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을 두 번째 읽었다.
신기하다. 같은 바카라인데 이번에는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행동에 관한 문장들이 좋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삶을 바꾸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어쩌면 그때의 나는 삶을 잘 살아내는 방법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읽는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문장 앞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속도를 늦추고 인생을 즐겨라. 빨리 가면 풍경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에 대한 감각도 놓치게 된다.”
이 문장은 단순히 천천히 살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 해내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하나를 이루고 나면 만족하기보다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더 좋은 것,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어쩌면 생산성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빨리 가는 데 익숙해지면 더 멀리 가고 싶어지고, 더 많이 이루면 더 큰 것을 이루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가장 두려운 것은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삶에서 놓치는 것은 풍경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삶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조금씩 무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심지어 풀잎 한 포기라도 그 자체로 신비롭고 경이로우며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한 세계가 된다.”
생각해 보면 특별한 것을 찾아다니느라 평범한 것들을 너무 쉽게 지나쳐왔다.
좋은 곳에 가야 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하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삶의 감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 것에서 생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잠깐 멈춰 바라보는 풀잎 하나, 무심히 지나쳤던 하늘, 익숙해서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았던 사람의 표정.
세심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평범했던 것들이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문장도 오래 남았다.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들꽃은 여전히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삶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든 답을 찾은 뒤에야 삶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혼란스러운 곳에서도 들꽃은 피어난다.
어쩌면 우리는 삶을 너무 자주 성취한 다음의 시간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일을 끝내고 나면, 이만큼 이루고 나면, 이것을 가지게 되면 그때 비로소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지금의 삶은 계속 지나가고 있다.
욕망에 관한 문장이 마음에 남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유는 원하는 것을 완전히 누리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통제함으로써 얻어진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으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하나를 얻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더 좋은 것, 더 큰 것, 더 화려한 것.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원하는 것이 나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나를 다스리는 순간, 자유는 오히려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자유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속도를 늦추는 일과 욕망을 통제하는 일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천천히 가야 내가 왜 가는지 생각할 수 있고, 조금 덜 욕망해야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에서 한 발 물러서야 이미 가진 것의 무게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삶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독서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컸다면, 두 번째 독서에서는 오히려 “더 잘 산다는 것이 정말 더 많이 성취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첫 번째 독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독서였다면, 두 번째 독서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독서가 되었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잊지 않으면서 앞으로 가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면서도 그것에 끌려가지 않고, 바쁜 삶 속에서도 발밑에 피어난 들꽃 하나를 볼 수 있는 것.
삶을 더 많이 채우는 것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삶을 더 깊이 느끼는 것.
두 번째로 읽은 이 바카라이 내게 남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