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존경하는 온라인카지노 이웃 권민정 작가가 『자기이론으로 쓴 수필 창작론』 출간 소식을 전한 날, 나는 바로 예약구매를 했다.
바카라 제목을 보는 순간 반가움과 함께 다른 마음도 따라왔다. 요즘 나는 가볍게 읽고 지나가는 에세이보다 수필에 더 마음이 간다. 수필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터라, 이 바카라을 오래 곁에 두고 펼쳐볼 교재로 삼고 싶었다.
『자기이론으로 쓴 수필 창작론』은 수필미학 비평 공부반에 참여한 열네 명의 수필가와 비평가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얻은 결실을 모은 바카라이다. 한 사람이 정리한 작법서가 아니라 저마다의 시선과 이론으로 수필을 바라보고 있어, 한 번에 훑기보다 천천히 따라가게 되는 바카라이었다.
바카라을 받아 펼쳐보니 생각보다 천천히 읽게 되었다. 아직 열네 편을 모두 읽지는 못했다. 페이지를 읽다가 앞장을 다시 넘겨보기도 했고, 처음 만나는 용어 앞에서는 연필로 줄을 그었다. 꼭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문장에는 박스를 쳤다. 이해했다 싶다가도 몇 장 뒤에서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바카라장이 깨끗하게 넘어가기보다 자꾸 표시가 늘어가는 독서였다.
그런데 그 수고가 싫지 않았다. 쉽사리 답을 내어주는 바카라이 아니라 수필의 문장과 작법을 하나하나 짚어 주는 쫀쫀한 선생을 만난 듯했다. 대충 알아듣고 지나가려 하면 다시 불러 세워 묻는 선생처럼, 읽는 내내 생각이 흩어지지 못하게 했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 만큼 제대로 공부할 바카라을 만났다는 반가움도 컸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서둘러 읽기보다, 먼저 권민정 작가의 글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가」를 붙들었다.
제목부터 내가 수필을 쓰며 자주 품었던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일을 자세히 적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건너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경험은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벗어나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가.
권민정 작가는 그 과정을 ‘주제’, ‘경험의 추상화’, ‘감정의 사물화’, ‘관조적 거리’,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균형’ 같은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처음에는 용어부터 낯설었다. 한 번 읽고 뜻이 잡히지 않는 문장에는 다시 줄을 긋고, 중심이 된다고 생각한 대목에는 박스를 쳤다. 그렇게 같은 문장을 몇 번씩 들여다보았더니 처음에는 단단하게만 보였던 이론의 말들이 조금씩 내가 써온 글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권민정 작가가 주요 작품으로 다룬 것은 수필 「얼굴을 마주 보고」였다.
해설만 읽고 작품을 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얼굴을 마주 보고」를 직접 찾아 읽었다. 한 편의 창작론을 이해하기 위해 그 안에서 다룬 작품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다. 바카라 한 권을 읽다가 또 다른 글을 펼치고, 줄을 긋고 박스를 친 문장을 다시 확인하고, 원작과 해설 사이를 오가게 되었으니 『자기이론으로 쓴 수필 창작론』은 처음부터 내게 읽고 덮는 바카라으로 오지 않았다.
권민정 작가는 「얼굴을 마주 보고」를 통해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보편적인 의미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짚어간다. 작품에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과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등장한다. 시대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 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경험의 추상화’라는 말이 조금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추상화’라는 단어 때문에 구체적인 경험을 지우고 일반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바카라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자신이 겪은 일을 대충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더 오래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인간의 공통된 문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버려야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 안으로 더 들어가야 다른 사람의 삶과 맞닿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설명에서도 여러 번 줄을 그었다.
슬프다고 쓰는 것과 독자가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다르다. 절망했다고 설명하는 것과 그 절망이 놓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 역시 다르다.
「얼굴을 마주 보고」를 분석하면서 권민정 작가는 철창과 사다리, 얼굴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짚는다. 철창에 갇힌 듯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위아래를 잇는 사다리, 마침내 서로 마주하게 되는 얼굴은 단순한 배경이나 소품으로 머물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지 않은 감정과 생각을 사물이 대신 품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써온 글들도 몇 편 떠올랐다.
나 역시 어떤 생각을 곧바로 설명하기보다 한 장면이나 사물을 붙잡고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왜 그렇게 쓰는 것이 필요한지 이론의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객관적 상관물’이나 ‘감정의 사물화’라는 말을 만나면서, 내가 감각적으로 선택해온 몇몇 방식에도 문학 안에서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필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대목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수필은 자신의 경험을 쓰는 장르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한다. 경험한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옮기는 것과, 시간이 흐른 뒤 그 일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글을 만든다.
지금껏 내가 쓴 글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당시에는 서운하기만 했던 일이 몇 년 뒤 다시 꺼내보니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되기도 했고, 별일 없이 지나쳤던 장면이 시간이 흐른 뒤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했다.
글을 쓰는 나는 사건 속에 있었던 나이면서, 동시에 그때의 나를 다시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왜 나는 그때 그렇게 느꼈을까.
그 경험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것은 정말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권민정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결국 이 질문들이었다.
‘나에게 있었던 일’을 쓰는 것과 ‘사람의 삶’을 쓰는 것은 어디에서 달라지는가.
아직 그 답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바카라을 읽으며 한 가지는 조금씩 또렷해졌다. 개인적인 경험을 감추거나 거창하게 바꾸어야 보편성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삶과 이어지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을 다시 보게 된다.
좋은 수필은 나를 지워서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끝까지 들여다본 끝에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까지 발견하는 글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자기이론으로 쓴 수필 창작론』의 초입에 있다. 열네 명의 글 가운데 이제 한 사람의 글을 붙잡았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바카라 옆에는 또 한 권의 수필 선집이 놓였다. 권민정 작가의 글을 조금 더 이해해보겠다고 「얼굴을 마주 보고」를 찾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바카라은 오래 곁에 두고 여러 번 펼치게 될 것 같다.
온라인카지노에는 자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런 독자라면 이 바카라에서 단순한 수필 이론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경험을 어떻게 글로 바꿀지, 감정을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에서 장면에 맡길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건넬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실제 작품과 문장을 따라가며 설명하는 방식이라,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써온 글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그래서 이 바카라은 이론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문장과 글쓰기를 점검하게 하는 실질적인 작법서로 읽힌다.
한 편을 읽고 원작을 찾아보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는 다시 줄을 긋고, 중요한 대목에는 박스를 치고, 그러다 내가 써온 글을 다시 꺼내보는 바카라.
나는 당분간 이 바카라을 그렇게 읽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