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을 지나온 사람들
T. S. 엘리엇은 「리틀 기딩」에서 삶의 긴 탐험 끝에 우리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비로소 처음 알게 된다고 썼다.
떠났던 자리로 돌아와 지나온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삶의 환승역에서 우리가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선택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상처라고만 여겼던 시간을 지금의 나를 만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만난 환승역』은 그렇게 저마다의 삶을 다시 바라본 스물여섯 명의 이야기다.
이 바카라은 글쓰기 모임 ‘글빵연구소’에서 만난 스물여섯 명의 작가가 글쓰기 과정을 마치며 펴낸 공저 에세이집이다. 저자들은 모두 카지노가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 온라인카지노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각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환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을 꺼내어 살피고, 그 시간이 자신의 삶을 어디로 데려왔는지를 다시 해석한다.
그래서 이 바카라은 단순한 에세이 모음집이라기보다 스물여섯 명이 각자의 삶을 통과해 완성한 졸업 에세이집에 가깝다.
글쓰기를 지도하고 바카라의 출간을 주도한 이는 온라인카지노에서 ‘미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출간은 현재 ‘혜윰길’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 잇고에서 맡았다. 프롤로그 역시 글빵연구소 소장인 미야 작가가 썼으며, 그다음에는 욱이 작가가 졸업과 출간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보탰다.
현재 글빵연구소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미야 작가에게는 언젠가 오프라인 연구소를 여는 꿈이 있다고 한다. 화면 너머로 이어지던 문장과 마음이 한 공간에 모이고, 서로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함께 글을 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삶을 글로 꺼내어 바라보게 하고, 혼자서는 끝내지 못했을 문장을 한 권의 바카라으로 완성하도록 이끈 사람의 꿈이니 더욱 응원하고 싶다. 미야 작가가 오래 품어온 오프라인 글빵연구소가 언젠가 꼭 문을 열기를 바란다.
바카라은 ‘환승역’이라는 큰 주제 아래 네 개의 노선으로 나뉜다.
1번 노선은 ‘지난 역을 사랑하기로 했다.’
2번 노선은 ‘뿌리를 옮겨 심기로 했다.’
3번 노선은 ‘아직 가지 않은 길을 택하기로 했다.’
4번 노선은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사람,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 이전과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 네 개의 노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지만 결국 한곳에서 만난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다시 사랑하기로 한 자리다.
스물여섯 사람의 삶을 한 편의 리뷰에 모두 옮길 수는 없다. 모든 글을 다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그중 유독 오래 마음에 머문 몇 편을 꺼내어 소개해본다.
박상희 작가, 온라인카지노스토리 필명 ‘희야’의 「배움의 무게」는 마흔여덟에 대학 입학원서를 냈던 순간에서 시작한다.
산골 농부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과 남자 형제들에게 밀려 중학교 진학조차 어려웠다. 졸업식 날 가족 중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영민함을 알아본 선생님은 반드시 중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편지를 손에 쥐여주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언니의 간절한 설득까지 더해져 가까스로 배움의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방적회사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기숙사 생활과 3교대 근무를 병행해 학업을 마쳤다. 결혼 후에는 7남매의 맏이인 남편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여섯 동생을 건사했으며, 두 아이의 대학 졸업을 지켜본 뒤에야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에 진학했다.
기간제 상담교사로 일하며 정규직 교사와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지만,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정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다시 자신의 꿈을 미뤄야 했다.
“초조함으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달랠 길 없는 슬픔과 미안함을 떨쳐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온라인카지노라는 플랫폼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가슴 깊이 숨겨왔던 마음을 풀어놓으며 친정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두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그녀 역시 위선종 제거 시술을 받아야 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러 가는 순간에도 시어머니의 비위관 삽관을 결정해야 했고, 친정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며느리와 아내, 어머니와 할머니, 동기간의 역할을 어느 하나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현재도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살피고 외손주를 돌보면서 온라인카지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자기계발을 이어간다. 조용하지만 오래 꺼지지 않는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내가 만약 공모전에 당선된다면, 내 생애에서 아픈 손가락이던 두 분이 가장 기뻐하실 모습이 봄 햇살을 타고 꿈결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녀에게 배움은 단순한 학업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먼저 떠받친 뒤에도 끝내 놓지 않은 자기 삶의 이름이다. 박상희 작가는 바카라임과 사랑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며, 가족과 관계를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롤모델이라 부를 만하다.
연하일휘 작가의 「간이역에 남은 목소리」는 학원 강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한 사람을 꼽으라면 자신의 고민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어른일 것이다. 아이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는지 살펴주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연하일휘 작가는 단순히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강사에 머물지 않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멘토가 되어주었다. 그런 애정과 신뢰를 받았던 한 아이는 성인이 된 뒤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이제 그 일도 지나간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 바카라에 실린 대부분의 작가가 자신이 거쳐 온 환승역을 이야기한다면, 연하일휘 작가는 자신을 아이들이 거쳐 가는 ‘간이역’으로 바라본다. 아이들은 잠시 머물렀다가 각자의 열차를 타고 떠난다. 그녀는 아이들의 목적지를 정하지도, 떠나는 시간을 붙잡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따뜻하게 불러준다.
“내가 불렀던 이름들은 간이역을 가득 메우는 안내 방송이었다. 아이들은 떠나가기도, 머무르기도 했지만 나는 그 선택의 곁에 잠시 서 있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그 사람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일이다. 연하일휘 작가는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어느 열차를 타야 하는지 정답을 건네지도 않는다. 다만 망설이는 시간 곁에 잠시 서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간이역에서 애정을 담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테니까.”
교육은 누군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니라, 그가 자기 힘으로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이름을 불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간이역에는 한동안 목소리의 울림이 남는다. 어쩌면 아이들도 먼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을 애정으로 불러주던 그 목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연하일휘 작가는 오늘도 누군가의 인생에 오래 남을 이름을 부르고 있다.
여러 작품 중 가장 특별하게 다가온 글은 글터지기 작가의 「백정의 역사 환승, 지금도 진행형입니다」였다.
다른 작품들이 주로 개인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와 선택을 이야기한다면, 이 글은 개인의 서사에서 벗어나 역사와 슬롯를 바라본다. 조선시대 백정이라는 직업이 생겨난 배경과 그들이 오랜 세월 겪었던 차별을 살피고, 그 역사를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과 연결한다.
글터지기 작가는 자신을 지역 매장에 신선식품을 납품하는 배송 노동자로 일하며 읽고 쓰는 일을 즐기는 평범한 가장이라고 소개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가 노동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에 같은 현장을 지탱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사용하는 언어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이 어떤 시선을 견뎌야 하는지, 슬롯의 가장 거친 자리를 떠받치면서도 얼마나 쉽게 주변부로 밀려나는지를 지나치지 않았다.
과거 백정에게 가해졌던 차별은 사라진 것일까. 혹은 시대에 맞는 다른 이름과 얼굴로 갈아타 지금도 우리 곁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직업과 출신, 국적과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낮은 자리에 세운다면 차별의 열차는 아직 운행을 멈추지 않은 셈이다. 글터지기 작가는 과거의 백정과 오늘날의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히 같은 존재로 묶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져도 차별의 구조는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찾아 환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순간에도, 이방의 언어로 가장 거친 현장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잠시 스쳐 가는 환승객이 아니라,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행자로 바라보는 감각, 어쩌면 그것이, 이 환승역에서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가치가 아닐까요.”
이 글에서 환승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슬롯가 오래된 차별을 내려놓고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같은 슬롯를 살아가면서도 누군가를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으로 대한다. 그들의 노동은 필요로 하면서도 그들의 삶에는 무관심하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도 같은 객실에 탄 동행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글터지기 작가가 말하는 ‘최소한의 가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우리 곁에서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의 온전한 삶으로 바라보는 감각이다. 그들을 잠시 스쳐 가는 환승객이 아니라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행자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의 환승역도 조금 더 따뜻한 장소가 될 것이다.
개인의 상처와 회복을 이야기하던 바카라이 이 작품을 통해 슬롯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이 글은 스물여섯 편 가운데 유독 다른 빛으로 오래 남았다.
태이린 작가의 「어느 카나리아의 세 번째 환승」은 여자와 카나리아, 독수리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우화처럼 풀어낸 글이다. 이야기 속 여자는 작가의 어머니를, 카나리아는 작가 자신을, 독수리는 삶의 동반자인 남편을 상징한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자란 카나리아에게 새장은 안전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벗어나고 싶은 답답한 공간이었다. 마침내 카나리아는 익숙한 새장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날아가지만, 막상 마주한 자유 속에서는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방향을 잃는다. 자유를 꿈꾸며 떠났지만, 스스로 길을 정해야 하는 삶은 생각보다 막막하고 외로운 것이었다.
이후 카나리아는 해외라는 새로운 새장으로 옮겨간다.
" 카나리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함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새장은 답답해졌고 여자의 가장 자랑스러운 전시물로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환승이 다가왔다. 그환승은 새장에서 새장이 없는 세상으로였다. "
낯선 환경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카나리아는 두 번째 환승에서 독수리를 만나고, 함께 새장 없는 세상으로 날아간다. 든든한 동반자와 나란히 살아가는 삶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편의 공허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공허함을 따라 카나리아는 마침내 자신만의 비행을 시작한다. 섬세한 감각과 능력이 필요한 새로운 영역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바로 세 번째 환승이다. 이번 환승은 누군가의 보호를 벗어나거나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는 외적인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과 재능을 찾아가는 내면의 이동에 가깝다.
이야기는 마지막에 현실로 돌아온다. 태이린 작가는 남편과 함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새롭게 시작한 비행이 무사히 성공하기를 바란다. 부모의 사랑에서 벗어나 홀로 서고, 배우자와 함께 삶을 꾸려가며, 마침내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이 세 번의 환승 안에 차분히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글은 관심 작가인 고요한 동산 작가의 졸업작품 「커피잔에 내어놓다」이다. 이 글은 호주아재, 유연 작가의 졸업작품 수상작과 함께 바카라의 부록에 실려 있다.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커피로 몸과 마음을 깨우고 업무를 시작하지만,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낀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견디고, 오늘과 비슷할 내일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전 단골 카페에 들러 카페라떼를 주문한다.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데 평소와 다른 목소리가 작가를 부른다. 알고 보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페 사장이었다.
사장이 직접 아침을 지키던 그날, 매장은 이전과 달라 보였다. 먼지 쌓인 조화를 걷어내고 묵은 얼룩을 닦아낸 듯, 투명한 커피잔처럼 말끔했다.
그 순간 작가는 평소 자신을 맞아주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늘 듣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텐션 높은 목소리는 덜 깨어난 뇌에 산소를 불어넣는 듯했고, 여자 아르바이트생의 달콤한 미소와 부드러운 인사는 하루의 시작을 포근하게 여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커피를 만들고 잔을 건네며 인사를 나누는 짧은 순간들. 너무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실은 작가에게 영향을 주고 하루의 결을 바꾸어놓고 있었다.
“이렇게 선택된 모든 순간이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지나치듯 흘려보냈던 순간들도 멈춰보니 하나같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점과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모여 면이 되듯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모여 하루를 그려 내고 있었다. 나도 매 순간 '나'라는 흔적을 잔에 담아 누군가에게 건네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을 바꾸는 순간이 언제나 거대한 사건의 모습으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직업을 얻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살던 곳을 떠나는 일처럼 분명한 변화만을 환승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고요한 동산 작가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 커피 한 잔을 건네는 손길 안에서도 삶이 조용히 바뀌고 있음을 발견한다.
무심히 건넨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의 아침을 밝힐 수 있고, 작은 친절 하나가 지친 사람의 하루를 끝까지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마다의 흔적을 잔에 담아 누군가에게 건네며 살아간다.
「커피잔에 내어놓다」는 평범한 일상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점처럼 흩어져 보이던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하루가 되고, 하루와 하루가 이어져 한 생의 모양을 만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날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마음 한 잔을 건네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만난 환승역』에는 스물여섯 개의 서로 다른 인생이 담겨 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배움의 열차에 뒤늦게 올랐다. 어떤 이는 떠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간이역으로 남았다. 어떤 이는 과거의 차별이 오늘날 누구에게 옮겨가고 있는지를 물었다. 어떤 이는 어머니의 새장을 벗어나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며 자기만의 세 번째 비행을 준비했다. 또 어떤 이는 커피 한 잔이 오가는 평범한 아침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글에는 하나의 공통된 마음이 흐른다.
그들은 환승 이전의 삶을 부끄러워하거나 지우려 하지 않는다. 놓쳐버린 역과 잘못 탔다고 생각했던 열차, 오래 기다려야 했던 플랫폼까지도 자신의 삶을 이루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떠나온 역을 미워하는 대신 그곳에서 견디고 살아낸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들의 환승은 혼자만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일이 아니다.
가족과 제자, 배우자와 동료, 낯선 이방인까지도 같은 노선을 달리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며,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걷는다. 함께 환승한 사람들과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 도착하기를 꿈꾼다.
인생은 목적지까지 한 번에 데려다주는 직행열차가 아니다. 예고 없이 내려야 할 때도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플랫폼에 오래 서 있을 때도 있다. 이미 떠난 열차를 바라보며 후회하거나, 내가 탄 열차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환승한 뒤에야 비로소 이전의 노선을 이해하게 한다.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새로운 길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돌아가고 싶었던 과거가 지금의 나를 키운 자리였다는 것을, 혼자 기다린 줄 알았던 플랫폼에 사실은 함께 서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T. S. 엘리엇의 문장처럼 우리는 긴 탐험 끝에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우리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알게 된 눈으로 그곳을 처음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만난 환승역』은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느 역에 서 있는가.
어떤 열차에서 내렸고, 어느 방향으로 환승하려 하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의 곁에는 누가 함께 서 있는가.
스물여섯 작가가 지나온 역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이 끝내 도착한 곳은 한 권의 바카라이었다. 저마다의 상처와 선택, 기다림과 용기가 문장이 되어 서로의 곁에 놓였고, 마침내 『우리가 만난 환승역』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바카라이 누군가에게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작은 정거장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로 나아갈 용기를 건네는 환승역이 되기를 바란다.
스물여섯 작가의 졸업과 빛나는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써 내려갈 다음 노선에도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아래 링크는 이 작품을 함께 하신 작가님들의 인터뷰입니다.
스물여섯 작가님의 이야기를 모두 이 글에 담지 못해 마음이 쓰입니다. 소개하지 못한 글들 역시 저마다의 빛과 온도를 품고 있었지만, 한 편의 리뷰에 모두 옮기기에는 분량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양해구합니다.
아울러 『솔밭문학』 2호를 발행하신 김인숙 작가님께도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제 글이 함께 실린 바카라이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직접 바카라을 소개하는 일이 조심스러워 미처 다루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글로 전하지 못한 점,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요즘 고택 이야기를 쓰면서 잠시 글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문장을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아 이번 리뷰도 생각보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바카라의 출간이 반갑고 기뻐, 축하의 마음과 작은 의리를 보태어 끝까지 써보았습니다.
글 발행을 잠시 멈추려 합니다. 조금 쉬고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돌아오면, 그때 천천히 복귀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특히 최근 새롭게 구독으로 인연을 맺은 작가님들의 글방에는 복귀한 뒤 꼭 찾아뵙겠습니다.
자리를 비우더라도 글과 사람을 향한 마음은 여전한 것, 아시지요? 다시 문장이 저를 찾아오는 날, 반갑게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