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디는 향기에 대하여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야만 비로소 한 사람 몫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여태껏 내가 살만큼 살았다고, 이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늙은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직은 신맛이 남아 있으니."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혼자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법도, 자신을 이해하는 법도 물론 모른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면서 누구나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사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된다.
가능성과 완성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재능은 출발점일 뿐, 우리는 결국 시간을 관통해야만 깊어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와인의 탄생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포도 역시 처음부터 와인이 아니다. 갓 수확한 포도는 달고 단순한 맛 뿐이며, 때로는 지나치게 시큼할 뿐. 그러나 그 포도가 압착되고 발효되며, 어두운 저장고 속에서 긴 시간을 견딜 때 비로소 한 병의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아직은 미완의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긴 숙성의 시간을 거치며 비로소 자기만의 향기를 갖게 되니까.
Q. 왜 성장에는 반드시 ‘으깨어지는 시간’이 필요한가?
와인의 시작은 포도를 으깨는 일부터다.
겉보기에는 그저 무자비한 파괴처럼 보일 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파괴가 있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단단한 껍질 안에 갇혀 있던 당분이 흘러나오고, 효모와 만나며 발효를 시작하듯이.
우리의 성장도 다르지 않다.
아이는 학교와 슬롯를 마주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경쟁과 실패로 어린 자아가 으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고집스러운 껍질을 깨고 나와 타인을 수용하며 세상이라는 더 큰 발효의 과정으로 진입하니까. 마치 요람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 속에서 자신이 한번 정도 깨어지는 경험, 곧 성장의 시작이 된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 균열 속에서 성장한다.
아무 상처도 받지 않은 사람은 단단할 수는 있어도 깊어질 수는 없을 터. 포도가 으깨져야 술이 되듯, 우리 역시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한 번쯤 흔들려야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성장이란, '보존의 과정'이 아니라 '변형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왜 고독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가?
발효를 마친 와인은 곧바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후 오크통 속에서 긴 숙성의 시간을 견뎌야 하니까. 그러면서 거칠었던 향은 차분해지고 날카로운 맛은 둥글어진다. 와인은 조용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정리하며 깊이를 얻는 셈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방황, 혼자 견뎌야 하는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쩌면 우리에게 허락된 숙성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동시에 고독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
끊임없이 연결된 시대를 살다보니 우리는 오히려 더 쉽게 얕아진 듯하다. 그런 가운데 혼자 생각할 시간이 사라지고, 그럴수록 자기만의 철학 역시 희미해져 버렸다. 와인이 오크통의 결 속에서 향을 얻듯, 우리 역시 침묵과 사유 속에서 자기만의 결을 만들어가야 하니까.
“고독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구조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그 숨 막히는 고독을 견디는 일이다. 우리는 외로움을 폭발시키는 대신, 그 적막을 통과하며 내면의 구조를 더욱 세밀하고 단단하게 다져가야 한다.
Q. 왜 슬롯는 우리를 소모시키면서도 동시에 깊게 만드는가?
숙성을 마친 와인은 병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주 느린 산화가 시작되는 거다.
산소가 지나치게 많으면 와인은 식초처럼 변질될 뿐. 그러나 미세하고 적절한 산화는 향을 더욱 복합적이고 깊게 만든다. 와인은 그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비로소 ‘부케(Bouquet)’라는 완성된 풍미를 얻는 것이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 게임과 관계, 바카라임과 실패는 늘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때로는 자신이 연약한 초처럼 타오르며, 천천히 녹아 없어지고 있다는 감각마저 든다. 과도한 압박과 냉소주의에 찌들어 스스로를 식초처럼 시어버리게 내버려 두지 않고, 그 미세한 긴장을 견뎌낼 때 우리는 서서히 깊어진다.
그리고 그 깊어짐의 흔적은 마침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에서 가장 먼저 배어 나오는 법.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의 말은 가볍다. 반면 충분히 흔들려본 사람의 언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게가 실리게 마련. 내면의 부케(Bouquet)를 완성하는 힘, 그것이 바로 ‘연륜’이다.
연륜은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끝내 자기만의 향기를 지켜낸 사람만이 갖게 되는 깊이를 의미한다.
Q. 결국 우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잘 숙성된 와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부드러워진다. 젊은 와인의 거친 산미는 줄어들고, 서로 충돌하던 향은 하나의 조화로운 결로 어우러진다.
우리 또한 그렇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타인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안다. 젊음이 날카로움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면, 성숙은 부드러움으로 자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법.
결국 우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재능보다 시간이고, 속도보다 기다림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빨리 성공하고 빨리 인정받아야 한다고 조급해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 코르크를 딴 와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친 술일뿐.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방황과 지루함, 슬롯생활의 피로와 불안은 어쩌면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숙성의 시간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때로는 조급함보다 기다림을 믿어야 한다.
내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있는 이 향기를.
어쩌면 그것이 시간의 연금술 속에서 우리가 가장 아름답게 성숙해 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만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언제 으깨어졌던가,
지금 나에겐 어떤 향기가 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