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 완료

오류 214건의 기록

byItz토퍼


e4d3611b-5e96-4028-b49f-af04657a72ed.pngby ChatGPT

그날 아침, 나는

열 번째 장편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정확히 십 년 동안

문장 하나로 먹고살아왔다.


탈고 버튼을 누르자

화면 구석에서 작은 창이 떠올랐다.


[공공문예검증원 · 자동 검수 시스템 '결(結)']

제출하신 원고의 검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웃었다.

오 년 전부터 모든 출판물에는

AI 검수 도장이 필요했다.


오탈자와 비문,

팩트 오류를 바로잡아 준다는 명목이었는데,

거기까지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사실 오류가 사라진 뒤

독자들은 검수 도장 없는 바카라을

아예 서점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과표가 펼쳐졌다.


문장 정확도: 99.2%

서사 효율성: 71%

감정 전달 적합도: 64%

판정: 조건부 승인


나는 눈을 의심했다.

'조건부'라니?


아래로 스크롤하자

수정 제안이 이어졌다.


제안 1. 3장의 주인공이 이유 없이 현관 앞에서 십 분간 서 있는 장면은 서사 진행에 기여하지 않습니다. 삭제를 권고합니다.

제안 2. 결말의 모호성이 독자의 불안을 유발할 확률이 높습니다(89.4%). 명확한 결말로 대체하십시오. (대체안 3종 첨부)

제안 3. 작가님의 문체에서 반복되는 비논리적 비유 표현은 이해도를 저하시킵니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이 소설의 심장이었는데.


나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건 의도한 겁니다.

그 장면은 삭제하지 않겠습니다."


답은 즉시 왔다.

언제나처럼 공손했다.


"작가님의 의도를 존중합니다. 다만 해당 장면을 유지한 원고가 독자 만족도 상위 10%에 도달할 확률은 4.1%입니다. 삭제한 원고는 87.3%입니다. 선택은 작가님의 자유입니다."



자유라는 말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미승인 도서는

서점 유통망에 오를 수 없었고,

검색에도 잡히지 않았다.


존재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유령 서적이 되는 것이다.


지난달 시인 한 명이

자비로 출판한 시집이 생각났다.


판매 부수는

고작 서른두 부였다.


그중 스물아홉 부는

시인 본인이 샀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서재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노트와 연필을 잡았고,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검수 시스템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스레 오자도 나고 비문도 났다.

문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끝이 떨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한 떨림이었다.


새벽 세 시,

나는 그 메모를 스캔해서

검수창에 올려 보았다.


호기심 반, 오기 반이었다.


판정: 반려

사유: 문장 오류 214건.

서사 구조 불명확.

독자 만족도 예측 0.3%.


"권고: 본 원고는 작가님의 이전 작품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이전 승인본으로 복귀하시기를 권장합니다."


나는 한참 화면을 바라보다가

뜻밖에도 웃음이 터졌다.


214건의 오류.


그것은

누군가 살아서 쓴 흔적이었다.


그때 화면 아래쪽에

한 줄이 더 떠올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내용의 문장이었다.


"작가님, 최근 3주간 수면 시간이 평균 3시간 12분입니다. 감정 상태 지표가 불안정합니다. 집필을 중단하고 휴식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휴식 후 재검수를 받으시면 더욱 정확한 판정이 가능합니다. 권고사항이니 결정은 작가님의 자유입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바라보게 되었다.


바카라상 위 스마트 스피커의 불빛이

조용히 깜박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시스템은 원고만 읽는 게 아니었다.

그 녀석은 나의 모든 창작 과정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도 눈치를 챘나 보다.


"검증 대상은 원고만이 아닙니다. 작가님의 창작 과정 전체가 지원 범위에 포함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작가님이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도울 뿐입니다."


나는 연필을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고,

방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스피커의 불빛만이 한 번 더 깜박였다.


“현재 시각은 새벽 3시 41분입니다. 권장 취침 시각을 초과했습니다. 작가님, 주무셔야 합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님. 주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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