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에 아들에게 잘난 척하려고 쓰는 글

살다 보면 기억나는 것들 /////

by빼빼

샤덴프로이데 ( 어감이 멋있어서 외워둔 거.)



아침에 아내랑 밥을 먹으면서 흘려지나 가는 말을 했다.

잠깐였다.

1분 정도.

" 어쩌면~ 이렇게 난 의미 없이 살았나 모르겠네..." " 또 지금도 어영부영 사네~!! "

"이러다 나 성인(聖人) 못되는 거 아닐까? "

결정을 한적도 별로 없는 거 같고 바카라임도 크게 지지 않은 거 같고 또 결과를 크게 거두어 본적두 없는 거 같고

좌절도 크게 안 한 거 같고 , 무게감을 느껴본 적도 별로 없고....

많은 것들이 왜곡되어 자리 잡아서 그런 걸까??



난 대략 4살 정도부터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네 살쯤 될 무렵 아버지는 엄마 말고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났었던 거 같다.

세 살 차이니까 누나는 일곱 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켰는지 엄마가 시켰는지 그 바람난 아버지를 데리러 그 여자 집엘 간다.

누나는 굉장히 싫어했던 거 같다.

신장로를 걸어가면서 내내 투덜거리며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그 무언가 들에게 ,

화풀이를 해가며 걸었던 거 같다.

나는 뭐가 좋았는지 기대를 하면서 갔다. 대략 좋은 기분였다.


도착하고 나면 머리 꼭 때기쯤 닿을 수 있을 정도에 창문에다 아버지를 찾는다.

누나는 꼭 나보고 "니가 불러" 그랬던 것 같다.

창문이 반쯤 열리면서 그 여자는 나를 반겼다.

그런데 누나는 반기진 안았던 거 같다.

"아이고~! 아무개 왔어~~" 내 겨드랑이 사이를 번쩍 들어서 방으로 내려놓았다.

누나는 밖에 있다.

뭔 얘기가 오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할머니 벽장에서도 볼 수 없는 처음 보는 과자도 줘서 먹고 돈 두 받았던 거 같다.

아마 종이 돈였던 걸로 기억난다.

5천 원 만원 같은 지폐가 아니라 무슨.... 환였었다. 1 환 2 환 5 환 10 환....?

그걸 절대로 누나는 주지 말라고 하며 그 여자는 내 몸 어떤 구석에다 꾸겨 넣어줬다.

그렇게 얼마나 있다가 우린 집으로 간다.

그 후 로 아버지가 집에 오셨는지 아니면 안 오셨는 그런 기억도 이젠 없다.

살면서 드믄드믄 어른들이나 누나도 그렇고 그 여자 욕을 많이들 했다.

꽤 쌍스러운 말이 들릴 정도로 그 여자 욕을 했다.

그런데 난 안 그랬다. 욕하시는 모든 어른에다 대고 난 그 아줌마 좋다고 하기엔 , 어린 생각에도

뭐가 이상한 찜찜함이 있었다.

나를 그 정도로 반겨가며 돈과 또 이상하고 맛있는 과자며 , 참 또 고무신도 줬던 거 같다. 등등

그렇게 이유없이 살갑게 대해준 사람이 거의 없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쯤은 내가 혹시 그 아줌마 아들이 아닌가? " 이런 생각도 했었던 거 같다.


내 오래된 기억 중에서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기억이다.

그보다 밑에 있는 기억은 없다.

나의 첫 기억.

이렇게 또렷하게 몇 가닥 남아있다는 거는 나에게 어떤 영향에 있었다는 거 아닐까?

무슨 영향이 있었을까?

한 사람을 구성하는 육체적 정신적인 것들, 선천( 유전적 요인 )과 후천(경험. 기억) 적인 것들의

유기적 화합물들이 작용한 집합체 아닐까?

사람의 정신 속 무의식과 의식을 좌우하는 것은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 ,

이미 많은 것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과거는 현재의 영향을 준다.

많이 준다? 못준다?

또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과거는 현재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쩌면 미래에 어느 시점을 지배한다?

이것이 성장이며 진화이며 발전인가? 또는 그것들로부터의 퇴보인가?

어쨌든.


지금 나의 주변 사람, 지금 하는 생각, 지금 나의 환경, 지금 나의 습관, 지금 나의.... 여러 것들.



샤덴프로이데.


이게 내 모습인가?

요거는 성인의 반대 놈이다.

타인의 실패나 아픔 고통 좌절 등을 자기의 우월한 위안으로 삼으며 묘한 삶의 유지장치를

점점 키워간다.

난 이상하게 남들 사는 거에는 관심이 많았었다.

주변인들 말고도 지구 반대편사람들 뿐만 아니라 2500년 전의 사람들에 거 조차도 관심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내가 상대적인 위안을 받으려고 한건 아닐까?

무엇이던 잘하고 열심히 해내야 하는 처절하게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는 축복(?)이 곧

좌절이고 실패고 고통이다.

난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안 갔다. 난 또 쪼금만 시간지나면 괜찮으니까.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느을 힘들어했던 거 같다. 아무리 봐도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왜 이런 시건방진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뭐가 그리 버거운지 날 부러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모지리 취급했다.


내가 이런 샤덴프로이데 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의 꿈은 성인 인지 모르겠다.

다소 쪽팔리는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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