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재정의

외로움이 능력이었다면 어쩔 텐가

by궁금한 민지

“언니는 혼자 못살겠다.”


동생이 내게 한 말이다. 나의 연애 횟수는 예닐곱 번 수준인데, 휴지기가 1년을 넘지 않았다. 남자를 만나고, 그 다음 남자를 만나기까지 1년을 지나지 않았다. 그말인 즉슨 남자와 남자 사이에는 짧은 휴식 후에 부단히 움직였단 뜻이다. 주위엔 첫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온라인 게임동료까지 포함하면 특히 더. 카지노톡 프로필에 D+5000 같은 숫자를 심심찮게 본다. 누구는 한 큐에 실패 없는 사랑을 삶을 때, 나는 대체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나. 친구들은 연애를 재개하는 나를 보면 “에너지가 대단하다” “또 만나다니 능력쟁이야” 같은 소리를 했지만, 그 말에 동의한 적은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쫓다가 물 한 모금 마셨다. 그게 대수는 아니잖은가. 나는 갈증을 느꼈고, 그걸 해갈하기 위해 움직인 것 뿐이다.




지난 연애를 돌이킨다. 이 글을 전개하기 위해. 첫 애인은 아직도 무덤 들어갈 때까지 저주하겠다고 꼽는 사람. 그래도 시트콤 같은 장면만 꼽아볼까. 그의 첫사랑 얘기를 들으며 엉엉 운 밤은 지금도 웃기다. 일화는 희미하지만 그가 전한 여자의 사연에 슬픔을 느낀 까닭이다. 두 번째 남자친구는 그야말로 거짓부렁쟁이였는데(!) 사랑에 깜깜이가 된 나는 그의 안타까운 사정에 보증금을 내어주고 방을 찾아준 기억이 있다. 세 번째는 사실 애인도 뭣도 아닌 관계였고, 친구가 내게 정신차리라고 화낼 정도로 나를 하찮게 대한 애였지만, 그럼에도 대수(代數)를 가르쳐주겠다는 그의 제안은 여전히 내게 손꼽힐 제안으로 남았다.


여차저차 다섯 번째 연애 쯤엔 자신의 무정함과 비겁함을 합리로 위장하는 남자에 신물을 느낀 찰나, 대놓고 꿀 발린 소리를 하는 남자에게 넘어갔다. 연애 반년 차 부터는 ‘이 괴이한 관계는 무엇인가’ 싶었으나, 애정과 이상함의 교차로에 서 본 적이 있다면 알 테다. 어떤 결정도 섣부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를 붙잡고 상담소에 가야 하나 새벽 2시까지 고민하던 시간. 그와의 인연은 막을 내린 뒤에도 내 유튜브 알고리즘 속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는 컨텐츠로 남았다. 덕분에 알게 된 심리학 박사님들이 참 많다.


실로 20대의 무수한 연애도 주지 못한 정신이 헤쳐지는 경험. 한동안, 정말로, 오랜만에, ‘오, 연애 끔찍하다’ 했지만, 그마저도 반 년. 그세 기력을 차리고 또 남자를 찾아나섰다. 그때쯤 모임에서 2024년의 그를 만났다. 좋아하는 영화에 관한 질문에 어, 펫촐트라는 감독이 있는데요- 했다가 그를 만났다. 솔직히 다시 생각해도 펫촐트는 좀 감동이었다. 그럼 뭐하나. 생각지도 못할 거시적 이유로 49일 만에 바사삭 됐는데.


눈에 띄는 에피소드, 그마저도 좀 공개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늘어놓기.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사랑스럽고, 끔찍한 존재였을까. 끔찍함이 사랑을 웃도는 이벤트 종료 뒤. 3~4개월 후면 놀랍게도(!) 기력을 회복해 버리는 내가 있었다. 아니, 그저 외로움에 발을 구른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추울 때 몸이 달달거리는 것은 체온 유지를 위한 정상적인 신체 활동이 아닌가. 몇 달 전 B가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고 있었을까, 하길래 “난 다른 사람 만나고 있었겠지!” 자신 있게 외쳐서 그를 당황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능력 있고’와는 무관하다. 음. 이제는 ‘에너지가 대단하다’는 조금 부합할지도.




며칠 전에도 친구와 남자 얘기를 했다. 부산스러운 지난 날들. 남자를 도려내면 내 일상은 얼마나 단정했을까. 사랑은 처음부터 살짝 무른 과일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벌어지는 일과 같다. 아무튼간 생물은 반드시 무르고 썩듯이 사랑도 그렇다. 흘러내리는 과육처럼, 초록빛은 온데간데 사라진 나물처럼 언젠가 주눅 들고 냄새 나고 치우고 싶어지는 운명이 된다. 사랑이라는 사건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를 꼽자면 ‘산뜻’ 일 거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을 찾아나선다? 어… 나는 엄청 먹성이 좋은 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물 먹는 하마 같은 거.


그런데 말이다. 며칠 전 저녁, 횡단보도를 기다리면서 하늘을 쳐다 보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애초에 품이 컸던 게 아닐까? 계속 누군가를 만나야 했던 나는 그저 품이 넓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남들은 연애 졸업할 때 만학도 마냥 여전히 이러고 있는 건, 아직도 내 품이 커서라고. 그래서 반드시 누군가를 들여야 했던 거라고. 엄청나게 큰 집이 있는데, 혼자 살기엔 너무 적적해서. 이 넓은 집에 누구라도 와서 나와 같이 이야기를 꾸려줬으면, 부대끼는 일상을 만들어 줬으면 하면서, 반드시 무르고 썩을 향긋한 과일을 기어코 집안에 들여온 게 아닐까? 이건 프로이트식 결핍과는 완전히 다르다. 애초에 너무 내 품이 커서 생기는 허허로움이라고!


외로움이 능력일지도 모르겠다고 난생 처음 생각했다. 별다른 근거 없이 그저 직관으로 외친다. 혼자 살기에 나라는 사람은 너무 크다고. 그렇게 외로움을 재정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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