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 개를 쓰고 난 후의 심정

온라인카지노 구독자분들께

by달보


언제 글 천 개를 써 보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온라인카지노를 보니 업로드한 글이 1,000개를 넘어가 있었다.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숫자를 마주한 순간, 현실은 고요했다. 말없이 몇 초간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처럼, 쓴 글이 천 개든 만 개든 마찬가지다. 글 천 개를 쓰면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지만, 달라진 건 달라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처음 글을 쓸 땐 자판 위의 손가락이 쉴 틈이 없었다. 다 쓴 글을 다듬을 생각도 못 한 채 바로 다음 글에 착수했고,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반 년도 안 되어 출간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 받아보는 출간 제안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연이어 거절을 택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열어보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해보기도 했다. 지금은 다 접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사람들 등 처먹는 짓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뭘 믿고 그렇게 까불었을까. 바카라을 읽고 생각이 달라진 건 알겠는데, 마치 세상의 진리라도 깨우친 것마냥 뭘 그렇게 자신 있게 떠들었을까. 20대 시절 처음 읽게 된 바카라이 나를 하늘에 띄워주었다면, 30대에 접하게 된 글쓰기는 나를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땐 모든 게 단순해 보였는데, 오랜만에 다시 평지에서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의외성으로 가득했다.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쁘다고 다 나쁜 게 아니라는 걸 글을 쓰며 새삼 깨달았다.


한번 느낀 건 죽을 때까지 가져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깨달음은 생물처럼 끊임없이 죽고 변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그 겸손함조차 어떤 모순을 안고 있을지 몰라 조심스러워진다.


내 소망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글쓰기로 보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라도 출간은 필수적이었고,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출간하려면 영향력부터 키우라기에 거부감이 심하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온라인카지노에서도 소통이라는 걸 해보려 했다. 손을 댈수록 숫자는 늘어났지만, 마음은 전혀 가질 않아서 괜한 짓을 벌였나 싶은 후회를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젠 소설까지 쓰고 앉았다. 에세이도 제대로 못 쓰면서, 소설은 거의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드디어 정신이 나간 건가. 하지만 소설의 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에세이를 쓰면서 이야기의 힘을 어렴풋이 느꼈는데, 소설을 쓰다 보니 이 세상 모든 게 이야기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가슴이 아프다'보다, '나는 비가 와도 손에 쥔 우산을 펴지 않고 정처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가 훨씬 더 와닿는다. 인간은 묘한 생물이라, 직설적인 말에는 반발심을 일으키다가도, 돌려 말하는 데는 한두 방울의 이슬에 옷이 젖듯 서서히 스며든다.


글을 천 개 정도 쓰면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할 줄 알았다. 현실은 하소연을 볼품없이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기껏 카페까지 와놓고 뭘 써야 할지 몰라 AI에게 투정 부리다가 이 글도 끄적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힘들게 일어나놓고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출근해버릴까 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게 있다면, 글 한 자도 쓰지 못한 날은 4시간도 못 자고 출근한 날보다 몸이 더 무겁다는 점이다.


어느 날 이상한 바람이 불어 전기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은 안 좋은 것으로만 보였는데, 그 저항이 있기에 전구의 불빛이 밝혀진다는 게 의외였다. 키보드에 손만 올리면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가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멈칫거리는 걸 보면, 내 몸에 흐르는 저항이 뭔가 꽃을 피우려고 하는 건가 싶다. 막힘없이 술술 쓰고 싶고, 쓰면 쓸수록 글을 잘 쓰고 싶지만, 이 세상에 그딴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이 나를 위로하면서도 피를 말린다.


전자 필기장에 쌓인 글 모두를 올리면 글 천 개가 아니라 이천 개는 훌쩍 넘어가지 않을까. 그 무모한 짓거리를 일삼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글은 쓰고 난 당시에는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엉망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누가 그러던데, 겸손하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거라고.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다만, 글쓰기가 나를 날뛰지 못하게 막아준다는 건 확실하다.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나는 그분들의 글을 읽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나는 애초에 나밖에 모르는 놈. 점잖은 척하면서 속으론 내 좋은 것만 하려는 심산으로 가득한 놈이다. 나는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마음에 담고 싶지 않다.


본질. 나는 그 단어를 참 좋아한다. 이렇게 흔들릴 때면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스스로를 여민다. 내가 글을 쓰는 본질은 다음과 같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는 것. 일찍 일어나기 위해 유료 알람 앱을 쓰는 것. 3시 30분에 일어나 무인 카페로 가는 길.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양쪽 귀에서 들려오는 Lo-fi 음악. 중간중간 아이가 깨진 않았을지 노심초사하며 홈캠을 들여다보는 일. 6시쯤 집으로 향하는 길 눈에 들어오는 주변 풍경. 뭐가 됐든 오늘 하루를 글쓰기로 시작했다는 든든함.


그 모든 과정을, 아내만큼 사랑하니까.


작가의 이전글억지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