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글/// 참아내고 사는 삶///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견딘다.
어떤 사람은 묵묵히 참고 버티며 시간을 지나오고,
또 어떤 사람은 그때그때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겉으로 보면 전자가 더 단단하고 성숙해 보인다.
많은 것을 참고, 감정을 억누르며,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참아온 사람’을 더 높은 위치에 놓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참고 쌓인 것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참아온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기준으로 삼기 쉽다.
“나는 이 정도는 견뎠다”라는 생각은, 어느새 타인에게도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보다 평가가 먼저 나온다.
그 말은 조언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날카로운 독설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는 ‘버티지 못한 사람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버텨온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말이 남기는 흔적이다.
참아내지 못한 사람은 이미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 사람에게 던져지는 강한 말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방향을 잃게 만드는 압박이 되기도 한다.
다시 일어설 힘을 주기보다, 스스로를 더 작게 느끼게 만들고, 시도를 멈추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를 더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반대로, 참아내지 못한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다소 아이러니하다.
표현하지 못하고, 주장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있는 상태. 이것은 분명 개인에게는 답답함일 수 있지만, 타인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주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영향은 작고, 파장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강하게 살아온 사람이 내뱉는 한마디가
조용히 버티지 못한 사람의 침묵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남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음’ 그 자체가 아니다.
참아낸 시간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더 나은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기준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인 것으로 밀어붙일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경험으로 이해하고 타인의 상황을 함께 보려 할 것인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진짜 단단한 사람은 많이 참은 사람이 아니라,
참아온 시간을 타인을 이해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버티며 살아왔고,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차이가 누군가를 평가하고 밀어붙일 이유가 되는 순간,
그 경험은 더 이상 힘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견뎠는지가 아니라,
그 견딤 이후에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