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커피는 달콤한 수면제였다

by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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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마시는 커피는 아메리카노이다.


동생은 아이스라테를 좋아하는데, 나는 왠지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조금 식으면 비릿하거나 느끼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커피는 아메리카노라는 생각이 아주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내가 커피를 즐겨 마셨던 때부터 나는 늘 아메리카노만 마셨던 것 같다. 다행히 남편도 나와 커피 취향이 같은 아메리카노라서 그런지 '역시! 우리는 커피 취향도 같다!' 며 남편과 나는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한참 연애를 시작할 때는 이런 사소한 취향 하나가 같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고, 그로 인해 남편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처럼 잘 통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할수록 취향이 같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취향은 취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문득 나의 첫 커피가 떠올랐다.







"윤경아! 내일 시험이니까 엄마가 커피 타왔어!

중학교 들어가서 첫 중간고사니까, 졸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배고프면 엄마에게 또 말하고!"


나의 첫 커피는 1989년, 내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 전날이었다. 중학교 중간고사 시험은 지금이나 그 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다. 과목별로 시험 준비를 해야 했고, 나름 모의고사 같은 시험이 아닌 첫 시험이라 나만큼이나 엄마도 긴장을 하셨던 것 같다. 그 당시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회사에 다니면서 우리를 잘 챙겨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첫 시험이라며 밤을 새워 공부할 거라는 나의 유별난 포부에 맞추어 주시려는 생각이셨던 것이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쟁반에 가지고 온 커피는 사실 누가 보면 따뜻한 미숫가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넙적한 사발에 커피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도 그 당시 최고 환상 조합이라고 했던 2:2:2


맥심커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프리마 두 스푼으로 만든 엄마표 밀크커피가 나의 첫 커피였다.


내 바카라상에 커피를 놓자마자 나는 밀크커피의 달달한 향에 먼저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들은 쓰다고 했던 커피가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했다. 사실 엄마가 설탕을 아주 조금 더 넣었을지 모르는 한성질여사표 밀크커피는 나에게는 잠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잠을 부르는 수면제처럼 나의 뱃속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나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한 커피 한 사발을 마시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고 있나 하며 슬며시 내 방문을 열어본 엄마는 바카라상 한쪽에 한 방울도 안 남아 있는 커피 사발과 그대로 엎드려 코까지 골고 있는 나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나의 커피와의 첫 만남은 웃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나의 중학교 첫 중간고사 성적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시험 점수보다는 엄마의 커피가 더 생생하게 머릿속 한 장면으로 떠오른다. 엄마는 시험 성적표를 보시고 나를 혼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럭저럭 엄마의 기대처럼 잘 본 건가?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내가 수능시험을 보기까지 6년 동안 단 한 번도 커피를 타 주지 않으셨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있다. 아침에 눈떠서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말이다.

이 글 첫머리에 언급한 남편과의 같은 취향에 한 가지 더하자면, 남편과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커피를 마셔도 눕자마자 잠들 수 있는 체질까지 닮았다. 커피 종류는 개인의 취향이니 아메리카노를 똑같이 즐기는 것 만으로 찰떡궁합이라고 말하기는 약간의 억지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시간에 관계없이 함께 즐길 수 있고, 또 커피를 아무리 늦게 마셔도 바로 잠들 수 있는 나와 같은 체질의 사람이 남편인 것은 나에게 참 행운이고, 이 또한 남편에게도 내가 행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내 취향은 아니지만,

엄마의 밀크커피를 한잔 타서 마셔보고 싶다.

어쩌면, 내가 오늘 밤 그리운 것은 달달한 밀크커피가 아니라

그 커피를 들고 방문을 열던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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