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일에 대하여
오후 서너 시 무렵 도심 빌딩 사이를 가로질러 불어오던 바람결에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낮 동안 숨을 턱턱 막히게 하던 뙤약볕 한가운데서 뜻밖에 닿아온 맑은 공기가 여름의 끝을 먼저 알려주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단지 한쪽에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 모퉁이를 지날 때, 소담하게 피어난 목화꽃이 황혼 속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침에 엷은 미색으로 피어났던 꽃잎은 해 질 무렵이 되자 붉은빛을 머금은 채 이미 제 몸을 닫고 있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맺힌 다래는 겉껍질이 절로 벌어져 하얀 솜을 내어놓을 때까지 긴 시간을 견딘다. 화려한 조경수들 틈에서 묵묵히 제 속을 채워가는 식물의 태도는 볼 때마다 어수선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종일 켜두었던 냉방 장치를 끄고 베란다 유리창을 옆으로 활짝 열어두었다. 기계 소음이 멎고 어둠이 내려앉은 창틈으로 저녁 바람이 들어와 거실 벽을 훑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방 안에 머물던 묵은 공기와 머릿속에 엉켜 있던 잔생각도 그 길을 따라 함께 쓸려 나간다. 살갗을 파고들 듯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어느새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붙잡거나 재촉하지 않아도 계절은 때가 되면 물러난다. 지나가지 않는 여름이 없듯이, 삶에서 겪는 갈등과 마음의 피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아간다.
어둠이 내리는 창가에 서서 사람 사이에 난 길을 생각한다. 살아오며 마주친 숱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불쑥 다가와 삶의 중심을 흔들어놓았고, 어떤 이는 오랜 세월 한 공간에 머물렀으면서도 지나가는 행인처럼 서먹하게 남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장 많은 기운을 쏟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인간관계였다. 특히 불필요하게 꼬인 인연을 정리하는 일은 막연한 기대나 윤리적인 당위만으로는 풀리지 않았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는 대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처음 마주했을 때의 친절에 기대어 성급하게 마음을 열었을 때 시작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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