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가까이 붙어 있을 때보다,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오래 이어집니다. 우리 슬롯에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이어지는 실제 과정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사뭇 다릅니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선을 넘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관계를 안정적으로 지탱합니다. 관계는 서로를 붙잡을 때보다, 각자의 자리를 지켜줄 때 오래갑니다.
타인을 존중하려면 무엇보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상대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까워지면 상대의 모든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처음 보았던 장점보다, 누구에게나 있는 부족한 점들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이죠.
거리를 둔다는 건 상대의 부족함을 굳이 들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일입니다. 이는 상대의 결점이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보편적인 불완전함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상대의 한계를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예우의 시작입니다.
한 조직에서 일을 잘하는 인물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는 평소 판단이 빠르고 실수가 적어 주변의 깊은 신뢰를 얻습니다. 맡은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중요한 일을 믿고 맡깁니다. 그런데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적인 모습에 과도하게 노출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피로에 지쳐 짧게 대답하거나, 작은 일에 감정이 흔들리는 평범한 장면들이 포착되기 시작합니다. 거리가 사라지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무게도 같이 가벼워집니다.
이러한 장면이 쌓이면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꿉니다. 실력은 그대로이지만 평가의 기준이 흐려지면서, 중요한 결정을 맡길 때 망설임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확신을 가지고 맡기던 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어야 그 사람의 장점도 그대로 남습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간격은 신뢰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토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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