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분별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
[서평]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침묵과 분별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
이 바카라은 무수한 명언과 그에 대한 두 편집인의 서술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는 특별히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서너 개의 명언에 집중하여 서평을 써 내려가기로 했다.
첫 번째는 마틴 루터 킹의 문장이다.
'궁극적인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억압과 잔혹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선량한 사람들의 침묵이다.' 이 글귀는 바카라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에 무거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나는 과연 어떤 때에 침묵하며, 왜 침묵하는가?'
운 좋게도 평화로운 시대를 타고난 덕에 인종차별이나 전쟁, 잔악한 인권유린의 현장을 직접 목도할 일은 거의 없다. 지구 반대편의 비극이 내 삶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의 일상, 특히 온라인 게임이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동료들 사이의 암묵적인 따돌림이나 무바카라임한 근무 태도 같은 '작은 악'들 앞에서 나는 자주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며 침묵한다.
지난해 말, 계엄 선포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여의도로 달려 나갔던 시민들은 악 앞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악들은 그보다 훨씬 더 작고 교묘하다.
내가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들은 곧바로 공격의 화살을 돌린다. 때로는 방어가 가능하지만, 때로는 증명하기 어려운 교묘한 방식으로 나를 흔든다. 결국 업무 본연의 가치보다 '나를 지키는 방어'에 에너지를 쏟게 되고, 즐거워야 할 일터는 지옥으로 변한다. 이미 굳어진 조직의 거대 문화를 나 혼자 입을 연다고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도 한몫한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달라지는 현장을 묵도하며, 나는 때로 절대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꿀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일일이 대응하며 내 삶의 뿌리를 흔드는 대신, 젠슨 황의 조언처럼 더 똑똑한 사람이 되어 올바른 것, 즉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모으기로 한 것이다. 때로는 이런 선택이 비굴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과 에너지라는 지극히 유한한 자원이 있다.
나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인지 분별하는 현명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버나드 쇼는 "돼지와 싸우지 마라. 돼지는 즐거워하고 당신은 더러워질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온라인 게임 내의 작은 악들, 그 돼지들과 싸우느라 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선량함이 아니라, 어쩌면 수용해야 할 것과 변화시켜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 분별력의 결핍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의 침묵은 포기나 비겁함이 아니다. 한정된 에너지를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쓰겠다는 다짐이며, 내 인생이라는 소중한 밭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자기 방어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수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善)'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량한 개인이 갖춰야 할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