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영 지음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읽고
우리 글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예전에는 가장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자가 한글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란 이름으로 살면서 늘 "우리 글이 왜 이렇게 어려워?"라는 소리를 나도 모르게 한다. TV에서 '우리말 겨루기'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한다. 특히 달인 2단계 띄어쓰기 문제에 관심이 있어 함께 풀어보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글쓰기 할 때 띄어쓰기가 정말 어렵다.
작년에 쌍둥이 손주 육아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를 출간했다. 원고를 퇴고하기 전까지 읽고 또 읽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하느라 참 힘들었다. 출판사에 마지막 원고를 넘기기 전에 교정, 교열, 윤문 작업은 필수라서 나름대로 완벽한 원고를 넘기고 싶어서 정성을 다해 다듬다 보니 온몸의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며 '앞으로 출간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은 온라인 맞춤법 검사기의 도움을 받곤 하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지난 10월 13일, 이웃 도서관으로 인문학 수업을 받으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신간 서가를 두리번거리다 이 바카라을 발견했다. 제목만 보고도 망설임 없이 대출해 왔다. 바카라 크기가 작다 보니 글씨도 촘촘해 돋보기를 쓰고 읽느라 애를 먹었지만, 늘 맞춤법 때문에 고민하던 나에게 딱 맞는 바카라이었다.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2026년 4월 출간)는 10년 동안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이현경 작가님이 쓴 바카라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교육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한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꿈꿨으나, 국립국어원에 입사하면서 맞춤법 질문에 답하는 '보이지 않는 교사'가 되었단다. 바카라 제목이 꼭 내 목소리처럼 정답다.
글이 얼굴을 대신하는 시대
이 바카라은 맞춤법을 가르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10년간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으로 근무한 개인의 경험을 쓴 글이라서 더 공감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이다. 한 꼭지를 읽으면 빨리 다음 장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저자는 스스로 '연구하는 상담원' 또는 '상담하는 연구원'으로 부른다. 출근하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우리말365'창을 연다. '우리말365'는 카지노톡 메신저를 통해 국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담원 한 사람당 하루 평균 60건에서 100건 정도의 질문을 처리한단다. 채팅 상담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전화 상담이 이어진다. 통화가 끝나면 상담 내용을 기록하여 자료로 남긴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질문과 답변을 오가며 맞춤법과 온종일 싸운다.
나도 카지노톡을 열어 '우리말365'를 검색해서 채널 추가를 해 보았다. 바로 카지노톡 창에 국립국어원 채널 '우리말365'가 추가되었다. 앞으로 글을 쓰다가 고민되는 맞춤법이 있을 때 이용해야겠다. 요즘 서비스 센터, 고객 센터 등에서 사람 대신 채팅 봇이 문의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곳이 많아 답답할 때가 있다. '우리말365'는 카지노톡으로 인공지능이 아닌 상담 연구원에게 직접 우리말을 상담받을 수 있으니 왠지 신뢰가 가고 내편이 생긴 것 같아서 든든하다.
국립국어원에서 국어 상담은 카지노톡 상담 외에도 웹을 통해 '온라인 가나다'와 '가나다 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한 해 동안 세 창구를 통해 이뤄지는 국어 상담 건수가 20만 건에 육박한다고 하니 우리말 맞춤법을 고민하는 분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 우리는 맞춤법에 예민한 시대에 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소통하는 시대인 지금, 소통은 얼굴 없이 글로 먼저 이루어진다. 우리는 상대를 보지 못한 채 상대의 문장을 먼저 보기에 문장이 곧 그 사람이며, 맞춤법은 그 사람의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글을 발행할 때 늘 맞춤법이 신경 쓰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서야 글을 발행한다. 맞춤법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다.
국립국어원 상담사도 몰랐던 신조어
요즘 신조어, 축약어가 많이 생겼다. 학생들이나 젊은 분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려면 유행하는 신조어와 축약어를 알아두어야 한다. 저자도 요즘 새로 생겨난 신조어를 따라가기 급급하단다.
"선생님들, 혹시 '긁'이라는 말 알아요?"
20대 아들을 둔 연구관이 한 질문인데 저자도 모르는 말이었다. 주로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쓰는 말로, 대화하다가 한쪽의 기분이 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장난스레 "야, 너 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너 설마 그걸로 마음 상했니?"라는 뜻으로 '긁히다'라는 단어를 줄여서 쓴 표현이라니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노인 일자리로 초등학교에 전통 놀이 지도를 나간다. 전통 놀이 수업하고 늘 5분 전에 학생들과 자리 정돈하고 그날 수업에 대한 소감을 발표시킨다. 그날 수업이 대형 윷놀이였는데 초등학교 2학년 학생 말에 전통 놀이 선생님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오늘 수업 어땠어요. 우리 소감 발표해 볼까요?"
"선생님, 오늘 야르했어요."
나중에 인공 지능에게 물어보니 '야르'는 아이들이 기분이 좋거나 신날 때 쓰는 '앗싸!'처럼 긍정적인 감탄사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쌍둥이 손자도 잘 알고 있는 단어였다. 그다음부터 '야르'는 친근한 단어가 되었다.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다시 한번'에서 '한번'을 띄어야 하는가, 붙여야 하는가?"
국립국어원 연구원들은 주기적으로 국어상담실 회의를 거쳐서 제출된 안건을 심도 있게 토의한다. 어떤 주제는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여러 번의 연찬회 안건으로 올라오기도 한단다. 예를 들면 '다시 한번'은 무려 5년 동안 총 세 차례나 연찬회 안건으로 올라와서 열띤 논쟁을 벌인 끝에 '한번'이 '다시' 다음에 오면 '의미 적합성'보다 '편의성'에 힘을 실어 붙여 쓰는 것으로 통일하기로 했단다. 이렇듯 띄어쓰기 하나를 두고도 이리 의견이 분분하고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토의해야 한다니 국어상담실 연구원들의 고민이 깊음을 느낀다.
나는 글을 쓸 때 띄어쓰기가 늘 어렵다. 글을 완성하고 맞춤법 검사기로 확인하는데 늘 띄어쓰기에서 걸리는 것이 많다. 국립국어원에서도 2024년 들어 국어상담실 내부 회의의 주제로 유독 띄어쓰기에 관한 내용이 많이 거론되었다니 띄어쓰기가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보다. 바카라 속에서 띄어쓰기 관련 글은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서 읽었다.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는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예시로 드는 문장이다. 즉 띄어쓰기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의미적 중의성을 내포한 문장이다. 예전에 국립국어원 게시판을 달궜던 문장이 있었는데 띄어쓰기가 예사롭지 않다.
"너 나 안 본 지 두 달 다 돼 감"
위 인용 문장같이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지금은 '두 달'과 '돼 감'은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한다니 맞춤법도 시대에 따라 허용하는 원칙이 달라지는 것 같다.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로 들어오는 질문은 참으로 다채롭다. 올바른 맞춤법은 물론 호칭과 관계에 대한 예절, 외래어 표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질문이 이어진다. 상담실 연구원들은 답변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을 거쳐 내용을 정밀하게 확인하기 때문에, 질문이 끝나자마자 즉시 답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간혹 묻자마자 즉답을 원하는 분들이 계셔서 바로 답하느라 실수할 때도 있다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무리 국어의 최고 전문가라 한들 어찌 모든 물음에 즉시 완벽한 답을 낼 수 있겠는가. 질문을 던진 우리 역시 조급함을 내려놓고 정확한 답변을 기다릴 줄 아는 배려가 필요하겠다.
이 바카라은 단순히 맞춤법 지식을 전달하는 바카라을 넘어, 우리말 뒤에 숨은 사람들의 고뇌와 따뜻한 마음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 고마운 바카라이다. 바카라을 덮으며 맞춤법이란 단순히 틀리고 맞음을 가르는 잣대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정확하고 따뜻하게 나누기 위한 '배려의 약속'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맞춤법이 어렵고 헷갈려 주춤했던 이들에게, 그리고 무심코 쓰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바카라을 살며시 권하고 싶다. 바카라 말미에 부록으로 '우리말365 단골 질문 20가지'는 그동안 글 쓰며 헷갈렸던 맞춤법에 대한 예시라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작은 글씨를 읽느라 눈은 조금 피로했지만, 마음만은 우리말의 단정한 온기로 꽉 차올라 참 따뜻한 바카라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