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주는 마음과 나를 이끄는 마음, 처음부터 하나였다
빗각(BitGak) 08
미루기
지금도 어린 시절의 방학을 떠올리면, 늘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즐겁게 놀았던 추억만큼이나 오래 남아 있는 기억, 바로 방학 숙제를 미루던 순간이다.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라는 여유를 부리며 일주일, 이주일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 된다. 그러면 여름날 쨍한 하늘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듯 숙제를 시작한다. 며칠은 정신없이 바쁘다.
문제는 일기였다.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치명적인 벽, 바로 '날씨'다.
결국 상급생이든 하급생이든 붙잡고 며칠 전 날씨를 묻고 다닌다.
곤충 채집이니 식물 채집이니 하는 숙제도 있었다. 그 흔하던 잠자리는 막상 잡으려 하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던 매미도 손을 뻗으면 나무 꼭대기로 피서를 떠나버린다.
거기다 파리 잡기 숙제 때는 애꿎은 암소 엉덩이 주위만 종일 뱅뱅 돌다가, 씩씩거리던 암소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다음엔 절대 미루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다음 방학이 오면 어김없이 같은 방학생활이 반복된다.
어른이 되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바카라상 앞에 앉아 해야 할 일을 코앞에 두고도 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급한 것은 분명 눈앞의 문서인데, 어느새 바카라장의 먼지를 닦고, 서랍 속 오래된 영수증을 정리하고, 필요도 없는 파일의 이름을 바꾸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피하는 게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처럼.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