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물어도, 고통은 영원히 남은 사람들의 서사시
그들이 항구를 떠날 때
자신의 모국을 향해 침을 뱉었다.
썩어 문드러진 깃발이라고,
굶주림이 지배하는 거리라고,
사람을 인간답게 품어 주지 못하는 땅이라고.
부두 위를 덮치는 검은 파도조차
그 독한 욕설을 오래도록 씻어 내지 못했다.
어머니들은 통곡했고
연인들은 끝내 맞잡은 손을 놓지 못했으나
무정한 배는 떠나갔다.
쇠사슬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 사이로
마지막으로 모국의 굽혀진 산맥을 보았다.
핏줄처럼 이어진 강줄기와
저녁 연기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마을들.
그러나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맹세했다.
다시는 이 땅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증오스러운 그 이름조차
다시는 입에 담지 않으리라고.
먼 이국의 도시들은 눈부시게 찬란했다.
거리마다 금빛 전등이 타올랐고
먹거리는 넘쳐나도록 풍족했으며
아이들은 총성 없는 고요 속에서 잠들었다.
그들은 기어이 살아남았다.
새로운 언어를 혀에 익혔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쉽게 잘라냈으며
고향의 투박한 억양을 부끄러워하는 법도 익혔다.
밤마다 타향의 술집에서는
“우리가 옳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떠나오길 정말 잘했어.”
“그 나라는 진작에 우리를 버렸어.”
“거긴 아무런 희망도 없는 땅이야.”
그 말들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찾아오면
그들의 심장 깊은 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돋아났다.
낯선 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문득 스치는 국물 냄새 하나에 걸음을 멈추고,
시장 골목에서 들려오는 억센 욕설 한마디에
오래전 죽었던 어린 시절이 불쑥 깨어났다.
어떤 이는 새벽마다 홀로 숨죽여 울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토록 미워하며 저주했던 땅인데
왜 그 강의 이름은 잊히지 않는 것인지.
도망치듯 빠져나온 비루한 골목인데
왜 꿈속에서는 여전히
그 집 낡은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것인지.
세월이 흘러
그들의 부모는 하나둘 차가운 흙이 되었다.
부고를 듣고도 돌아가지 못한 자들은
바다 건너 창문을 붙들고
깊은 침묵 속에서 독한 술만 마셨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그곳은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던 목소리였고,
습한 장마철의 비릿한 냄새였으며,
어린 날의 허기와 첫사랑의 수줍은 웃음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깨닫고 말았다.
그들이 모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지금의 내가 거기서 자라났다는 사실만은,
결코 도려낼 수 없다는 것을.
백발이 성성해진 어느 날
한 사내가 항구에 섰다.
청춘이 아직도 그 열기를 잃지 않은 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던 바로 그 바다였다.
그는 이미 다른 나라의 이방인이었고,
다른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밀려오는 파도 냄새를 맡는 순간
무릎이 꺾어지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단순히 후회 때문일까,
그렇다고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끝내 끊어내지 못한
질긴 운명에 대한 비명이자 애절함이었다.
자신을 상처 입히고 내쫓은 땅을
여전히 그리워해야만 하는 존재의 비애.
자신이 버렸다고 믿었던 세계 속에
여전히 자기 영혼의 조각이 묻혀 있다는 엄연한 사실.
그래서 그 눈물은 유독 짜다.
그 때문에 더더욱 썩지 못한 가슴이
다시금 그 울분을 쏟아내는 것인지도.
그것은
검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맛이며
고향의 질퍽한 흙맛과 같으며
내가 평생 지워내지 못하는
생애 첫 이름의 맛과도 같다.
※ 5월 18일엔 글을 발행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