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종합병원 매장, 수상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조현선 장편소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을 읽고

by유미래

요즘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시다 떠나신 분은 많지 않다. 지난주에도 친지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폐암 4기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시다가 90세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늘 마음이 무겁다. 장례식장이 아닌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찾아뵈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한다. 작년에 남편과 이웃 도서관에서 하는 웰다잉 관련 특강에 다녀온 적이 있다. 웰다잉 플래너이고,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를 출간한 강원남 작가님 강의였다. 결론은'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즉 '웰빙이 곧 웰다잉'이다.


특강을 들으며 박정자 연극배우의 '생전 장례식'이 떠올랐다. 83세였던 박정자 배우는 영화 촬영 중 동료와 지인 150명을 초대해서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이 소식은 장례식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정신이 맑을 때 가족과 지인을 모셔놓고 잔치 같은 분위기에서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실제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간단하게 치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도 종종 한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2026년 1월 출간)은 바카라 제목 때문에 끌려서 읽고 싶은 바카라이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검색했지만, 늘 대출 불가, 예약 불가로 떴다. 인기가 많은 바카라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다행히 지난주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바카라을 예약하는데 성공해서 바카라을 대출할 수 있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바카라 제목처럼 '완벽한 장례식은 어떤 것일까? 정말 완벽한 장례식은 존재할까?" 궁금증을 마음에 담고 바카라장을 펼쳤다. 나는 평소에 에세이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 올여름 무더위를 이기려고 몇 권의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장편소설의 매력에 빠져서 이번 소설도 기대되었다.


새벽 2시 종합병원 매장에 찾아온 그림자 없는 사람들


바카라 표지(북로망스 출판)

이 소설의 주인공 나희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청년이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분식점을 운영하는 아빠와 둘이 산다. 아빠의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모아 대학을 간다고 하는 착하지만 당찬 아가씨다. 아빠도 그런 딸의 의사를 존중해 준다. 이런 딸을 보는 아빠는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플 것도 같다. 천칭에 두 마음을 올려놓으면 어떤 마음으로 기울까. 짐작할 수 없지만 이런 딸은 내가 생각해도 자랑스럽다.


나희는 고등학생일 때도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이번에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오래 할 수 있는 좋은 곳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종합병원 매장 야간 아르바이트인데 1.5배 이상 높은 시급에, 하루 열 시간 근무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좋은 주인을 만나 급여가 월 300만 원 정도였으니 1년 동안 꾸준히 아르바이트하면 대학 등록금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계획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새벽 2시에 이상한 사람이 보였다. 겨울도 아닌데 겨울 패딩을 입은 남자와 환자복을 입고 의료용 관에 묶인 할머니가 보였는데 나희는 이분들이 산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름이면 납량특집이라고 귀신들이 나와 머리가 쭈뼛 서는 드라마를 방영했었다. 나는 귀신이 나오면 무서워서 눈을 가리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며 시청했는데 드라마가 끝나면 방에 들어가는 일도 오싹해지곤 하였다. 이 장면부터 나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긴장하며 바카라을 읽었다.


나희는 그일 이후로 아르바이트 시간을 오후 1시부터 밤 10시로 바꾸었지만, 이상한 일이 계속되었다. 이 매장에서 죽은 자를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서 죽은 자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이전 아르바이트생 수영을 만나며 생각의 변화가 온다.


죽은 자들의 마지막 부탁 들어주기


죽음 뒤의 세상은 모르지만, 여기서 같이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기 전, 마음에 걸리는 사소한 부탁들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 -56쪽


나희가 죽은 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사실 나희가 어렸을 때도 엄마와 같이 보았는데 엄마가 나희 열세 살 때 돌아가신 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수영을 만나며 죽은 자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치매 아내에게 먹일 고깃국을 사놓고 어지럼증과 함께 쓰러져 돌아가신 사장님, 겨울 패딩 입은 청년의 부탁을 들어주고, 미장원 사장님이 부탁한 다락방 문을 열어 고양이 루비를 탈출시켜 키우게 되는 이야기에서는 "잘했다!" 칭찬해주고 싶었다.


소망을 이루는 순간 장례지도사를 따라 손을 흔들며 미련 없이 이 세상을 홀가분하게 떠나는 망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희도 자신이 하는 일을 보람으로 받아들인다. 죽은 자의 부탁을 들어주며 죽은 사람이 어떨 때 지상에 머무는지 궁금한 나희에게 수영은 사람 나름이라며 말해준다.


"대체로는 죽은 사람이 미련이 있거나, 반대로 산 사람이 미련을 가지고 붙잡고 있거나, 뭐 그런 경우. 미련이라는 게 원한일 때도 있고 후회일 때도 있고."
-103쪽


정말 그럴까. 사후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작가도 이런 궁금증 때문에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죽으면 영혼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거라고 믿지만, 죽은 후의 세상이 늘 궁금하긴 하다. 이상하게 소설을 읽으며 무겁게 느껴졌던 죽음이 불편하게 생각되지 않고 자꾸 빠지게 되는 이유다.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 바카라에서는 종합병원 매장에서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두 명이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희와 이전에 근무했던 열 살 많은 사진작가 수영이다. 수영에게는 중학생부터 친구였던 희진이 있었다. 희진은 자가면역 질환자였고, 소아 루푸스병으로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성인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서른 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희진이 죽은 자가 되어 매점 주문 창에 찾아온 것이다. 찾아온 희진이 내가 왜 이리 반가울까. 친구의 상실로 무기력해진 수영은 나희 대신 근무하며 희진이 다시 찾아오길 기다렸다. 수영의 바람대로 죽은 자가 된 희진이 찾아와서 수영과 화기애애하게 동해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매점 맞은편으로 그림자가 없는 형체 하나가 나타났다. 수영이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형체는 천천히 매점 가까이 다가와서 주문 창을 들여다보았다. 최희진의 유령은 다른 죽은 자들보다 훨씬 투명해서 마치 뒤가 비쳐 보일 것만 같았다. 가여운 내 친구, 너는 죽어서도 연약하구나. -198쪽


첫 챕터에서 나희가 죽은 자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서 바카라을 계속 읽어야 할까 고민했었다. 나는 마음이 약한 편이고 무서운 장면을 보거나 신경 쓰일 일이 있으면 자다가 '가위눌림'을 겪을 때가 있다. 내가 잠결에 소리를 지르면 남편이 나를 깨운다. 그런데 바카라을 읽을수록 무서운 것이 아니라 따뜻함이 배어 나와서 나희를 응원하게 되었다. 나희가 죽은 자의 부탁을 들어주어 망자가 평온한 표정으로 장례지도사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는 모습이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다.


수영과 희진의 작별 인사 장면을 보며 3년 전에 떠나신 친정엄마도 부탁하실 일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졌다. 갑자기 떠나셨기에 이 세상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으셨을 거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누구에게나 잘했고 가족들에게도 상처가 되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셔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미련 없이 천국으로 가셨을 거라고 믿고 싶다.


완벽한 장례식이란 어떤 걸까?


이 바카라은 소설이지만, 이상하게 공감이 되었다. 저자가 말하려는 '완벽한 장례식'은 어떤 것일까? '완벽한 장례식'이란 화려하고 거창한 의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아있던 감정과 미련을 깨끗하게 비워내고 홀가분하게 이 세상을 떠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즉 우리의 삶을 후회 없이 정리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다음 길을 향해 떠나는 아름다운 배웅을 상징하는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나 괜찮아요. 이제 행복해요.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조용한 새벽 공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발치에 뭐가 툭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잡았다. 손톱보다 더 작고 연한 분홍색의 별사탕이었다. -287쪽


나희에게 가장 먼저 보였던 의료용 관 같은 걸 매달은 할머니가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죽은 자로 보였다고 하니 정말 궁금했다. 나희도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소설이 끝날 무렵에야 정체가 드러난다.


이 바카라은 죽음과 이별의 의미를 이야기하지만 무거운 바카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죽은 자가 보인다는 대목에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지만, 바카라을 읽을수록 따뜻함이 전해졌고 나희가 죽은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를 응원하게 되었다.


바카라장을 덮으며 남편과 들었던 웰다잉 강의가 다시 떠올랐다. 앞으로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미안함이 없이 가벼이 떠날 수 있도록 평소에 풀지 못하는 미련, 원한, 혹은 후회가 없도록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좋은 말은 많이 해주고, 오해가 있으면 먼저 손 내밀어 사과하는 태도 말이다. 이 소설이 주는 교훈도 역시 '웰빙이 곧 웰다잉이다.'가 아닐까 싶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지낸 안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오마이뉴스 바카라동네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omn.kr/2k0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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