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욕심 희망 꿈 ////
꼬마 때부터 목적이나 목표 없이 그냥 컸다.ㅡㅡ
선생님 부모님이나 주변인들은 나에겐 관심 없었다.
쎄 보이고 강한 걸 좋아했다. 마징가제트나 600만 불의 사나이 또 이소룡 이런 거 좋아했다.
복권은 욕망과 욕심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다.
아마도 그도 잠시만 일듯.
복권방을 하기 전까지는 복권과 일확천금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이 되려는 놈이 한순간에 분수에 안 맞는 돈을 희망한다는 거두 쫌 웃기지 아니한가?
어쩌다 팔리지 않는, 남은 복권이 내 차지가 되는 게 다였다.
그래도 1등이나 거액은 나하 곤 좀 거리가 있는 거라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두....
자신이 힘 권위 실력 등등 , 조은 거 이런 거에 자신이 없을 때 흔히들 더 큰 권위를 가져와 사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것에 힘을 실 고 싶어 한다.
일정 부분의 효과는 꽤 있다.
"주역에 이런 말이 있다 " "하나님 말씀 성경에~ " "뭐또 부처님 말씀 " "뭐 또 유명한 사람이 바카라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 "소크라테스가 어떻고... 빌게이츠가 어떻고... 워런버핏이 머라고... 하구 정약용이....
어떤 박사님이... 어떤 교수가... 또 어떤... "
이게 모두 내 말 내 것보다는 그 사람의 권위를 가져오기 위함 아닌가?
이 권위의 끝판은 현대와 요즘은 돈이다.
이걸 한 짧은 순간에 얻고 싶은 마음이 복권이다.
ㅎㅎ 이젠 이런 거도 한다.
욕심은 흔히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으로 정의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것은
‘자신의 능력 이상을 향해 손을 뻗는 상태’에 가깝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나은 것을 원하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문제는 그 방향이 아니라, 그 거리를 가늠하지 못할 때 생긴다.
닿을 수 있는 것과 닿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손을 뻗는 순간,
욕심은 의지가 아니라 왜곡이 된다.
욕심이 커질수록 사람은 외부를 더 많이 탓하게 된다.
“조금만 더 기회가 있었더라면”, “환경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식의 생각은 사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보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능력의 경계는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판단은 흐려지고 선택은 어긋난다.
욕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현실 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렇다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는 포기나 체념으로 오해되지만, 본질은 그 반대에 가깝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의 능력을 직시하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냉정하고, 가장 능동적인 판단이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무리하지 않는다.
내가 성인을 꿈꾸듯이
나처럼 대신 닿을 수 있는 영역 안에서 가장 깊이 파고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능력을 안다는 것이 현재에 머무른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확장될 수 있다.
다만 그 확장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축적’이어야 한다.
한 걸음씩 쌓아 올린 능력은 결국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근거 없는 욕심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욕심과 성장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욕심은 뛰어넘으려 하고, 성장은 쌓아 올린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자신으로 돌아온다.
욕심을 다스리는 것도, 능력을 키우는 것도, 선택을 하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이다.
외부 환경은 변수가 될 수는 있지만,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기준은 언제나 내부에 있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 위에서 다음을 설계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늘 부족함에 시달린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적게 가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가지겠다’는 태도다.
자신을 아는 만큼만 욕망하고, 그만큼을 확실히 이루어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불필요한 흔들림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욕심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공허가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해진 자기
자신이다.
성인의 특성 중 또 다름 은 권위를 갖으려고 안 한다.
힘 권력 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