하면서 상황은 계획보다 복잡해진다. 닐은 일을 그르친 웨인그로까지 처리하려 들지만 잠시 방심한 사이 그를 놓치게 되고, 이 강도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인 돈세탁업자 "밴 잰트"(윌리엄 피츠너)가 암살자들을 고용하며 닐과 동료들은 곤경에 빠진다.



이 강도 사건의 수사를 LAPD 강력계 형사인 "빈센트 해나"(파치노)가 맡게 되는데, 이미 두 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그는 일에만 빠져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세 번째 결혼 상대인 현재 아내와의 관계에도 난항을 겪는 중이다. 빈센트와 수사 팀은 LA에 산재한 범죄 조직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닐과 일행을 이 강도 사건의 주범으로 확신하고, 그들이 다음 범행을 저지를 때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한 감시에 돌입한다. 닐 일당의 다음 목표를 파악한 수사팀은 현장에 매복해 그들을 기다리지만, 잠복 중이던 경찰 한 명의 어이없는 실수로 위기를 감지한 닐이 작전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만다. 경찰들이 코앞까지 추적해 왔다는 사실에 긴장한 닐은 손을 씻고 도주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얼마 전 연인이 된 "이디"(에이미 브레느만)와의 새출발을 위해 은행을 털어 마지막으로 한몫 챙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동료들 또한 뜻을 같이해 일을 도모하면서 닐은 자신들을 쫓는 빈센트를 역으로 주시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둘 사이의 긴장이 이어지는 와중 닐과 빈센트는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기까지 한다. 다르면서도 닮은 서로의 모습에 둘은 쫓고 쫓기는 입장이 무색할 만큼 상대에 대한 어떤 ‘이해’에 다다르지만, 목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닐뿐 아니라 빈센트 역시 그를 쫓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결국 닐은 예정대로 동료들과 함께 은행 강도 작전을 실행하고, 빈센트의 팀 또한 그들을 잡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하며 상황은 어지럽게 흘러간다.


SE-df2cd522-6898-4b0e-99d1-efdc7e7ff229.jpg?type=w966


우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으로, 2시간 50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의 촘촘한 흡인력과 몰입력을 자랑한다. 강도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면서도 범죄 사건 자체를 자세히 다루지 않는(시작 부분 현금 수송 차량을 습격하는 대목은 물론 은행을 터는 후반부의 장면도 무척 짧게 지나간다), 범죄 ‘액션’이라기보다 범죄자와 그를 쫓는 경찰의 심리에 주목하는 범죄 ‘드라마’로 구분될 작품임에도 그렇다는 사실이 놀랍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특히 드 니로와 파치노의 연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드 니로와 파치노는 이미 여러 번 해 본 적 있는, 자신들이 ‘제일 잘 하는’ 종류의 배역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새롭고 신선한 시도를 하지 않는 대신 각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자유롭게 활보하며 다채로운 색깔을 극에 입혀 '자기 복제'의 함정을 빠져 나간다. 감독이 이 두 배우를 이용하는 방식도 상당히 영리한데, 이들 둘의 ‘만남’이 관객들에겐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임을 잊지 않고 영화의 절반이 살짝 넘는 구간까지 둘을 직접 마주치지 않게 하며 긴장을 서서히 쌓아 올린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이나 화면 구도 등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감독임에도 닿을 듯 닿지 않는 두 사람의 서사를 그리는 일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하고 말이다(닐이 빈센트의 포위망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잠복 신에서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둘이 마치 서로를 쳐다보는 듯한 구도를 연출한 것이 특히 재미있다).



이 작품의 세계관이나 윤리관(즉, 두 주인공을 표현하는 시선) 또한 무척 흥미로운데,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가장 큰 약점도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범죄자’와 ‘경찰’이라는 법적 테두리(불법과 합법으로 나뉘는) 안에서의 정체성과는 별개로 닐과 빈센트는 악인, 그리고 선인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닐은 범죄자지만 나름의 윤리관과 ‘허용치’가 있고 - 웨인그로처럼 잔악한 성향이 아닌 - 오른팔이라 할 크리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는 그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남의 가정사에까지 개입할 만큼 동료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다정하고 의리 있다고 할 수 있을 그가 이디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풋풋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빈센트는 선과 ‘정의’ 편에 서 있음에도 일에 미쳐 사느라 가족을 후순위로 두고, 진심 어린 소통과 애정을 원하는 현재의 아내에게 자신의 일에는 ‘고뇌’(angst)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녀를 마음 안에 들이려 하지 않는다. 성매매업에 종사하던 미성년자가 살해 당한 사건에서 인류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살인 사건의 주범이던 웨인그로로부터 - 물론 그 사실을 모른 채이지만 - 정보를 얻어 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가정적이고 ‘윤리적’인 범죄자와 난잡한 사생활을 가진 경찰을 대조시켰던 2007년 작 [아메리칸 갱스터]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heat-wes-studi-al-pacino-mykelti-williamson-022726-2d0b3c6d2add4680a59713716.jpg?type=w966


하지만 복합적인 이 두 인물의 모습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모순, 범죄와 정의 사이의 애매한 경계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아예 그들을 선악이나 도덕성의 바깥 공간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갖는다. 닐과 빈센트가 처음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 주제가 특히 두드러지는데, 두 사람은 서로 완벽하게 반대되는 일을 – 하나는 법을 어기고 다른 하나는 법을 수호하는 –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같은 ‘동기’를 공유한다.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I don’t know how to do anything else)는 데다 “다른 것은 하고 싶지도 않다”(I don’t much want to do anything else)는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살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처럼 열성을 다하는 것에 비하면 빈센트와 닐에게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특별한 열정이나 확신, 그러니까 어떤 정의감이나 신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쫓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이야”(All I am, is what I’m going after)라고 아내에게 고백하는 빈센트의 대사에서도 시사되듯 어쩌면 이 둘은 사람보다 ‘맹수’의 정의에 더 근접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 도덕적 목표 의식보다는 본능과 생존 감각에 따라 무언가를 쫓는 삶을 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게 봤을 때 닐과 빈센트를 선인이나 악인으로 구분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둘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들이 이기고 지는 문제에 ‘정의 구현’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그저 두 맹수가 힘을 겨루는 자연의 논리만 존재할 뿐. 이런 맥락으로 보면 범죄자인 닐이 활주로의 전등이 환하게 켜지는 ‘빛’을 이용해 빈센트를 죽이려 할 때 경찰인 빈센트는 그 밝음 속에 도드라지는 ‘그림자’를 보고 닐을 사살하게 된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카메라를 응시하며 왠지 편안해 보이는 닐과 달리 카메라에 등을 돌린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빈센트의 뒷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SE-b8d951dd-cdb5-4f0a-bbc3-70f3d8b9229d.jpg?type=w966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가 특히 생경하게 다가왔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기에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서사, 두 맹수의 엎치락 뒤치락 싸움과도 비슷한 이 전개에서 예전만큼의 비장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운명론적인 데다 체념적(fatalistic)이기까지 한 이런 관점은 과거의 영웅 서사, 특히 ‘마초적’ 성향이 강한 작품들에서 자주 보여 왔던 특징이지만, 예전과 달리 비극적이고 안타깝게 느껴진다기보다는 인물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바카라임을 벗겨 주거나 이기적인 동기를 만들어 주는 상당히 게으른 서술법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불쌍한 나”를 스스로 연민하는 자아도취적 세계관, 혹은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달리 어쩔 수 없었다”는 바카라임 회피식 태도로 여겨지기도 하고.


물론 이 영화가 “그렇게밖에 살 수 없어서 그렇게 사는” 두 주인공을 멋지게만 그려 주는 것은 아니며, 두 인물의 삶의 방식은 주변인들에게 유의미한 상처를 남긴다. 일에 미쳐 가정에 소홀한 빈센트는 결혼 생활에 장렬히 실패하고, 30초 안에 버리고 떠날 수 없을 것들에는 정을 붙이면 안된다고 동료들에게 훈계하던 닐은 막상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었을 때 연인인 이디를 자신의 도피에 끌어들인다. 그러나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닐과, 솜씨 좋은 호적수(好敵手)를 추격하는 일에서만 인생의 의미를 찾는 빈센트의 서사는, 결국 둘을 ‘비극적 주인공’(tragic hero)으로 만들어 주며 이들의 자기 파괴적인 행보를 미화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 과정 가운데 두 주인공의 이기심과 치졸함을 적당히 비판하는 수단으로 쓰였던 캐릭터들(특히 여성들)이 우유부단하거나 신의 없는 사람처럼 격하되면서 주인공들의 삶과 선택을 정당화하는 일에 기여하기도 한다.



예전보다 인내심이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바카라임 회피식 논리와 변명을 듣는 일에 지쳐서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삐딱선을 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같이 비장함을 느끼는 대신 참나, 하고 고개를 젓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이 조금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내’가 항상 똑같지 않은 만큼, 같은 영화도 볼 때마다 완벽하게 ‘같은’ 작품일 수 없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엄마 C의 시선



1995년 개봉작인 미국 영화 “히트(Heat)”는 액션/느와르 장르의 대표격으로 지금까지도 일컬어지는 작품입니다. 처음 개봉된 1990년대 당시 ‘세련된’ 범죄 느와르로 크게 주목 받았던 것은 물론, 3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현장감 넘치는 시가전(총격전) 신을 포함해 여러 독특한 장면들과 구성으로 비평가들 사이에서 여전한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이지요. 애초 “L.A. 테이크다운(L.A. Takedown)”이라는 제목의 TV 파일럿 작품으로 – 직접 극본을 쓴 마이클 만(Michael K. Mann)의 연출로 – 1989년 제작 발표되었던 90여 분 러닝타임의 ‘짧은’ 영화가 같은 원작자/감독에 의해 장편영화로 재탄생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국 영화 협회(BFI: British Film Institute)”가 발간하는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에서 10년 주기로 선정하는 “역대 최고 영화 리스트”의 순위(2022년 개정 이후)에 오르며 더욱 회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쪽 장르’에 특히 강한 배우들인 알 파치노(Al Pacino)와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투톱을 맡은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L.A.의 강력계 형사 “빈센트 해나(Vincent Hanna)” 역을, 로버트 드 니로가 뛰어난 솜씨의 전문 은행 강도 “닐 매컬리(Neil McCauley)” 역을 맡았는데, 오랜 시간 여러 번에 걸쳐 봤던 영화임에도 내용을 다시 기억하면서 둘 중 어느 쪽이 형사이고 어느 쪽이 범죄자였는지 혼동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기에 서로 역할이 바뀌었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만큼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을 것이기에 – 영화 “페이스 오프(Face/Off)”의 존 트라볼타(Sean Archer 역)와 니콜라스 케이지(Castor Troy 역)가 형사와 범죄자 역할을 바꿔 맡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처럼 –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 못지않게 알 파치노가 분(扮)한 해나 형사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은행 강도 매컬리를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기보다 상대에게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장면이 영화의 주제상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그런 식의 기억을 남기게 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SE-73a6809f-e576-4b65-9f35-5b4b40750d10.jpg?type=w966


로스엔젤리스에서 암약하는 전문 강도 매컬리는 자신과 팀이 되어 늘 함께 ‘일’하는 동료 “크리스 셜리스(Chris Shiherlis)”와 “마이클 체리토(Michael Cheritto),” “길버트 트레호(Gilbert Trejo)” 등은 물론, 이번 일에 처음 합류된 “웨인그로(Waingro)”까지 더한 네 명의 멤버들과 더불어 장갑차로 호송 중이던 160만 달러 상당의 무기명채권(bearer bond)을 강탈합니다. 목적했던 바는 잘 달성했지만 ‘작업’ 과정에서 웨인그로(고정 멤버가 아니기에 호송 요원들을 감시하는 비교적 ‘쉬운’ 임무를 맡겼던)가 자신을 계속 응시한다는 이유로 요원 한 명을 살해하는 바람에 함께 있던 다른 두 명까지 - 주요 목격자 역할을 할 - 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일을 모두 마친 후 뜻밖의 사태를 빚은 웨인그로에게 분개한 매컬리가 그를 ‘처리’하려 하지만 경찰차가 지나가는 사이 웨인그로가 도망쳐 버리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일이 불거지지요.


매컬리와 오랜 친분을 맺어 온 장물아비 “네이트(Nate)”를 통해 훔친 무기명채권의 주인이 자금세탁업자 “로저 밴 잰트(Roger Van Zant)”임을 알게 된 매컬리는 ‘뒷수습’을 우려할 그에게 채권을 다시 팔기 위해 접근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도 위험 부담이 큰 밴 잰트는 거래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매복을 준비해 함정을 파 둡니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매컬리와 그의 팀은 그들의 계획을 무효화한 후 속임수를 쓴 밴 잰트에게 전화를 걸어 복수하겠다는 위협을 전하지요. 한편 여러 경로를 통해 매컬리 일당을 용의선상에 올린 팀장 해나와 그의 팀원들의 감시가 시작되면서 그들이 다음 번 범행의 목표지로 삼은 귀금속 보관소에서도 잠복 감시가 이루어지지만, 매컬리 일당이 그곳에 침입해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부주의한 경찰관이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그들이 하던 ‘일’을 중지하자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체포하면 혐의가 경범죄(주거침입죄)로 낮아질 것을 우려한 해나는 체포 계획을 일단 연기합니다.


SE-7b51d003-79c2-49bb-b8ee-731d2093d9cf.jpg?type=w966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혼자만의 오랜 삶에서 벗어나 서점 직원 “이디(Eady)”와 예기치 않던 연인 관계를 시작하게 된 매컬리는 마지막으로 엄청난 금액(1,220만 달러 규모)의 은행 강도를 성공시키고 뉴질랜드로 함께 떠날 것을 결심하는데, 매컬리를 추적하던 해나가 고속도로에서 그의 차를 멈춰 세우고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하면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 앉게 됩니다. 그위 뒤를 캐는 과정에서 늘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고 자기 팀원들을 가족처럼 돌보는 매컬리에게 ‘호감’과 ‘경쟁심’ 사이쯤의 감정을 느끼게 된 해나가 ‘말이 통하는’ 매컬리에게 자신의 사적인 문제까지 - 세 번째 아내인 “저스틴(Justin)”은 물론 의붓딸 “로렌(Lauren)”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다는 - 솔직하게 털어놓자, 매컬리도 그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자신들(남다른 ‘직업’을 가진)이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도 합니다. 보통의 형사와 범죄자 사이와는 사뭇 다른 특이한 ‘유대감’이 그들 간에 형성되기는 하지만, 서로 극과 극의 위치에 놓여 있기에 “다음에 다시 만나면 둘 중 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 후 각자의 길로 헤어지지요.


은행 강도 일을 계획하면서도 예전과 달리 실행을 망설이게 된 매컬리가 팀의 동료들에게 그만 둘 생각이 없는지를 확인하지만 – 내심 하지 않겠다고 말해 주길 바라면서 – L.A. 경찰국의 강력한 추적을 감지한 트레호를 제외한 멤버들은 꼭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결국 운전을 담당하던 트레호 대신 옛 동료 돈 브리던(Don Breedan)을 합류시켜 강도 행각에 돌입합니다. 치밀한 계획하에 성공적으로 일을 마친 후 도주하려던 그들은 제보를 받고 신속히 출동한 L.A. 경찰국과 시내 한복판에서 어마어마한 총격전(지금까지도 세간에 회자하는 명장면이 된)을 벌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체리토와 브리던이 사살되고 부상을 입은 셜리스는 매컬리의 도움으로 현장을 빠져 나갑니다. TV 채널에 보도되는 총격전 장면을 보고서야 매컬리의 정체를 알게 된 이디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자신을 찾아와 함께 뉴질랜드로 떠나자고 설득하는 - 이미 사랑하게 된 - 그를 다시 받아들이기로 하지요.


SE-752b3316-8e69-4ce8-ad8f-877d9ebffa8a.jpg?type=w966


자신들의 계획을 밀고한 자가 누구인지 찾아 나선 매컬리는 애초 일에서 빠졌던 트레호를 의심하지만, 집으로 찾아가 만난 사망 직전의(처참한 상태의) 그로부터 밴 잰트와 웨인그로의 소행임을 듣고 난 후 밴 잰트를 찾아내 복수합니다. 매컬리와 웨인그로의 악연을 알게 된 해나는 웨인그로가 숨어 있는 호텔에 잠복해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뉴질랜드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이디와 만날 약속까지 했던 매컬리는 공항으로의 출발 전 웨인그로의 위치를 알려 주는 네이트의 전화를 받자 위험을 알면서도 그를 찾아가 복수합니다. 추적해 오는 해나를 피해 도주하는 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이디를 보며 안타깝게 지나쳐 간 매컬리는 결국 해나가 쏜 총을 가슴에 맞게 됩니다. 숨을 거두기 전의 매컬리는 자신을 쏜 해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복잡한 표정을 보이는 해나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는데, “다시 만나면 둘 중 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던 대화 끝에 “그러나 (상대를 죽이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며 역시 공감하던 그들이, 정반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임을 보여 주기 위한 장면이리라 추측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열,” “열기,” “더위” 등으로 번역되는 “히트(heat)”가 범죄 조직의 은어에선 “좁혀 들어오는 경찰의 감시와 수사망,” “숨 막히는 경찰의 수사 압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발음이 거의 같은 – “강타,” “명중”을 의미하는 – “히트(hit)”와 혼용되며 두 주인공의 “강렬한 맞붙음”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는 만큼, 단어가 갖는 의미이자 작품의 두 가지 중심 주제를 정확히 함축하고 있는 제목이 영화에 붙여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안에서 격돌하는 해나와 매켄지, 즉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공연(共演) 작품임에도 같은 장면에 함께 등장한 적이 없는 “대부 2(The God Father Part II)”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같이 등장하는 것은 단 두 장면(겨우 몇 분에 불과한)일 뿐이지만 그 장면들의 강렬한 인상은 영화 전체를 이끄는 힘이 되고도 남을 만합니다. 잠깐 마주친 동안에도 서로의 내면을 곧바로 파악해 상당 정도의 ‘공감’ 수준에 도달하고 ‘평화 조약’ 비슷한 것을 맺은 후 헤어지는 – 또한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지금과 다를 것”이라고 서로에게 경고하는 - 모습은 한국 코미디 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두 사람 모두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할 만큼 철저하고 유능한 인물인 그들은 사적인 부분에서도 실제로 공통점이 적지 않은데, 안정된 가정을 꿈꾸며 세 번째 결혼 생활까지 시작했으나 현재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문제를 겪고 있는 해나의 경우 아내는 외도를 범하고 의붓딸 로렌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자신이 가진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던 매컬리 또한 늦은 나이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 평범한 행복을 꿈꿔 보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앞에서 언급한 “페이스 오프”를 떠올리며 비교하도록 만들던 몇 가지 측면 가운데, “페이스 오프”의 형사와 범죄자 측 모두가 가족들과 밀접하고 끈끈한 연대를 보이는 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양쪽 모두 안정적 가정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두 모습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일반인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 형사나 범죄자 모두 가족 차원의 밀접한 인간 관계가 삶에서 더욱 중요하고 절실할 터임에도 실제로는 그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리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칩니다. 함께 식사하는 단란한 시간을 꿈꾸며 퇴근하고 돌아올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놓아도 밤 늦게야 귀가하는 남편에게 섭섭함을 표시하는 아내를 향해 “오늘 거리에 누워 있는 시체 3구를 다루어야 했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해나를 보면 그 사실의 이유를 명확히 짚어 볼 수 있게 되고 말이지요. 이기적(selfish)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중심적(self-centered) 성향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계신 데다 무소부재하신 만큼 전지전능하실 수 있는 하나님처럼 타인의 삶을 구석구석 살필 ‘능력’이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만 주목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한계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SE-21b15e0f-89f6-41b3-b190-359560e10dbd.jpg?type=w966


“낌새가 안 좋을 때(경찰의 압박이 느껴질 때) 30초 안에 버리고 떠나지 못할 것에 정 붙이지 마라(Don't let yourself get attached to anything you are not willing to walk out on in 30 seconds flat if you feel the heat around the corner)”라는 매컬리의 대사 가운데 그 “어느 것”이 ‘물건’이라면 당연히 옳은 말이겠으나 ‘사람’이라면 결코 그래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물질에 ‘정을 붙이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할 - 특히 신앙인으로서 - 마음 자세지만 그 상대가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든 ‘정’을 다 주어도 부족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지요. 그 “어느 것(anything)”의 자리에 “어느 누구(anyone)”를 대입하면서 자기 주위 사람들을 “30초 안에 버리고 떠날 수 있을 무언가”로 여기는 이가 혹시 있다면 그보다 더 각박하고 황폐한 삶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도서(영상이몽) 소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