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준 감정들은 조용히 꽃이 되었다
- 김윤나, 『말 그릇』, 카시오페아, 2017 -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감정을 만난다.
기쁨이 스쳐 지나가고,
서운함이 문을 두드리고,
불안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후회가 늦은 밤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정은
이름도 없이 지나간다.
그저
'왜 이렇게 답답하지.'
'왜 이렇게 힘들지.'
'왜 이렇게 예민하지.'
그렇게 흐릿한 얼굴로
마음속을 오래 떠돈다.
바쁘다는 이유로,
괜찮다는 말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나는
내 감정들을
너무 오래
문밖에 세워 두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떠나야 할 감정은 떠나지 못하고,
들어와야 할 평안도
자리를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하나씩 이름을 불러 보기 시작했다.
"아,
이건 불안이었구나."
"이건
슬픔이었네."
"이건
실망이었구나."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은
신기할 만큼 선명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
나를 붙잡아 흔들지 않았다.
그때
한 편의 시가 떠올랐다.
- 김춘수, 「꽃」(『시와 시론』, 1952 -
나는 오래도록
이 시를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감정도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는 것을.
불안은
도망쳐야 할 적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 애쓰던 마음이었다.
슬픔은
나약함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사랑했다는 증거였다.
후회는
실패가 아니라,
더 잘 살아가고 싶었던
나의 진심이었다.
감정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말해 주기 위해
잠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자
감정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해받은 아이처럼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제 할 일을 마친 사람처럼
가볍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작은 꽃 하나를 남겨 두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도
정원과 닮았다.
잡초를 무작정 뽑아낸다고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먼저
무엇이 꽃이고,
무엇이 잡초인지
천천히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봄은
마음에도 찾아온다.
그래서 이제는
안 좋은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좋은 감정만
남기려 하지도 않는다.
오늘도
내 안을 천천히 걸으며,
아직 이름을 기다리고 있는
감정 하나를
다정하게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