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질문, 사랑하면?

사랑 다음에 무얼 해야 할까?

byItz토퍼
by Gemini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할까?


그렇다면 결혼한 뒤에는

배우자 외의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걸까.


그렇다면 사랑은

결국 종착점에 닿은 것일까.


이제부터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과제만 남긴 채?


결국, 사랑은

결혼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건가.


그러면 지금도 여전히 혼인 관계라면,

배우자를 처음처럼 사랑하고 있을까.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라면, 사랑은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되었나?




고등학교 동기 중에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이미 노인이 되었는데도.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인생에서 결혼 자체를 삭제하고 지금껏 사랑만 하며 살아온 친구다. 요즘 말로 하면 비혼주의자다. 그와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미혼이거나 돌싱이라고 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십 년 이상 함께 한 사람도 있단다.


고교 졸업 때 그의 성적은 그냥 보통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S대 농대에 들어갔다. 미달이었으니까. 왜 굳이 그렇게까지. 이유는 간단했다. 최고 명문 국립대의 배지를 달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찌감치 ‘사랑과 결혼’이라는 일생의 과제 앞에서 결혼이 아닌 사랑만을 택했다.

아직은 젊은 시절이었기에 모두가 ‘설마’ 했다. 연애를 실컷 하고 싶어서 하는 소리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후 한 제약회사 영업부에 들어가 친화력 강한 자신의 강점을 살려 놀라운 실적을 올렸고, 다른 동기들이 신입 딱지도 떼기 전에 대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사랑’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떨 때는 두세 명의 여자를 동시에 만나기도 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그는 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른 친구들이 지하철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출퇴근할 때, 그는 이미 자가용을 몰고 영업 현장과 테헤란로를 누비고 다녔다. 조수석에 늘 새로운 사랑을 태운 채.


세월이 흘러 오십 줄을 넘긴 어느 해, 동창회에서 그를 만났다.


모 제약회사의 CMO로 변신한 그는 여전하였다. 외모는 더 수려해 보였고, 자신만만한 태도와 말투도 그대로였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아직도 결혼 안 했냐?”


그는 웃었다.

결혼을 안 했으니 자식 걱정 같은 쓸데없는 일도 없고 오히려 편하게 산다고 했다.


그러다 모임의 대화가 자연스레 가족 이야기로 흘러갔다. 누군가는 아이 입시를 말하고, 누군가는 마눌님 흉을 봤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로 묘하게 서먹한 기색이 스쳤다.


조수석에 늘 새로운 사랑을 태우며 외로움을 잊은 듯 달려왔지만, 소란스러운 일상의 대화 사이에서 그는 혼자 섬처럼 떠 있었다.


사랑이 외로움을 달래는 약이라면, 그는 평생 그 약을 먹고도 낫지 못한 사람일까. 아니면 사랑이 치료약이 아니라,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하는 진통제였을까.


그 둘 다 아니면, 우리 모두의 예측이 틀렸는지도.




결혼은 꼭 해야 하는가?


이는 오래된 물음표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찾아오는 질문이다.


길의 끝에 집이 있고, 그 집 문패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걸려 있는 풍경.


거기가 사랑의 종착점일까?


결실은 열매를 뜻한다.

그렇다면 열매 맺지 못한 나무는

실패한 나무일까.

그저 열매만 없을 뿐인데.


그래서 묻고 싶다.

사랑하면, 우리는 그다음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사랑하면 결혼한다.

약속에 이름을 붙이고, 서로의 가족과 미래를 서류 한 장에 담는다.


사랑하면 함께 산다.

결혼이라는 말은 빼고, 같은 현관 비밀번호만 나눠 갖는다.


사랑하면 곁에 머문다.

아무 약속도, 이름도 없이 그저 오래도록.


사랑하면 떠나기도 한다.

이 사람에게 내가 짐이 될까 봐. 혹은 나를 잃을까 봐.


사랑하면 보내기도 한다.

더 넓은 곳으로 가려는 사람의 등을 밀어주며,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지 않으면서.


사랑하면 기다린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을, 오지 않아도 달라지지 않을 마음으로.


사랑하면 닮아간다.

말투가, 좋아하는 음식이, 웃을 때 눈꼬리가 내려가는 모양이, 잠옷 색까지.


사랑하면 변한다.

그 사람 앞에서만 착해지고, 그 사람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


사랑하면 무뎌지기도 한다.

처음의 떨림을 잃고, 지겨움을 평온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달랜다.


사랑하면 싸운다.

남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말을, 가장 아픈 곳을 알기에 찌르고 후회한다.


사랑하면 용서한다.

혹은 용서하지 못한 채 그래도 놓지 않는다.


사랑하면 말하지 못한다.

고백은 끝내 입 안에서 녹아버리고,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안에서만 산다.


사랑하면 혼자 사랑한다.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다. 물론 충분하지 않은 날도 있다.


사랑하면 지킨다.

그 사람의 비밀을, 자존심을, 나만 아는 새벽의 눈물을.


사랑하면 놓아준다.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 이것만이 남은 사랑의 방식이라 믿으며.


사랑하면 잊지 못한다.

헤어지고 나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그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 앞에서.


사랑하면 사랑이 아닌 것도 사랑이라 부른다.

집착도, 의존도, 외로움도.


그리고

사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이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잠들고, 웃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이 조금 덜 낯설어지는 것. 그게 전부인 사랑도 있다. 돌아오면 그만이니까.


내 친구처럼 사랑이 끝나면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정말 사랑만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다시 한번 더 묻고 싶다.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할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랑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은 하지 못하고 있는가.


내가 이 사랑에 붙이고 싶은 이름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일찍이 정해둔 종점을 향해

아무 의심 없이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랑하면,

사랑 다음에 무얼 해야 할까.



에필로그



사랑은 욕망일까.


플라톤은 에로스를 결핍의 아들이라 불렀다.

내게 없는 것을 향해 뻗는 힘이라고.


그렇다면 사랑은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말에 가까울까.

외로움이 사랑의 동력이 되는 것도 그래서일까.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자 결단이라 했다.


욕망은 상대를 내게로 끌어오지만,

사랑은 상대가 그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욕망은 나를 향해 굽어 있고,

사랑은 상대를 향해 열려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욕망으로 시작해

욕망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이 아닐까.


처음에는 내 결핍이 그 사람을 부르지만,

어느 날 문득 곁에 없어도

그가 잘 지내기를 바라게 되는 것.


그 친구의 사랑은 어디쯤이었을까.


채워지면 다음으로 옮겨 가는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닿지 못한 바람이었을까.


결혼한 사람들의 사랑은 또 어디쯤일까.


욕망이 식은 자리를 바카라임과 습관이 채운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답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답을 찾고 나면 질문은 사라질까?


사랑하면 꼭 정해진 종점으로 가야 할까.


우리는 그 사람을 원하는 걸까,

그 사람의 사랑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을 원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우리는,

결혼을 위해서 사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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