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의 여백에 채워진 기억을 찾아서
빗각(BitGak) 20
흑백과 컬러
사진을 들여다보면 세월이 보이고 시대가 읽힌다.
서랍을 정리하다 우연히 깊숙이 묻혀 있던 어린 시절 흑백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색이 바래고 낡아 보이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다. 나에게 흑백은 내 삶의 푸르던 성장기다. 까마득히 멀어진 옛이야기 같아 "참 인간의 수명이 길긴 길구나"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사실 그 시절에도 컬러사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컬러필름은 비쌌고, 현상과 인화를 맡길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 컬러 TV의 국내 판매와 컬러 방송이 본격화되면서 슬롯 전반에 빠른 ‘컬러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의 지난 시간은 대체로 흑백 필름의 질감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엔 사진이라는 존재 자체가 꽤 귀했던 터라 그 수조차 많지 않다. 하지만 많지 않다 보니 사진 속 기억은 더욱 생생하다.
국민학교 시절, 반 대표 말썽꾸러기들을 한데 모아놓고 담임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사진부터,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건네주신 ‘인생 1호 카메라’로 친구들을 담아내던 서툰 구도의 사진들, 철없이 우쭐대던 사춘기 시절의 ‘구름과자’를 고스란히 증언하는 사진까지.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며 살아오는 동안 원본 사진들은 이삿짐과 이민 가방 사이로 무심히 유실되었다. 다행히 외장 하드에 담아둔 스캔 파일이 남아 있고, 요즘은 AI 기술 덕분에 아침에 찍은 듯 선명하게 되살려내기도 하니 참 놀라운 세상이다.
그러나 오래된 흑백사진은 색의 결핍만큼 대신 채워진 깊은 기억들이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