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들, 우리는 작가다

작가라는 종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by아르망


이 바카라은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작가들,

진지하게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들,

의미 있는 것을 써서 펴내기를 꿈꾸는 작가들,


뱃속에 총알처럼 박혀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평생 만족하지 못할 것 같은 작가들,


자신의 재능을 최대로 발휘하여 글을 쓰고,

운이 따른다면,

그것으로 세상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고 싶은

작가들을 위한 것이다.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면, 작가라는 종족에

합류한 것을 환영한다.


- 대니얼 조슈아 루빈『스토리텔링 바이블』, 이한이 옮김, 블랙피쉬, 2020 -




25년 넘게 작가로 살며 글쓰기 스튜디오를 이끌어온 저자는

바카라의 머리말에 이 문장을 새겨 넣었다.


이 대목을 읽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문장이 그대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낱말이 가진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일본 작가들의 마감 독촉 일화를 모은 『작가의 마감』을 펼쳐보면 그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나쓰메 소세키는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려고 하면 괴로워집니다. 누군가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라고 고백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원고지 앞에서 "이건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를 외치며 종이를 찢어발겼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글쓰기를 두고 "천벌을 받은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거장들이 마감 앞에서 아이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은

묘하게도 신기하고 인간적이다.


우리는 흔히 대작가들은 큰 바위를 만나도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글을 술술 써 내려갈 거라 짐작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고뇌하며 한 줄 한 줄을 간신히 밀어 올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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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청송 진보에 있는 객주 문학관에 갔을 때도 비슷한 전율을 느꼈다.

대하소설 『객주』를 쓴 김주영 작가는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

밤새 줄담배를 피우며 고민하다가,

새벽녘에야 딱 맞는 말을 찾아내고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나에게 소설은 재주가 아니라 뚝심이자 견디는 힘이었다"

라는 그의 말에서 글쓰기의 정체를 보았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왜 이토록 힘든 일을 멈추지 않는 걸까?

나는 그 답이 앞서 읽은 머리글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간절함,

진지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 의미 있는 가치를 쫓는 갈망.

뱃속에 박힌 총알처럼 끝내 끄집어내야만 하는 수많은 이야기와,

자신의 재능을 다해 세상을 뒤흔들고 싶은 그 뜨거운 마음 말이다.


아! 이것이었구나.


"나는 글이 잘 쓰일 때를 좋아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그 순간을 사랑하기도 한다."


- 줄리아 카메론,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조한나 옮김, 이다미디어, 2013.


작가는 진정으로 글을 쓰는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하얀 전쟁터 같은 백지 위에서 사방이 막힌 듯 먹먹할 때도,

결국은 길을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에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지 밤새 고민하다가,

마침내 가장 알맞은 씨앗 하나를 심어 아름다운 문장의 꽃을 피워낸다.


그 꽃의 향기는 독자의 굳게 닫힌 창문을 열고,

방 안 가득 따스한 햇살을 들여놓을 것이다.


글쓰기는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지만,

동시에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가 된다.


깊은 고독과 성찰에서 길어 올린 글자들은 소나기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시원한 문장의 비를 뿌린다.

그 비는 강을 이루고, 강은 넘쳐흘러 마침내 커다란 세상의 바다로 나아간다.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이야기,

꼭 전하고 싶었던 의미 있는 목소리들이 흐르고 흘러

사람들의 가슴속에 닿을 때, 비로소 글은 생명을 얻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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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정체성이 분명한 종족이다.


피와 땀으로 글자들을 자식처럼 키워내고,

새벽까지 하얀 길 위를 헤매면서도 꿈결처럼 시간을 보낸다.

심장과 손가락이 하나로 이어져 끝내 길을 만들어낸다.

밤새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라도,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꼭 맞는 단어 하나를 낚아채 하늘 높이 솟구친다.


그래서 작가는 불행을 넘어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삶을 산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의 전반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평범하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본다.

거대한 나무를 보며 아주 작은 씨앗의 시절부터 견뎌온 나무의 일생을 읽어내고,

비가 내릴 때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천 개의 빗방울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을 상상한다.


구름의 그림자, 창가에 비치는 햇살, 들판의 들꽃 하나까지도 작가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온 세상을 살피고 생각하기에 만 년의 시간도 부족한 작가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 한강, 「빛과 실」(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한강 작가의 이 말이 다시금 내 가슴을 적신다.

나는 이 문장을 빌려 나에게 묻는다.


글쓰기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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