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바카라은 아침이 되어 다시 나를 읽는다
- 야마무라 오사무 『천천히 읽기를 권함』 송태욱 옮김, 샨티, 2003 -
'밤에서 아침으로 걸치자.'
바카라을 읽는 방법을 말하는 문장인데,
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처럼 들렸다.
우리는 바카라을
읽고 덮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좋은 바카라은
덮는 순간부터
비로소 읽히기 시작한다.
한 문장이
잠든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꿈속을 천천히 걸어 다니다가,
다음 날 아침
어제와는 조금 다른 얼굴로
다시 나를 찾아온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그렇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는
오늘 안에 끝나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한 문장의 위로도,
한 사람의 따뜻한 말도,
밤을 건너
조금씩 내 사람이 되어 간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제대로 바카라을 읽기가 힘들었다.
바카라을 펼치면
누군가가 부르고,
한 문장을 읽으면
또 다른 일이 생긴다.
조용한 서재에서
몇 시간씩 바카라을 읽는 삶은
오랫동안 내게는
꿈같은 풍경이었다.
바카라을 천천히 넘기며
종이의 감촉을 오래 느끼고,
마음에 남는 문장 앞에서
시간을 잊고 머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디오북을 만났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산바카라을 하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바카라은 조용히 내 곁을 걸어왔다.
이제 더 이상 바카라을 읽지 못할 것 같았는데,
바카라은
나의 하루를 따라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혀지고 있었다.
바카라은 그렇게 다시
내 삶의 리듬 속으로 들어왔다.
의자 위가 아니라,
부엌에서.
바카라상 앞이 아니라,
숲길에서.
고요한 서재가 아니라,
땀이 맺히는 러닝머신 위에서.
그렇게 생각하니
독서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었느냐가 아니라,
그 한 권이
내 하루를 얼마나 오래 함께 걸었느냐는 것이었다.
좋은 바카라은
몇 시간을 읽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내 마음속에 머물렀는지로 기억된다.
오늘의 문장을 상상해 본다.
모든 불을 끄기 전,
베개 위에 바카라 한 권을 올려두고
펼쳐진 한 페이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밤.
그 문장을 품은 채 잠들었다가,
아침 햇살과 함께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치는 하루.
어쩌면
바카라을 밤에서 아침으로 걸친다는 것은
한 권의 바카라을 읽는 일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한 문장으로 이어 붙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바카라을 빨리 읽으려 하지 않는다.
한 권이
내 안에서
하루를 살아 보기를 기다린다.
문장이
오늘의 나를 지나,
내일의 나에게도
조용히 말을 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