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던 바카라이 눈앞에, 소리나누미 봉사 정말 잘했네

점자도서관봉사 4개월, 좋아하는 바카라을 모니터링으로 들으며 느낀 벅찬 감동

by유미래

'나이 들면 돈 버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주일 설교에서 들었다. 설교를 들으며 올해 시작한 점자도서관 봉사활동이 가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퇴직 후에 왠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지난 3월 말부터 송암점자도서관에 주 1회 '소리 나누미' 봉사를 다니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바카라을 낭독해서 오디오북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다. '소리 나누미'는 바카라을 낭독하고 녹음하는 일과 낭독한 것을 들으며 빠진 글이나 잘못 읽은 글이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나는 후자 모니터단이다. 보통 주 1회 2시간 정도 봉사하지만 어떤 날은 빨리 모니터링을 해드리면 오디오북 제작이 빠를 것 같아서 욕심부려 3시간이 넘도록 봉사하기도 한다.


'소리 나누미' 봉사 4개월, 힘듦보다 행복한 나


녹음실에서 모니터링 하는 모습

소리 나누미 봉사는 3월 말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4개월째다. 보통 한 달에 한 권 정도 모니터링을 하는데 조금 욕심부려 조금 짧은 바카라은 2주에 한 권을 완성하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모니터링한 바카라은 모두 다섯 권이다. 녹음한 바카라을 모니터링하느라 헤드폰을 끼고 편안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더 힐링된다.


모니터링은 귀로는 녹음 목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야 해서 정말 집중력이 요구된다. 몇 권을 모니터링하다 보니 녹음하신 분을 모르지만 초보 낭독자인지, 경력자인지가 느껴진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경력이 있는 낭독자가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여유가 느껴지고 편안하고 오류가 거의 없다. 누구나 초보 시절은 있다. 처음 봉사하시는 분도 녹음하는 바카라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잘하시리라 믿는다. 나도 올해 초보 모니터단이라서 놓치는 것이 없도록 신경 쓴다.


최근에 모니터링 한 바카라


바카라을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같은 톤으로 읽고 녹음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도 낭독을 배웠지만, 복식 호흡으로 읽어야 하고 목소리 톤도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어야 하기에 같은 목소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그냥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기에 앞에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모니터링하다 보면 처음에는 산뜻하게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목소리가 잠기는 분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4개월째 모니터링하면서 이 일이 나에게 꼭 맞는 봉사활동임을 느낀다. 처음에는 낭독 봉사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모니터단이 된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꼼꼼하고 집중력이 있어서 이 일이 적성에 잘 맞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해서 오래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할매'를 낭독으로 들으며 가슴이 벅찼다


지난겨울부터 황석영 작가님의 '할매'를 읽고 싶었다. 물론 서점에서 주문해서 읽으면 바로 읽을 수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야지 마음먹어서 도서관 갈 때마다 검색해 보았다. 인기가 많은 바카라이라서 늘 대출 불가였고, 예약 불가라 읽지 못했다. 이번 주에 봉사하러 가서 모니터링할 바카라을 확인했는데 바로 황석영 장편소설 '할매'였다.


"어머! 할매가 이번 달 모니터링 바카라이라고?"

"이걸 소리로 듣는다고? 이런 행운은 없을 거야."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두리번거리며 누가 들었을까 봐 민망했는데 녹음실에는 나 혼자라서 다행이었다. 바카라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빨리 듣고 싶었다.


이번 주에 모니터링한 바카라 <할매>


'할매' 바카라을 펼치고 헤드폰을 끼고 녹음 파일을 열었다. 작가 소개, 차례에 이어서 바로 본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차분하면서도 정답게 읽어주는 낭독을 들으며 바카라 속에 풍덩 빠졌다.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링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려고 집중해서 소리와 글자를 따라갔다. 바카라의 제목이 왜 '할매'일까 계속 궁금했는데 드디어 할매가 등장했다. 고목 팽나무에게 몽각('할매' 바카라 속 인물)이 하는 말이다.


할매, 이것이 당신 자식이라오, 내가 키웠어요.


이 바카라에는 본문과 대화 글 구분이 없다. 보통 대화 글은 큰따옴표를 사용하는데 대화글에 큰따옴표가 없었다. 거기다 각종 새 이름, 나무 이름, 꽃 이름 등 발음하기 어려운 낱말도 많았다. 낭독자가 낭독하기 어려운 바카라인데 정말 자연스럽게 잘 읽었다. 틀린 부분도 별로 없어서 세 시간 동안 나도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가끔 수정해야 할 부분을 찾았을 때는 숨은 그림이라도 찾은 듯 뿌듯했다.


모니터링을 빨리 해 드려서 시각장애인들께도 '할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다음날에도 시간 내어 점자도서관을 찾았다. 마지막 바카라장을 덮으며 팽나무와 연결된 육백 년의 서사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틀에 걸쳐 여섯 시간 넘게 '할매' 모니터링을 마치고 나니 정말 뿌듯했다.


낭독 모니터링 봉사활동은 시간이 있어 꾸준하게 참여할 수 있고, 바카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 조금 멀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점자도서관에 문의해 보면 봉사활동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특히 나이 들어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싶은 분이라면 보람과 행복 두 가지를 느끼며 봉사할 수 있을 거다. 많은 분이 참여하시면 좋겠다. 또한 올해가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하신 지)이라고 한다. 인천송암점자도서관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인데 많은 관심 바란다.


https://omn.kr/2j3y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