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창작자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2년 4개월, 놀란이 다시 쓴 창작 오디세이

byItz토퍼
빗각(BitGak) 17 : 빗각의 시선으로 바라본 창작자 크리스토퍼 놀란
by ChatGPT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우리에게 보여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기를 통해 창작이라는 작업에 심취하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놀란 감독은 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을 위해서 어떤 수고를 얼마만큼 하였을까?


그래서 언론에 공개된 놀란 감독과 제작진의 인터뷰, 그리고 개봉 이후 쏟아진 평론가들의 글을 모았고, 관심을 가졌던 부분을 대략 정리하였다. 그리고 나만의 빗각을 가지고 하나로 묶어내었다.


이 영화의 서사는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순간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기를 세상에 알려진 2024년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서 찾아왔다.



놓쳐버린 신화, 20년의 기다림


2002년, 《인썸니아》 이후 워너브러더스는 놀란에게 《트로이》의 연출을 맡겼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처음 개발했던 볼프강 페터젠이 다시 연출을 맡게 되면서 놀란은 영화에서 손을 떼야했다. 그럼에도 트로이와 트로이 목마에 대한 그의 구상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2024년 3월, 놀란은 마침내 호메로스의 세계를 자신의 영화로 옮기는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때 놓쳐버렸던 신화의 세계가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그의 앞에 돌아온 것이다.



각본에서 촬영까지


그러한 바탕 가운데 그는 2024년 3월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직후, 놀란은 다음 작품의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세상에는 제목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놀란은 20년 동안 미루어왔던 호메로스의 오래된 서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해 10월에야 그의 차기작이 유니버설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외부에 알려졌고, 12월에는 마침내 영화의 제목이 《The Odyssey》라는 사실과 함께 제작 소식이 공식 발표됐다. 각본 집필을 시작한 지 약 9개월 만이었다.


이후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등 초대형 캐스팅이 차례로 공개되면서, 아직 촬영조차 시작하지 않은 영화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2025년 2월 25일, 모로코의 아이트벤하두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촬영팀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등 전 세계 10개국 이상,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연상시키는 곳들로 이동했다.


놀란은 이 영화를 대부분의 장면에서 실제 촬영을 고집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특히 《오디세이》는 장편영화 전체를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최초의 작품이다.


하지만 기존 IMAX 카메라는 소음이 커 대사가 많은 장면을 촬영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IMAX는 이 작품을 위해 소음을 크게 줄인 새로운 카메라 ‘Keighley’를 개발했고, 놀란은 이를 통해 영화의 방대한 세계를 필름에 담아냈다. 91일에 걸친 촬영에서 사용된 IMAX 70mm 필름은 200만 피트를 넘어섰으며, 이를 길이로 환산하면 약 609km에 달한다.


그렇게 거대한 규모로 진행된 촬영이었지만, 본 촬영은 의외로 짧았다.

2월 25일 시작된 촬영은 8월 5일, 불과 91일 만에 끝났다.



오프닝의 목소리 - 트래비스 스콧


흥미로운 점은, 놀란이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미 '시간을 거스르는' 연출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한 음유시인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음유시인 역할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었다. 그는 극 중 '바드'로 등장해, 관객이 처음 마주하는 얼굴이자 목소리가 된다.


놀란은 이 캐스팅에 대해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본래 문자가 아니라 구전으로, 노래하듯 대를 이어 전해지던 이야기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 구전의 리듬이 오늘날의 랩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서 그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트래비스 스콧과는 앞서 《테넷》의 음악 작업으로 이미 인연이 있었고, 그는 이번 작품의 엔딩 크레딧 곡 작업에도 참여했다.


트래비스 스콧이 리듬을 타며 트로이 함락과 목마의 계략을 읊어 내려가는 오프닝은, 마치 3천 년 전 음유시인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순간이 그대로 오늘의 스크린으로 옮겨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고대의 구전 서사가 현대의 리듬 언어를 빌려 되살아나는 이 장면은, 이 영화 전체가 지향하는 '시간을 넘나드는 번역'이라는 태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오케스트라 없는 신화


이러한 시간 감각은 음악에서도 똑같이 이어진다. 놀란은 작곡가 루드윅 고란손에게 한 가지 원칙을 분명히 했다. 오케스트라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검투사나 고대 세계를 다룬 여느 영화들이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기대어 왔던 것과 달리, 놀란은 애초에 고대 그리스에는 오케스트라라는 편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대신 고란손은 청동으로 만든 징 서른다섯 개와 고철, 실외 구조물까지 두드려가며 소리를 채집했고, 여기에 리라와 아울로스 같은 고대 악기, 그리고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인간의 목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그 결과 관객은 익숙한 웅장함 대신, 낯설고 원초적인 질감의 소리를 통해 오히려 더 깊이 그 시대의 공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오케스트라라는 손쉬운 선택지를 스스로 걷어냄으로써, 놀란은 음악에서마저 관객이 안일하게 기댈 자리를 남겨두지 않은 셈이다.



후반작업과 두 번의 개봉일


하지만 카메라가 멈춘 뒤에도 《오디세이》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2025년 하반기부터 편집과 음악, 시각효과, 사운드 등 후반작업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그해 12월에는 첫 공식 예고편이 공개되며 영화의 일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듬해 5월에는 두 번째 예고편이 이어지며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2026년 상반기 내내 최종적인 후반작업과 개봉 준비가 진행됐다.


다만 놀란이 정확히 언제 최종 편집본을 완성했는지, 즉 이른바 '픽처 락'의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영화가 언제 정확히 '완성'됐다고 단정하기보다는, 2026년 상반기에 최종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2026년 7월 17일, 《오디세이》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마침내 관객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흥미롭게도 한국 개봉은 애초 7월 15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특별관 확보와 국내 경쟁작 일정 등을 이유로 약 3주 미뤄진 8월 5일로 최종 조정되었다.


그 사이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초 시사에서는 "놀란의 인생 최고 역작"이라는 평가가 나오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실제 개봉 이후에도 흥행과 평단의 극찬이 동시에 이어지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2024년 3월 각본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계산하면, 글로벌 개봉을 기준으로 약 2년 4개월의 시간이다. 각본을 쓰는 데 약 1년, 촬영에 91일, 그리고 촬영이 끝난 뒤 다시 약 11개월의 후반작업이 이어진 셈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놀란의 귀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2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오디세우스가 겪는 10년의 여정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면, 놀란은 2년 4개월 동안 하나의 신화를 영화라는 새로운 형태로 옮겨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영화가 관객에게 도착한 순간, 놀란의 오디세이도 하나의 귀환을 완성했다. 2024년 3월, 한 장의 각본에서 시작된 여행은 2026년 여름 스크린 위에서 비로소 끝났다.




돌이켜 보면 이 긴 여정 속에서 놀란이라는 창작자를 지탱해 온 것은 세 가지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오랜 집념과 인내다.


20대의 어느 순간 손에서 놓쳐버린 트로이의 세계를,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20년 넘게 마음 한편에 품고 있었다. 좋은 이야기는 서두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기다림 그 자체로 증명해 보였다.


다른 하나는 관습에 안주하지 않는 철저함이다.


고대를 그리는 서사시에 응당 따라붙던 오케스트라를 스스로 걷어내고, 그 자리를 청동 징과 고대 악기, 그리고 91일 동안 609km의 필름으로 채운 것은 손쉬운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익숙함이 아니라 근거를 택하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재해석의 감각이다.


문자가 아니라 노래로 전해지던 오디세이아의 본질을, 그는 트래비스 스콧의 랩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언어로 옮겨놓았다.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안에 흐르는 정신을 지금 이 시대의 방식으로 번역해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놀란이 매 작품에서 반복해 온 창작의 태도일 것이다.




놀란이 만든 것은 단순한 고대 신화의 영화화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야기를 다시 자신의 시간 속으로 불러오는 또 하나의 오디세이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오디세이는, 인내로 기다리고 원칙으로 다듬고 감각으로 번역해 낸 한 창작자의 초상이기도 했다.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창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묻게 된다.

"나의 오디세이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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